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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동률
미국 기업투명화법(CTA)이 한국 지주회사에게 미치는 파장
2024년에 발효된 미국의 기업투명화법(이하CTA)에 따라서 미국에 설립된 대부분의 기업들은 해당 기업의 수익소유자 정보(Beneficial Owner Information, BOI)를 미 재무국에 등록해야 한다. 보고된 정보를 통해서 미 국세청은 미국 내 한국 자회사들이 한국 내 모회사들의 정보를 미신고한 사실을 적발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미국의 기업투명화법(CTA)은 미국 기업들이 해당 기업의 25% 이상 지분을 보유하거나, 중대한 영향력(Substantial Control)을 행사하는 수익소유자(BOI) 정보를 미국 재무부(FinCEN)에 보고하는 것을 의무화했다. 기업투명화법(CTA)은 그 동안 불충분한 기업 소유자 관련 정보로 인해 탈세, 불법자금세탁 등이 생겨났다고 보고 이를 관리, 처벌하기 위해 제정되었다. 이 정보등록 의무를 누락할 경우 하루 지연될 때마다 5백 달러씩 최대 1만 달러의 벌금과 최대 2년의 징역형이 가능하므로 그 자체로도... -
플랫
벌린 손가락으로 맞는 새해
을씨년스럽다는 말이 있다. 스산하고 쓸쓸한 분위기나 사람이 가난한 모양을 뜻할 때 사용하는 단어다. 이 말은 ‘을사년스럽다’에서 왔다고들 한다. 푸른 뱀의 해, 그러니까 2025년이 바로 을사년이다.설은 여러 가지다. 누군 1905년 을사늑약 이후 ‘을씨년스럽다’는 말이 자리잡았다 하고, 다른 누군 1785년 을사년 대기근 이후 이 말이 사용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뭐가 됐든, 푸른 뱀의 해에 나라가 망하거나 수많은 이들이 배곯아 스러졌던 고통스러운 기억이 한국인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말에 스며 있는 셈이다.그리고 참 을씨년스러운 세밑을 지나왔다. 내란죄 피의자인 대통령의 측근은 체포영장 발부가 법치를 무너뜨리는 일이라며 혹세무민하고, 무안공항에선 가족을 잃은 이들의 절규가 하늘과 땅을 울렸으며, 정당한 고용승계를 요구하면서 385일째 공장 옥상에서 생활하는 한국옵티컬하이테크 노동자들의 억울함은 뼈에 사무친다.아직 을사년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도 아닌데, 이미 이 세... -
세상 읽기
불확실성 시대, 새로운 사회계약 모색
총체적 위기 극복의 해법을 찾아야 한다. 곧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한다. 미국 우선주의는 전 세계 경제와 외교·안보에 많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다. 그럼에도 한국은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불안정한 정치체제가 유지되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원·달러 환율 폭등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코스닥·나스닥 급락의 충격 여파도 적잖다. 이렇게 사회경제적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에서 보수 집권세력은 권력야욕만 앞세운 행태들만 보인다. 오직 본인들이 향유하고 있는 정권과 자리 유지에만 혈안인 듯하다.지난 한 해 힘든 시간이었다. 그 어느 때보다 사회적 충격들이 적잖았다. 의대 증원 문제를 둘러싸고 전공의 집단사직과 의대생 휴학사태는 해를 넘겼다. 이뿐만 아니라 쿠팡 물류센터 사망사고부터 화성 아리셀 공장 화재와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는 국민 모두에게 오랜 기간 상흔이 될 것 같다. 게다가 100년 만에 처음 겪은 폭염·폭우와 폭설의 기후재난은 이젠 일상적 위험이... -
정동칼럼
위기의 대한민국
지난해 12월29일 오전에 발생한 무안공항 제주항공 참사는 전 국민을 망연자실하게 만들었다. 12월3일 한밤중에 일어났던 현직 대통령의 불법적 친위쿠테타와 이어진 정국 불안정으로 인해 심란한 와중에 접한 비보였기에 더욱 황망했다.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들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올린다.참사 원인을 철저히 조사해 인재 여부를 밝혀야 한다. 만약 인재 요인이 있다면, 충분하고 철저한 형사·민사적 책임 추궁이 뒤따라야만 한다. 그래야만 인재에 의한 대형 참사의 반복을 막을 수 있다. 이런 철저한 형사·민사적 책임을 우리 법체계가 물을 수 없다면, 법부터 바꿔야 한다. 정부와 국회가 이에 미온적이면, 이들부터 정치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2024년은 한국 엘리트들의 민낯을 볼 수 있는 한 해였다. 어느 영화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들은 ‘나쁜 사람(the bad)’이거나 ‘추한 사람(the ugly)’이었다. 국민을 배반하고 경제를 나락으로 내몬 친위쿠테타를 주도한 윤...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
혼신의 글쓰기, ‘김윤식 전시회’에서
한 해의 마지막 달이 밋밋하게 끝나지 않고 뿔처럼 하루가 더 있는 건 참 고마운 일이다. 12월31일. 복면한 괴한인 듯 아라비아 숫자 즐비한 달력에서 지난 1년을 휘감으며 등대처럼 밝힌다. 그냥 하루, 여느 날처럼 지나치기엔 내 간이 너무 작다.요즘 대한민국에서 일상을 살아내는 건 비장한 일이다. 기괴하고 희한한 일들이 마구마구 범람해서 정신을 모으기가 몹시 힘들다. 해가 뜨고 다시 달이 뒤쫓아 오기까지, 누구에게나 주어진 하루라는 시간의 보자기에서 이 마지막 날은 목석같은 나에게도 좀 특별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무엇으로 다시 못 볼 갑진년을 마무리할까.참 수상한 시절, 그저 흘러가고 지나가는 것들이 변덕을 부리지만 그 와중에도 무겁게 지그시 제자리를 누르며 중심을 잡아주는 것들이 있어 이나마 세상은 이렇게라도 유지된다. 산이 제 높이를 지탱하려고 무거운 돌이나 바위를 부둥켜안고 있는 것처럼.허황한 말들이 활개치는 이 부박한 지상의 표면에서 사람의 생... -
녹색세상
진짜 바다와 만나야 한다
환경재단이 15회째 추진하고 있는 그린보트가 그린워싱(green washing·친환경이라고 홍보하지만 실제로는 환경을 파괴하는 위장환경주의)이라는 논란이 일고 있다. 거대한 오염물질을 내뿜는 크루즈에 그린보트라는 이름이 붙고, 관광사업에 가까운 운항을 환경단체에서 주최한다는 점은 출항을 재고해야 할 중대한 사안으로 보인다. 크루즈에서 진행되는 인문학 강연이 사치와 휴양을 힐링과 휴식으로 둔갑시켜, 인간과 바다의 진짜 만남을 차단하는 방식으로 스스로를 두 번 위장하는 것이다. 크루즈는 나쁘다. 환경을 파괴한다. 그린보트는 더 나쁘다. 환경을 파괴하면서 환경에 좋은 일을 하고 있다고 거짓말한다. 그린보트에서 인문학 강연을 듣는 것은 훨씬 더 나쁘다. 환경을 파괴하고, 이를 친환경이라고 위장하며, 그 위장이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합리화까지 하기 때문이다. 현대인에게 필요한 휴식은 단절된 자연과 다시 연결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지쳐 있는 이유는 기계문명이 기속화한 속도를 따라잡... -
음식의 미래
무알코올 와인을 따며
지난해 말 처음으로 무알코올 와인을 주문해봤다. 무알코올 와인에 대한 호기심도 있었지만, 작년 말 뒤숭숭한 정국에도 송년 모임이 줄지 않아 몸과 마음이 피곤했기 때문이다. 연말 모임에서 주목도 받고 술도 적게 마셔볼 요량으로 무알코올 와인을 선택했던 것이다.무알코올이어서 전자상거래를 이용해 와인을 집에서 편하게 받을 수 있어 좋았다. 기존 와인과는 다른 편리함이었다. 내가 주로 구매했던 무알코올 와인은 미국에서 만든 스파클링 로제였다. 미국 언론이 추천한 무알코올 리스트에 자주 올랐던 와인이어서 궁금하기도 했다. 가격도 1만원대로 합리적이었다. 그렇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신통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달았다. 이 와인은 어린잎차에 사탕수수 시럽과 감귤 생강처럼 천연 추출물을 섞어 와인의 복합미를 대신했다. 열량은 130㎉였다(750㎖ 기준). 일반 와인의 칼로리가 600~900㎉인 것에 견줘 꽤 낮다. 그렇지만 당분과 천연 추출물이 기존 와인의 맛과 향을 대체하지 못했다. ... -
이희경의 한뼘 양생
제주 선흘리 할망들 ‘레퓨지아’
다른 사람들처럼 한 달 넘도록 삶이 엉망진창이다. 걷잡을 수 없는 분노와 깊은 ‘빡침’, 감당하기 힘든 우울과 슬픔에 빠져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무엇을 붙들어야 산란해진 마음을 수습할 수 있을까. 인류학자 애나 칭의 <세계 끝의 버섯>을 다시 집어 들었다. “삶이 엉망이 되어갈 때 여러분은 무엇을 하는가? 나는 산책을 한다. 그리고 운이 좋으면 버섯을 발견한다. 버섯을 통해 내 감각은 되살아난다. 꽃처럼 소란스러운 색깔이나 향기를 지니고 있어서가 아니다. 버섯은 불현듯 나타나, 다행히도 내가 그곳에 있음을 상기시켜 준다. 그러면 불확정성의 공포 속에서도 아직 즐거움이 있음을 알게 된다.” 나도 그녀처럼 버려진 땅 어느 귀퉁이에서 남몰래 자라나는 송이버섯을 발견할 수 있을까. 폐허 속에서도 여전히 생기 넘치게 존재하는 공간과 존재를 발견할 수 있을까.얼마 전 제주 중산간 선흘리에서 할망 11명의 그림 전시회, ‘ᄄᆞᆯ 어멍... -
정지아의 할매 열전
이모는 화투점을 치며 무엇을 기다렸을까
나는 그이를 광주 이모라 불렀다. 이름도 정확한 나이도 모른다. 엄마가 친구라 했으니 비슷한 또래일 것이라 짐작할 뿐이다. 내가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 아버지는 광주교도소에 수감 중이었다. 그때만 해도 광주는 머나멀었다. 아버지 면회를 갈 때마다 엄마는 광주 이모 집에서 자고 먹었다. 이모 집은 넓은 정원이 딸린 멋진 한옥이었다. 전통 한옥은 아니었던지 마루 끝에 유리로 된 미닫이문이 달려 있었다. 이모는 고급스러운 한복을 입고 있었는데 피부가 서양인처럼 새하얗고 볼이 통통했다. 내가 태어나서 본 가장 하얀 사람이었다. 입고 있는 한복처럼 고급스러운 것도 같고, 어딘지 나른한 것도 같았다. 이모가 미닫이문을 열고 마루에 앉아 봄볕을 쬐며 자울자울 졸고 있는 모습을 본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게 그 나른한 첫인상 때문이지 싶다.이모에게는 아들과 딸이 있었다. 딸의 얼굴은 두어 번 봤다. 내 엄마라고 해도 될 만큼 나이가 많았고, 직장에 다니는 노처녀였다. 나보다 열... -
시간의 전설
발언권
모든 사람에게는 발언권이 있다. 즉 자기 의사를 전달할 수 있다. 그런데 일반 사람들이 사석에서 하는 말은 발언권이라고 하지 않고 대화라고 한다. 발언권은 적어도 어떤 단체나 사회에서 영향력을 미칠 수 있어야 한다. 그 발언권을 얻기 위해 정치가가 되려고 한다. 한편으로 예술이 사회적인 이슈를 표방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지는 않지만, 발언권도 중요한 역할 중 하나로 본다.1919년 임시정부를 시작으로 해방 후 1948년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하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됐다. 나는 공교롭게 1948년 태어났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 때부터, 망상적인 판단으로 친위 내란을 일으킨 작금의 윤석열까지 겪은 파란만장한 세대다. 어릴 때 투표 과정에서 주민들에게 고무신과 막걸리 사주고 매표하는 것도 보았다. 마침내 3·15 부정선거로 이승만 대통령은 하야했다. 그 과정에서 4·19혁명으로 민주주의를 바로잡고자 총칼 앞에 분연히 일어선 젊은 청년들의 피 끓는 정신 승리와 상처를 기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