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채털리 부인의 연인’ 영국서 첫 출간

최희진기자

‘예술과 외설’ 논쟁 속 판매 대박

1960년 11월10일 영국 런던의 최대 서점인 ‘W&G 포일’ 앞에는 아침부터 400여명의 남성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DH 로렌스의 소설 <채털리 부인의 연인>이 이날 영국에서 최초 출간된다는 소식을 듣고 책을 사러 나온 사람들이었다.

<채털리 부인의 연인>은 1928년 이탈리아에서 처음 출판됐지만 영국에서는 60년까지 금서로 묶여있었다. 상류층 여성과 노동계급 남성의 성애 장면을 노골적으로 묘사했다는 이유로 당국의 검열을 통과하지 못했던 탓이다.

[어제의 오늘]1960년 ‘채털리 부인의 연인’ 영국서 첫 출간

‘펭귄’ 출판사는 이날 <채털리 부인의 연인>의 초판 2만부를 모두 팔아치웠다. ‘W&G 포일’은 미리 준비한 300권이 15분 만에 동나 펭귄사에 3000부를 추가 주문했고 ‘셀프리지’ 백화점도 순식간에 250권을 팔았다. 책을 찾는 손님들이 어찌나 많았던지 셀프리지 관계자가 일간 더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1만부를 준비했더라도 다 팔 수 있었을 것”이라고 장담할 정도였다.

<채털리 부인의 연인>은 영국 독자들에게 첫선을 보이자마자 ‘대박’을 터뜨렸지만 출간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당국이 음란출판물법 위반 혐의로 책이 시중에 나오기도 전에 펭귄사를 기소했기 때문이다.

일명 ‘채털리 사건’의 재판은 10월27일부터 시작됐다. EM 포스터와 리처드 호가트 등 걸출한 문인·비평가 35명이 피고인 측 증인을 자처했다. 이들은 법정에 나와 <채털리 부인의 연인>이 지닌 문학적 가치를 역설했고 펭귄사의 무죄를 주장했다.

예술과 외설의 경계는 과연 어디쯤인지 고심하던 배심원들은 11월2일 평결에서 결국 채털리 부인의 손을 들어줬다. 사회 분위기가 여전히 보수적이긴 했지만 문학을 문학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은 성숙해져 있었던 것이다. 배심원들을 향해 “여러분이라면 이 책을 아내나 하인에게 읽히겠느냐”고 물으며 소설을 공격했던 주임검사는 비웃음거리로 전락했다.

이 재판에서 패소한 이후 검열 당국은 음란출판물법을 느슨하게 적용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채털리 부인의 연인>이 영국의 언론·출판 자유에 새로운 지평을 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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