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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그래도 국회는 ‘민생’을 저버리지 말라
계엄이라는 블랙홀에 온 정국이 빨려들어가고 있다. 연일 새로 밝혀지는 구체적인 12월3일 밤의 상황을 보면, 천만다행으로 유혈사태는 없었으나, 도저히 2024년 대한민국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 시도되고 실행되었다. 어찌 이러한 참담한 일이 일어났는지 그 배경을 샅샅이 밝히는 것은 물론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헌법과 법률에 따른 조치를 하는 것도 당연하다. 할 수만 있다면 윤석열 대통령에게 왜 이런 일을 하필 12월 초에 벌였는가 따져 묻고 싶다. 물론 1년 중 그 어느 때라도 발생해서는 안 되는 반헌법적인 일임은 분명하나, 특히 12월이 서민의 삶에 얼마나 중요한 시절인지 대통령은 정녕 몰랐을까.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되면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 더 춥고 힘들어지는 시기이자, 국회와 정부가 올해 묵은 일들을 마무리하면서 새해를 앞두고 많은 일을 처리하는 달이다. 그럼에도 난데없는 비상계엄으로 정부와 국회가 마비 상태에 빠져버렸다.일단, 새해 예산이 문제다. 대한민... -
우리말 산책
‘농단’하는 자 밑에 ‘농간’ 부리는 자 있다
옛날에 한 시장이 있었다, 사람들이 각자 필요한 것을 물물교환하는, 굳이 잇속을 챙기기 위해 아웅다웅할 일이 없는 장터였다. 그런데 이 시장을 눈여겨본 장사꾼이 있었다. 그는 순박한 사람들이 많이 모여드는 시장이 큰 이익을 챙길 수 있는 곳임을 직감했다. 그는 먼저 시장 근처의 높은 언덕에 올라가 시장을 내려다보며 목이 가장 좋은 자리를 찾은 뒤 그곳에 자리를 깔았다. 그러고는 사람들이 필요로 할 만한 것을 사 모은 후 독점적으로 비싸게 되팔았다. 서로 물건을 교환할 뿐 아무도 돈벌이를 하지 않던 곳에서 장사꾼은 그동안의 질서를 교란하며 독점을 통해 혼자 큰 이익을 챙겼다. 이런 행태에 사람들은 장사꾼에게 비난을 퍼부었다.이 이야기는 <맹자(孟子)>의 ‘공손추(公孫丑)’에 나오는 것으로,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국정농단’의 ‘농단’이 여기에서 유래했다. ‘밭두둑’이나 ‘언덕’을 뜻하는 농(壟)과 ‘끊다’를 의미하는 단(斷)으로 이루어진 농단은 한자 그대로는 “깎아 ... -
복길의 채무일기
슬픔의 K팝 집회
‘여자는 감정적’이라는 말은 쉽게 사용되지만, 정작 화가 난다고 사람을 위협하고 물건을 던지고 폭력을 휘두르는 이들의 얼굴을 떠올려보면 그것이 새삼 얼마나 상투적 표현이었는지를 깨닫게 된다. 마음을 누르고 감추어야 하는 사람의 손은 늘 비어 있어야 했다. 그런데 어떤 자리에 있는 여자들은 모두 손에 무언가를 하나씩 들고 있었다. 사람은 짱돌 하나만 쥐고 있어도 용기가 생기는 법이니 손 안을 채운 그들의 얼굴이 자유롭고 비장해 보인 것은 비단 나만의 느낌은 아니었을 것이다.K팝 응원봉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2018년 출시된 NCT의 ‘믐뭔봄’(기존의 둥근 형태에서 벗어난 직육면체 모양 때문에 붙은 별칭이다)을 보고 나서였다. 압도적인 크기와 생김새 때문에 종종 ‘돈까스 망치’에 비유되기도 하는 ‘믐뭔봄’은 발광 또한 남달라 어두운 곳에서는 그 적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무리 봐도 그것은 누군가를 응원하기 위해 고안된 장치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건 마치 어둠 속에서 몇 명이나 ... -
노래와 세상
촛불
촛불을 켜든 시민들이 다시 광장에 모였다. 우리는 수천, 수만의 촛불이 모이면 무시할 수 없는 힘이 된다는 걸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1979년 계엄령을 전후해서 발표된 뒤 오늘날까지 사랑받는 노래가 있다. 정태춘과 조용필의 ‘촛불’이다.‘소리 없이 어둠이 내리고/ 길손처럼 또 밤이 찾아오면/ 창가에 촛불 밝혀 두리라/ 외로움을 태우리라/ 나를 버리신 내 님 생각에/ 오늘도 잠 못 이뤄 지새우며/ 촛불만 하염없이 태우노라/ 이 밤이 다 가도록….’1978년에 정태춘이 만들고 부른 ‘촛불’은 서정성이 돋보이는 포크음악이다. 이듬해 정태춘은 이 노래로 TBC 방송가요대상 작사상을 받았다. 훗날 정태춘은 실연의 아픔을 담아 부른 노래였다고 말했다. 지금 정태춘은 촛불을 켜든 광장에 가장 먼저 달려가는 가수다.1980년 조용필이 발표한 ‘촛불’도 사랑 노래다. 조용필은 어느 날 TBC(현 KBS 별관) 현관에서 평소 알고 지내던 드라마국장과 마주쳤다. “어이,... -
NGO 발언대
고단하더라도 같이 챙겨서 나아가기를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처음에는 황당함과 공포가 뒤섞인 두 시간이었고, 이후 동이 트기 전까지 차가운 겨울밤을 마다하지 않고 거리로 나선 시민들 덕분에 안도와 감동, 그리고 자부심으로 밤을 지새웠다. 붕괴 위기에 놓인 국가를 시민의 손으로 버티고 지켜냈지만, 국민의힘은 마지막 책임마저 저버리고 내란의 공범이 되기를 선택했다.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윤석열과 그의 친위부대를 온당히 처벌할 때까지, 시민들은 언제까지나 힘을 모아줄 것이기에 두렵지는 않으나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불경기로 인해 먹고사는 고민도 깊고 망국적인 정권을 끌어내리느라 누구라도 쉴 틈 없이 바쁘겠지만, 절대 놓쳐선 안 될 교훈이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는 한국사회의 고질적 시스템을 성찰하는 시간을 가졌지만, 10년도 채 지나지 않아 이태원 참사가 발생했다. 혐오와 갈등, 각자도생 사회로 치닫는 열차는 멈추지 않았고, 불평등과 기후위기, 지방소멸 등의 시대적 과제들은 정... -
여적
‘소신 투표’ 안철수·김예지·김상욱
국회의원은 저마다 독립된 헌법기관이다. 헌법 제46조 2항이 ‘국회의원은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고 규정한 대로 국민 대표자로서 의사결정을 해야 하지만, 현실이 그렇지만은 않다. 정치 결사체인 정당은 번번이, 특히 중요한 표결을 앞두고 당론을 정해 따를 것을 요구한다. 의원이 당론을 거스르고 소신을 지키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당 지도부 눈 밖에 나고, 차기 공천에서 불이익을 감수해야 할 수도 있다.지난 7일 국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에 195명이 참여했다. 재적 의원 300명의 3분의 2를 넘지 못한 의결정족수 부족으로, 탄핵안은 투표함을 열어보지도 못한 채 자동폐기됐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당론으로 윤석열의 탄핵안 표결에 집단 불참했고, 안철수·김예지·김상욱 의원 3명만이 표결에 참여했다.안 의원은 오후 5시45분 탄핵안이 본회의에 상정될 때 여당 의원으로선 유일하게 의석에 앉아 있다, 예고한 대로 ‘찬성 표결’을 했다. 안 의원은 “헌법... -
사설
내란 방조자들과 방탄 여당이 국정 이끌 수 없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한덕수 국무총리가 8일 대통령 윤석열의 2선 후퇴와 당정의 공동 국정 운영을 골자로 한 비상계엄 사태 수습 방안을 발표했다. 그러면서 “질서 있는 퇴진”이라고 했다. 전날 국민의힘은 국회 표결에 집단 불참해 대통령 탄핵소추를 무산시켰다. 비상계엄에 연루된 총리와 방탄 여당이 반역사적인 내란 사태 후 국가 위기를 수습하겠다는데 민심이 용납하지 않는다.헌법 파괴 행위는 헌법적 제도·절차에 따라 청산될 때만 온전하게 매듭지어질 수 있다. 민심은 하루라도 내란 수괴 윤석열을 그 자리에 두지 말라는 것이다. 헌법·법률에도 없는 기묘한 당정 통치는 절대 국민이 원하는 바가 아니다. 민주주의 유린에 공동책임을 져야 할 당정은 국정 운영도, 정국 수습도 할 자격 자체가 없다.한 대표는 이날 대국민 공동담화에서 “질서 있는 대통령 조기 퇴진으로 혼란을 최소화하며 안정적으로 정국을 수습하고 자유민주주의를 바로 세우겠다”고 밝혔다. “대통령 퇴진 전까지 총리가 당과 긴... -
사설
더 크고 젊어진 촛불, 빛나고 성숙한 시민 저항
대통령 윤석열의 탄핵 표결이 불발된 지난 7일, 국회 앞에는 100만명의 인파가 운집했다. 낮부터 모인 시민들은 탄핵안이 폐기된 밤늦게까지 “탄핵”을 목이 터져라 외쳤다. 광주·대구 등 전국에서도 윤석열의 계엄 선포에 분노한 시민들이 거리를 가득 메웠지만, 어디서도 불상사는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추운 날씨에도 국회 앞 집회 현장은 엄중하면서 유쾌했다. 시민들은 탄핵 무산에 눈물 흘렸지만, 다시 모이자며 헤어졌다. 비상계엄 단어가 생소한 젊은층의 시위 문화도 주목받았다. 이들은 촛불 대신 K팝 응원봉을 들고, 로제의 ‘APT’ 등에 맞춰 노래 부르거나 개사해 “타도, 윤석열”을 외쳤다. 집회가 폭발적으로 커지고, 더 젊어진 것이다. 집회에 못 온 국내외 기성세대들은 커피 마시라고 카페에 선결제해놓으며 힘을 보탰다. 국회 앞에 시민을 내려준 택시기사가 요금 결제를 취소한 영수증을 올린 글은 가슴 뭉클하게 했다. 민주주의가 훼손돼선 안 된다는 간절한 염원이 모인 결과다. 그러면... -
사설
김용현 내란 단죄하고, 그 수괴 윤석열 체포하라
검찰이 8일 대통령 윤석열을 내란죄 피의자로 입건하고 김용현 전 국방장관을 긴급체포했다. 김용현은 이날 새벽 제 발로 검찰청에 걸어들어가 수사를 받겠다고 자청했다. 박세현 검찰 특별수사본부장은 사건의 본질을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국헌문란을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킨 것”으로 규정했다. 경찰 국가수사본부도 김용현의 장관 집무실과 공관 등을 압수수색했다. 국민의힘 방해로 국회에서 윤석열 직무정지가 불발됐지만, 12·3 내란 사태 수사가 윤석열을 정조준하기 시작했다.김용현 체포는 한참 늦었다. 스스로 언론 인터뷰를 통해 범행 사실을 자백한 게 지난 4일이다. 그사이 휴대전화도 교체했다. 김용현이 원하는 시간에 자진 출두하게 해준 것도 문제다. 국방장관 사임 후에도 공관에 거주하는 특권을 누리고 있어서 강제력이 미치지 못했다는 건 변명이다. 검찰의 김용현 체포가 신변보호는 아닌지 의심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윤석열을 비롯한 핵심 관련자들은 지난 4일 새벽 비상계엄 해제 후 입을 맞추... -
김민아의 훅hook
한동훈·국민의힘, ‘윤석열 탄핵’이 공멸을 면하는 길
12월 3일 밤 10시30분쯤.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카카오톡이 울렸다. “비상계엄 선포?” 미국에 있는 가족이 보낸 메시지였다. 짜증이 났다. 장난칠 게 따로 있지 싶었다. 뉴스전문채널로 돌렸다. 실제 상황이었다. 여행용 보스턴백을 꺼냈다. 옷가지와 보조배터리 등을 담았다. 패딩을 입고 회사로 달렸다.보스턴백을 여는 일은 다행히 일어나지 않았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윤석열 대통령을 조롱하는 밈(meme)이 넘쳐났다. 시민을 총으로 위협한 지도자를 끌어내리는 일은 당연하고, 쉬워 보였다.순진했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 6당이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하자 여당이 본색을 드러냈다. 국민의힘은 4일 심야 의원총회에서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채택했다. 비상계엄이 선포되자마자 “위헌”이라 선언했던 한동훈 대표도 오락가락했다. “당대표로서 이번 탄핵은 국민과 지지자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 통과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5일 최고위원회의).6일 오전 다시 말이 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