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독립영화계 대부 와카마쓰 감독 타계읽음

백은하 기자

일본 독립영화계의 대부, 핑크영화의 선구자, 과격한 좌파 영화인, 와카마쓰 고지(若松 孝二) 감독이 향년 76세로 타계했다.

지난 12일 횡단보도를 건너다 택시에 치여 병원으로 이송된 와카마쓰 감독은 17일 도쿄의 한 병원에서 끝내 숨을 거두었다.

1936년 4월1일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농업고등학교를 졸업한 와카마쓰 감독은 도쿄 신주쿠에서 야쿠자 생활을 하기도 했다.

일본 독립영화계 대부 와카마쓰 감독 타계

그는 “세상에 대한 복수의 방법으로 소설가나 영화감독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야쿠자 활동 당시 알던 프로듀서의 도움으로 영화계에 입문했다. 1963년 데뷔작 <달콤한 덫>을 비롯, 다수의 저예산 로망 포르노 영화를 통해 일본사회를 정치적으로 비판했다. 1960~1970년대 좌파 투쟁의 흐름 속에서 영화의 혁명을 부르짖었고 지금까지도 일본 독립영화의 정신적 지주로 추앙받던 일본의 거장이다. ‘성과 폭력의 작가’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와카마쓰 감독은 일본 정치와 사회를 향한 거침없는 발언을 숨기지 않았다. 오시마 나기사의 <감각의 제국>(1976), 야마시타 고사쿠의 <계엄령의 밤>(1980) 등의 제작자로 참여하기도 했다.

데뷔 이후 100편이 넘는 영화를 독립적인 방식으로 찍어온 와카마쓰 감독은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왕성한 창작활동을 이어갔다. 2011년에는 <11·25 자결의 날> <해연호텔 블루> <천년의 유락>이라는 세 편의 영화를 내놓기도 했다.

와카마쓰 감독은 13일 폐막한 제17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을 수상했다. 세 편의 신작을 선보인 것과 동시에 ‘마스터클래스’ 행사 등 그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한국의 관객들과 만났다. 하지만 부산행은 와카마쓰 감독의 마지막 여행이 되었다.

김지석 프로그래머는 “아직 그분께 부산영화제에서 찍은 사진과 핸드 프린팅 동판도 전달하지 못했는데, 실감이 나지 않는다”며 갑작스러운 비보에 허망해했다. 와카마쓰 감독은 일본 원자력 발전소와 동일본 대지진에 관한 영화를 준비 중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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