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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김진숙, 그가 다시 길 위에 섰다
2021년 2월, 백기완 선생은 세상을 떠나기 전 여섯 글자를 썼다. “김진숙 힘내라.” 앞으로는 노동자가 억울하게 죽는 일, 해고되는 일은 없게 하라는 마지막 당부였다.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 당시 그는 암과 싸우면서도 부산에서 청와대까지 34일 동안 도보행진을 했다. 공권력에 의한 불법연행과 폭력을 인정하고 부당한 해고를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실로 피맺힌 호소였다. 그것은 이 땅에 살고 있는 또 다른 김진숙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일이기도 했다. 자신의 이름 대신 공돌이, 공순이로 살아야 했던 노동자, 그들에게 가해졌던 학대와 착취에 대한 ‘최소한의 속죄’를 요구했다. 수백명의 시민과 노동자가 함께 걸었고, 언론은 그의 행적을 비상하게 추적했다. 도보행진을 마치고 김진숙은 청와대를 향해 외쳤다. “전두환 정권에서 해고된 김진숙은 왜 36년째 해고자인가. 그 대답을 듣고 싶어 34일을 걸어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 약속들이 왜 지켜지지 않는지 묻고 싶어 한 ... -
국제칼럼
종이교과서로 회귀하는 북유럽
2025년 3월 우리나라에서 인공지능(AI) 디지털교과서가 초등 3·4학년과 중·고등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도입될 예정이라 한다. AI 기반 교과서가 개별 학생의 학습 데이터를 수집해 학생의 수준과 이해도를 측정한 뒤, 그에 맞는 학습자료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를 근거로 교육부는 AI 디지털교과서를 통해 맞춤형 교육을 제공해 학생들의 학습능률을 높일 거라 기대한다. 하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특히 다수는 디지털기기 사용 증가로 이미 약화된 학생들의 집중력과 통제력, 문해력이 더 저하될 거라 염려한다.한편 교실의 디지털화에 적극적이던 북유럽 국가들은 종이교과서로 회귀하고 있다. 스웨덴의 학교장관(Minister of School) 로타 에드홀름은 2023년 교육환경의 과도한 디지털화가 교육현장을 망치고 있다며 태블릿, 디지털 학습 등에 의존해오던 교육을 인쇄된 책, 독서, 손글씨 연습 등을 중심으로 한 전통적 방식으로 되돌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같은 해 8... -
송두율 칼럼
검찰 독재를 생각하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공직선거법 위반과 위증교사에 대한 1심 판결의 결과를 둘러싸고 한국 사회가 흡사 두 동강이 난 것 같은 느낌을 멀리서도 받는다. 정적을 완전히 제거하는 ‘사법살인’이라는 비판부터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인 재판부의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는 주장이 서로 날카롭게 맞서고 있다. 정치의 하수인이 된 사법부를 질타하고, 정치로부터 독립적이며 자율적인 사법부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지만, 판결의 결과에 따라 희비가 갈리기도 한다.법과 정치의 긴장관계를 보여주는 이런 모습은 사실 어느 사회건 존재한다. 법은 시민의 행위를 규정하는 규범으로서 이들이 이해할 수 있게 서술되어야 하고, 정의와 효율성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뜻에서 몽테스키외는 법은 판결로 말한다고 해서 판결은 ‘법의 입’(la bouche des lois)이라고 했다. 그러나 자신이 내린 판결이 법의 본성에 어긋났다고 인정하는 판사는 거의 없을 것이고, 마찬가지로 정치인들도 그들의 정치행위의 자유를... -
기고
회전교차로 통행 안전성 더 높이려면
회전교차로는 신호교차로에 비해 대기시간이 짧고 비신호교차로에 비해 안전성을 높일 수 있는데, 교통량이 너무 많지 않은 1~2차로의 교차로에 효과적이다. 이러한 장점 때문에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널리 이용되고 있다.한국교통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신호교차로나 비신호교차로를 회전교차로로 전환한 뒤 통행시간이 평균 27%, 사고건수는 연평균 44% 감소했는데 특히 사망사고가 반으로 줄었다.우리나라에서는 2010년대 도입된 후 전국에 2500개 이상 설치되어 회전교차로에서의 사고도 2022년 1402건으로 10년 전에 비해 약 2배로 증가했다. 회전교차로가 4배가량으로 늘어난 것을 감안하면 사망사고 수는 76%나 줄어든 셈이다.회전교차로는 느는데 통행방법을 모르는 운전자가 많아 외려 지체를 유발하거나 위험 상황이 생기곤 한다. 도로교통법에 따르면 회전교차로에선 원형 섬을 반시계 방향으로 회전하며 통과하는데 교차로 진입 차량은 좌측에서 이미 회전 중인 차량에 양보해야 한다... -
기자메모
한동훈의 ‘동덕여대 주동자론’, 공허한 메시지로 들리는 까닭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 7월 “패스트트랙 당시 물리적 충돌 사건은 공수처법 등 악법을 막기 위해 처벌을 감수했던 사건”이라며 “끝까지 당이 챙겨야 한다”고 밝혔다.한 대표가 언급한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 사건은 2019년 4월 국회에서 벌어졌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도입 입법을 막으려고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의원들이 국회에서 감금과 점거, 강탈과 파손 행위를 했다. 검찰은 특수공무집행방해와 폭력행위 등 처벌법 위반(공동감금) 등 혐의로 이들을 기소했다. 나경원·이철규·윤한홍 의원 등이 이 일로 4년11개월째 재판을 받고 있다.“배움의 전당이기 때문에 유야무야 넘어가지 말고 명확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한 대표는 최근 동덕여대에서 벌어진 공학 전환 반대 시위를 두고 이같이 말했다. 그는 “주동자 책임”을 물으며 학생들을 겨눴고, ‘폭력은 용납될 수 없다’는 민주주의 대원칙을 내세웠다. 민의의 전당에는 관대하고, 배움의 전당에 엄정한 그... -
사설
재벌 일감 몰아줘 사익 편취 증가, ‘주주 충실’ 상법 개정해야
공정거래위원회가 26일 발표한 ‘2024년 공시대상기업집단의 내부거래 현황’을 보면 지난해 88개 재벌·대기업의 국내 계열사 간 내부거래 비중은 12.8%로 파악됐다. 1년 전보다 0.6%포인트 또 증가했다. 내부거래는 같은 기업집단 내 회사끼리 상품이나 서비스를 사고파는 행위다. 일감 밀어주기 등을 통해 시장의 공정 경쟁을 해치고 총수의 사익편취 통로로 악용되기 십상이다. 공정위에 따르면, 이들 기업의 전체 매출액(2164조2000억원)은 1년 전보다 87조2000억원 줄었는데 국내 내부거래 금액은 277조9000억원으로 오히려 2조8000억원 늘었다.특기할 사실은 총수 지분이 많을수록 내부거래 비중도 높다는 점이다. 총수 일가 지분율이 20% 이상인 회사의 내부거래 비중은 11%인 반면, 지분율 100% 회사의 내부거래 비중은 26%로 배 이상 높았다. 총수 2세의 지분율이 50% 이상인 계열회사의 내부거래 비중은 29%로 전년 대비 3.2%포인트 늘었다. 이런 내부거래의 8... -
여적
로제의 눈물
대중문화 예술인들은 대표적인 감정노동자다. 악플이나 루머의 표적이 되기 쉽고 얼굴이 알려져 사생활에도 제약이 많다. 대중적 자아와 개인적 자아가 늘 충돌하면서 내면의 갈등도 극심하다. 100점이나 정답이 없는 예술 세계에선 아무리 노력해도 만족하기 어렵고, 그런 탓에 대중들의 비판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K팝 아이돌에서 글로벌 아티스트로 성장한 로제가 미국 뉴욕타임스와 최근 한 인터뷰는 화려한 조명의 사각지대에 꾹꾹 감춰진 아티스트들의 고단한 내면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35분 분량의 팟캐스트로 지난 23일 공개된 인터뷰에서 로제는 아침 9시반 기상해 새벽 2시까지 보컬·댄스, 어학 훈련이 반복되는 연습생 과정이 얼마나 혹독한지 외부인들은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낙담할 때도 있었지만, 호주로 돌아가 친구들에게 실패한 과정을 설명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그를 단단하게 만들었고, 결국 “살아남았다”고 했다. 데뷔 초기 몇해가 어려웠지만 “실은 아직도 힘들다”며 이런 감... -
사설
늘어나는 비혼 출산, 사회적 인식도 달라져야
배우 정우성씨와 모델 문가비씨의 비혼 출산을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과도한 가십성 기사가 넘쳐나고 전통적 가족관에 함몰된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는 시각도 있지만, 우리 사회가 다양한 가족 구성 형태와 출산 방식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지난 22일 문씨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아이의 출산 소식을 알리자, 정씨는 자신이 아이의 친부임을 알리면서 아이 출산으로 인한 결혼 계획은 없지만 양육 책임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20~29세 청년 중 ‘결혼하지 않고도 자녀를 낳을 수 있다’고 응답한 사람이 전체의 42.8%에 달했다. 10년 전과 비교하면 12.5%포인트나 증가한 것이다. 2020년 정자 기증으로 자녀를 출산한 방송인 사유리씨나 정우성·문가비씨와 같이 유명 연예인의 비혼 출산 공개가 주위 시선 때문에 비혼 출산을 꺼리는 사회적 분위기를 바꿔나가는 데 일조할 수 있을 거란 기대감을 갖게 한다.반대로, 정씨와 문씨의... -
사설
‘김건희 특검’ 세번째 거부한 윤 대통령, 끝내 민심 등질텐가
윤석열 대통령이 26일 국회를 통과한 ‘김건희 여사 특검법’에 대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김 여사 특검법으로는 세번째, 법안으로는 임기 중 25번째 거부권 행사다. 전날 대통령실과 여당이 대규모 오찬을 한 것도 다음 달 10일 국회 재표결을 염두에 둔 ‘집안 단속’으로밖엔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김 여사 방탄 외엔 어떤 것도 국정 우선순위가 될 수 없다는 것인지 혀를 차게 된다. 윤 대통령과 여당은 국민 다수가 원하는 특검을 언제까지고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임을 알아야 한다.한덕수 국무총리는 이날 국무회의에서 특검법 재의요구안을 의결하면서 “위헌” “입법부의 권한 남용”이라고 했다. 앞서 지난 7일 윤 대통령이 대국민 회견에서 특검법에 대해 “반헌법적” “정치 선동”이라고 격분하던 것과 같은 주장이다. 하지만 이번 특검법은 야당이 수사 대상을 명태균씨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두 가지로 축소하고, 여당 요구대로 제3자 추천 특검으로 내용을 수정해 보수 ... -
플랫
‘차별금지법’에 반대하는 ‘논리’라는 ‘괴담’
지난 국회에서 발의되었던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국회 임기가 끝나면서 자동 폐기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별금지법에 대한 공격은 오히려 거세지고 있다. 지난달에는 개신교 단체들이 동성결혼 및 차별금지법에 반대하는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큰 혼란이 발생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번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당선된 배경에 젠더 이론이나 ‘정치적 올바름’(PC)에 대한 반감이 자리 잡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이들이 우려하는 일들은 실제로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남성이 갑자기 여성으로 성별을 바꾸고서 여성용 화장실·탈의실·사우나를 이용한다든가, 남성적인 근육과 신체능력을 상당 부분 유지한 채로 여성 운동경기에 출전하는 사례들이다. 이들은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한국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여성용 사우나에 전형적인 남성의 외모를 가진 사람이 들어온다면 큰 당혹감과 위협감을 느낄 것이다. 여자부 경기에서 상대팀의 트랜스여성이 맹활약하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