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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의 불편한 진실
‘김상곤 쇼크’를 되돌아보며
진보교육계의 입장을 민주당이 수용하지 않는 것은 사회운동과 대중정치 사이에 큰 간극이 존재하기 때문이다7년 전의 ‘김상곤 쇼크’를 새삼 언급하는 이유는, 이 같은 문제가 다시 반복될 조짐이 보이기 때문이다진보교육계는 정치를 배워야 한다. ‘욕 안 먹는’ 정치가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정치 말이다난데없이 조만간 대통령 선거를 치러야 할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선거 직전이 되면 민감한 얘기를 칼럼에 쓰기 어려워진다. 억측과 비난의 대상이 되곤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오기 전에 나의 과거 대선 경험을 공유하고자 한다.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진보 교육진영의 정책이 더불어민주당에 수용되지 않는 이유를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혹자는 ‘민주당이 보수적이어서’라고 주장하는데, 그렇다면 교육 문제에 있어 민주당에 대한 기대를 접어야 할 일이다. 혹자는 ‘민주당에 사교육업계의 영향력이 작용해서’라고 주장하는데, 그렇다면 민주당 내에... -
사설
또 ‘랜딩기어 회항’, 제주항공 운항·안전 체계 엄히 짚어야
179명이 사망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하루 만인 30일 제주항공의 동일 기종 여객기가 랜딩기어(비행기 바퀴) 이상으로 회항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제주항공은 이날 오전 6시37분 승객 161명을 태우고 김포공항에서 출발해 제주공항으로 가던 7C101편에 랜딩기어 문제에 따른 기체 결함이 발생하자 승객들에게 이를 안내한 뒤 회항했다. 이 기종은 보잉의 B737-800으로 전날 참사가 벌어진 기종과 동일하다.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비행기가 안착할 때까지 승객들 공포가 얼마나 컸을지 헤아리기 어렵다.전날 사고가 난 제주항공 여객기는 조류 충돌로 인한 엔진 파손, 랜딩기어 오작동 등이 원인으로 거론되고 있으나 면밀한 조사가 필요한 상황이다. 특히, 사고 기종은 국내 저비용항공사(LCC) 대부분이 운용 중이어서 시민들의 불안감이 크다. 사고 여객기는 지난 27일 탑승하던 중에도 시동 꺼짐 현상이 있었다는 증언이 나왔다. 혹시라도 제주항공의 ‘안전 불감증’이 참사로 이어지지 않았... -
사설
김용현 변호 국민의힘, ‘권영세 비대위’ 변화없이 미래 없다
친윤 권영세 의원이 30일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에 취임하면서 “비상계엄과 탄핵으로 불안과 걱정을 끼쳐드린 점, 집권 여당 비대위원장으로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했다. 나라를 3류 독재국가로 전락시킬 뻔한 무도한 대통령을 배출하고도 ‘집권 여당’ 운운하는 것이 어이없지만, 위헌적 계엄을 헌법에 따라 탄핵으로 바로잡은 것도 사과한다니 물타기하겠다는 것 아닌가. 무엇을 반성하겠다는 것인지 종잡을 수가 없다. 쇄신을 책임져야 할 비대위원장부터 이 모양이니 국민의힘에 미래가 있을지 의문이다.검찰이 지난 27일 ‘내란’ 혐의로 기소한 김용현 전 국방장관 공소장에서 드러난 내란 수괴 윤석열의 행태는 입을 다물기 어려울 정도다. “총을 쏴서라도 문을 부수고 (의원들을) 끌어내”라고 지시하는가 하면 계엄 후 새 입법기구를 만들어 3권 분립의 민주공화국을 사유물로 만들려 했다. 그런데도 내란 수괴를 비호하는 국민의힘의 ‘반탄핵’ 일탈은 도를 넘고 있다. 국민의힘 미디어특위 진짜뉴스 발굴... -
여적
가장 존경받는 ‘전직 대통령’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1924~2024)이 마지막으로 한국을 찾은 것은 2011년 4월, 세계 원로들의 모임 ‘디엘더스’의 대표단장으로서였다. 평양에 이어 서울을 찾은 그는 남북한 중재를 시도했지만 양측 지도자로부터 모두 외면받았다. 카터는 당시 기자회견에서 ‘당신은 박정희 정권의 인권 문제를 제기했는데, 이번에 북한에 인권 문제를 제기했는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북한 정부 정책에 인권과 관련한 문제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인권 문제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먹을 권리인데, 한국과 미국 정부는 의도적으로 북한에 갈 식량 지원을 억제하고 있다. 이는 군사·정치적으로 볼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명백한 인권 침해라고 본다.”이명박 정권 당시 천안함 침몰과 연평도 포격 사건이 있은 뒤라 그의 발언은 한국에서 그다지 환영받지 못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의 접근은 일관됐다. ‘가치외교’의 원조인 카터는 미국 외교정책에서 인권의 가치를 전면에 내세웠다. 미국이 많은 지원을 했던 동... -
사설
체포영장 청구된 윤석열, 궤변 접고 석고대죄부터 하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와 경찰·국방부가 참여하는 공조수사본부가 30일 대통령 윤석열의 체포영장을 청구했다. 만시지탄을 금할 수 없다. 12·3 비상계엄 당시 윤석열의 내란 행위는 전 국민이 목격한 터다. 윤석열이 내란 수괴라는 증거가 차고 넘치지만 공조수사본부는 현직 대통령이라는 점을 고려해 3차례나 출석 요구서를 보내며 체포를 미뤄왔다.그동안 윤석열이 보인 행태는 일국의 대통령이라는 사실이 부끄러울 정도다. 자신의 지시와 명령을 따른 군과 경찰 수뇌부는 모두 구속됐는데도 여전히 제 한몸 건사하겠다고 지지자들을 선동하며 내전을 획책하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서류 접수조차 거부하더니, 수사망이 좁혀오자 헌재 심판을 먼저 받겠다며 시간을 끌었다. 체포영장이 청구되자 이젠 공수처에 내란 범죄를 수사할 권한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전형적인 ‘법꾸라지’ 행태다. 공수처는 경찰과 공조수사본부를 구성하고 있고, 경찰엔 기본적으로 내란죄 수사권이 있다. 내란은 윤석열이 대통령의 직권을 남... -
정동칼럼
한강의 기적, 한강의 위로
저물어가는 한 해의 막바지, 12월3일 갑작스레 시작된 정치적 재난은 이 땅 모든 이들의 삶을 삼켜버렸다. 겨눠진 총구는 다양한 사람들의 용기 덕분에 몇 시간 만에 내려졌지만, 법으로 무장한 이들의 법구(法口)에서는 여전히 상식을 초월한 논리들이 난사되어 사람들의 마음에 박히고 있다. 시민들은 광장의 응원봉, 2030 여성의 부상, ‘남태령 대첩’ 등을 말하며 희망을 더듬고 있지만, 광장에 모인 각자의 얼굴과 눈동자에는 지금이 산업화와 민주화로 대표되는 ‘한강의 기적’이 저물어가는 황혼의 시대일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비쳐 있다. 우리는 일상을 잃었고, 민주주의는 더 이상 당연하지 않다.국회에서 첫 번째 탄핵소추안이 부결되고 정치적 불확실성이 최고조에 달했던 12월의 둘째 주, 시민들에게 위로를 준 것은 작가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 기념 연설이었다. 한강은 질문했다. “인간은 인간에게 이런 행동을 하는가?” 자기 안의 울분을 표현할 말을 찾지 못하던 이들의 마음에 형상을 부여해... -
미디어세상
진실 추구가 여전히 소중하다
우리 사회는 12월3일 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경험하리라 상상하지 못했던 계엄·내란을 겪었다. 그 밤에 국회로 달려간 시민들, 계엄해제를 위해 국회 본청까지 뚫고 들어간 국회의원들의 용기와 지혜로 계엄은 해제되고 내란 종식의 가닥을 잡았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시민들의 눈과 귀가 막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언론을 통제하겠다는 계엄 포고령에도 불구하고 거의 모든 언론사들의 취재 보도가 가능했고, 계엄 세력들은 시민들의 소통을 막기 위해 통신을 통제하지는 못했다. 만약에 계엄 해제가 이루어지지 않고, 언론을 제대로 통제한 상태에서 시민들의 저항을 반국가세력의 난동으로 몰고, 북한의 준동이 있었다는 가상의 상황을 연출하는 데 성공했다면 우리 사회는 수십 년 전의 암흑시대로 돌아갔을 것이다. 아니면 초유의 유혈사태가 벌어졌을 것이다. 사회를 지키는 데 진실의 전달과 공유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경험하는 계기였다.그러나 이런 경험으로 얻은 교훈을 비상의 시기만이 아닌 일상의 삶에... -
시선
다시 만날 세계
여성가족부 해체를 공약으로 내세웠던 국민의힘 대통령이 급기야는 내란죄를 일으켜 탄핵을 앞뒀다. 대통령의 불법적 명령을 따라 국회를 침탈하려던 군인들을 향해 부끄러운 줄 알라며 소리치던 1989년생 여성 정치인 안귀령은 한 외신이 뽑은 ‘2024년 가장 인상적인 이미지 12’에 뽑혔다. 색색의 응원봉으로 자신이 소중히 여기던 존재들을 아낌없이 응원해왔던 2030 청년여성들은 침탈당한 민주주의 복원을 위해 광장에서 그 응원봉을 높이 들었다. 그 사랑과 용기와 정의감과 단호함이 든든하고 고맙고 소중하다.한국 사회의 구조적 기울기를 들여다보면 그런 에너지가 대체 어디서 나올 수 있는지 경이로울 지경이다. 여성들은 비정규직과 시간제 노동 등 불안정한 소득 노동직으로 내몰리는 정도가 남성에 비해 더 극심해 한국 남성 평균소득의 59%밖에 벌지 못하며 살아간다. 임금노동을 기본값으로 두고 만든 사회보장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일 가능성 또한 너무나 높다. 높은 청년여성 자살률이 이런 사회적 구... -
詩想과 세상
꽃잎2
꽃을 주세요 우리의 고뇌를 위해서꽃을 주세요 뜻밖의 일을 위해서꽃을 주세요 아까와는 다른 시간을 위해서노란 꽃을 주세요 금이 간 꽃을노란 꽃을 주세요 하얘져가는 꽃을노란 꽃을 주세요 넓어져가는 소란을노란 꽃을 받으세요 원수를 지우기 위해서노란 꽃을 받으세요 우리가 아닌 것을 위해서노란 꽃을 받으세요 거룩한 우연을 위해서꽃을 찾기 전의 것을 잊어버리세요꽃의 글자가 비뚤어지지 않게꽃을 찾기 전의 것을 잊어버리세요꽃의 소음이 바로 들어오게꽃을 찾기 전의 것을 잊어버리세요꽃의 글자가 다시 비뚤어지게내 말을 믿으세요 노란 꽃을못 보는 글자를 믿으세요 노란 꽃을떨리는 글자를 믿으세요 노란 꽃을영원히 떨리면서 빼먹은 모든 꽃잎을 믿으세요보기 싫은 노란 꽃을 김수영(1921~1968)시인에게 꽃은 움직이는 영원성이자, “다른 시간”인 듯하다. “꽃을 주세요”로 시작하는 이 시는 꽃을 달라고, 꽃... -
아침을 열며
2000년대 첫 사반세기를 보내는 우울과 기대
이틀 뒤면 2000년대가 시작되고도 ‘사반세기’가 흐른 시간대를 맞이한다. 한 세기의 4분의 1이라는 뜻의 사반세기라는 단어는 중후함이라든가 장대함 같은 느낌을 준다. 실제로 인간의 삶에서 25년은 짧은 시간이 아니다. 많은 변화와 발전을 기대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그래서 사반세기라는 단어는 긴 시간 동안 큰 변화가 일어났다거나, 반대로 어떤 현상이 꾸준히 지속됐음을 서술하는 문장에서 자주 사용된다.새로운 1000년을 맞이하던 25년 전 사람들에겐 ‘평화와 번영’에 대한 희망과 기대가 있었다. 세계적으론 미·소 냉전이 종식된 뒤였고, 한국은 IMF 외환위기의 터널을 완전히 빠져나오지 못했지만 오랜 군부 권위주의 독재를 청산하고 민주화를 이룩했다는 자부심이 팽배했다.사반세기가 흐른 지금, 그때 가졌던 희망과 기대를 떠올리면 모두가 허망한 느낌이 들 것이다. 냉전 종식으로 평화가 찾아올 거란 기대는 21세기 벽두에 미국에서 터진 9·11 테러로 처음부터 깨져 나갔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