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스러진 사람들-국내

시대의 ‘큰 어른’ 3인 꿈을 남기고

김후남기자

2009년이 저물고 있다. 어느 해나 그렇듯 2009년 또한 곧 역사 속의 시간이 될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올 한 해 많은 이들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하지만 그들의 꿈과 신념은 소중한 자산으로 남아, 살아있는 우리들을 일깨울 터이다. 올해 생을 마감한 각 분야 인사들의 삶의 궤적을 더듬어본다.

[2009 스러진 사람들-국내]시대의 ‘큰 어른’ 3인 꿈을 남기고

정·관·재계- 유신 실세 이후락·비운의 기업인 양정모

두 명의 전직 대통령이 우리 곁을 떠났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5월23일 봉하마을 사저 옆 부엉이바위에서 몸을 던졌다. 아직 63세, 죽음을 택하기엔 이른 나이였다. 노 전 대통령의 장례식에서 통곡하던 김대중 전 대통령도 8월18일 서거했다. 향년 85세였다.

유신시대의 대표적 권력자였던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이 10월31일 영욕의 세월을 85세로 마감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불리며 한 시대를 풍미한 그는 유신체제 붕괴 이후 칩거생활을 하다 조용히 세상을 떴다. 고인은 1973년 8월 일본 도쿄에서 발생한 김대중 납치사건의 배후로 유력하게 거론됐으나, 눈 감는 날까지도 사건의 실체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했다.

11~15대 국회의원과 총무처 장관을 지낸 서석재 전 의원이 12월26일 74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민선 경북지사를 세 번 지낸 이의근 전 지사가 4월21일 일흔한해의 생을 마감했고, 김치열 전 법무부 장관이 6월15일(향년 88세), 김성진 전 문화공보부 장관이 9월17일(향년 77세) 떠났다.

재계에서는 ‘비운의 기업인’ 양정모 전 국제그룹 회장이 3월29일 88세에 눈을 감았다. 양 전 회장은 80년대 재계 서열 7위의 국제그룹을 키워냈으나 5공화국 시절 권력의 미움을 사 그룹이 해체되는 비운을 겪었다. 박용오 전 두산그룹 회장은 11월4일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했다. 2005년 두산그룹 ‘형제의 난’으로 그룹 경영에서 사실상 배제된 그는 지난해 중견 건설사인 성지건설을 인수, 재기에 안간힘을 썼지만 경영에 어려움을 겪다 죽음을 택했다. 향년 72세였다.

종기 치료의 대명사 ‘이명래고약’을 대중화시킨 명래제약 창업주 이용재씨의 타계(11월12일·향년 88세) 소식은 중·장년층에게 잠시 어린 시절을 추억하게 했다.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의 부인 이정화씨도 10월5일 7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다.

종교·학술·체육-평화의 사도 김수환·아시아의 물개 조오련

한국 사회의 ‘큰어른’이던 김수환 추기경이 2월16일 87세를 일기로 선종했다. 1970~80년대 민주화운동에 헌신한 그는 마지막 가는 길에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고인은 특히 각막 기증으로 두 사람에게 빛을 선물함으로써 국내 장기 기증 문화를 활성화하는 데도 큰 족적을 남겼다.

한국 천주교회사 연구의 대가인 최석우 몬시뇰이 7월20일(향년 80세), 90년대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장으로 우리나라 인권운동에 헌신했던 독일인 허창수 신부가 8월26일(향년 68세) 각각 선종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대표회장을 지낸 정진경 목사도 9월3일 88세를 일기로 소천했다. 90년대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의장을 지내며 통일운동에 헌신한 강희남 목사는 6월6일 ‘지금은 민중주체의 시대다’로 시작하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향년 89세였다.

국사학계의 원로인 변태섭 서울대 명예교수가 3월8일 84세를 일기로 눈을 감았다. 한국 고전소설과 신화·설화, 신라 향가 연구에 독보적 업적을 남긴 황패강 단국대 명예교수는 이틀 앞서 3월6일 80세로 타계했다. 70년대의 대표적 민주화운동 인사인 김찬국 전 연세대 명예교수(8월19일·향년 82세)와 장을병 전 성균관대 총장(7월5일·향년 76세)도 세상을 떴다.

‘아시아의 물개’ 조오련씨가 8월4일 고향인 전남 해남의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타계했다. 57세의 아까운 나이였다. 50차례나 한국 기록을 갈아치운 ‘수영 영웅’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모두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여성으로서는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8000m급 14좌 등정에 도전하던 산악인 고미영씨도 7월11일 히말라야 낭가파르밧에서 하산하다 실족사했다. 산이 삶의 전부였던 그는 마흔한살에 한 줌 흙이 되어 산으로 돌아갔다.

문화·예술-희망 전도사 장영희·가곡의 대부 오현명

희망과 배려를 담은 따뜻한 수필로 각박한 영혼을 일깨워 온 장영희 서강대 교수(영문학)가 유방암·척추암에 이어 찾아온 간암을 이기지 못하고 5월9일 숨을 거두었다. 향년 57세였다. 소아마비로 인한 장애, 암이라는 병마와 싸워야 했던 그는 유작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에서도 힘겨운 하루하루를 사는 보통사람들에게 희망을 잊지 말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서강대는 제자 사랑이 남달랐던 장 교수를 기려 지난 9월 ‘고 장영희 장학금’을 제정했다.

“암은 병균이 감염된 게 아니다. 내 몸 속에서 스스로 돋아난 종유석이다. 그래서 나는 내 암조차도 사랑한다”고 했던 화가 김점선씨는 자신의 일부로 여겼던 암과 함께 6월22일 6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김 화백이 눈을 감은 바로 다음날(6월23일),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영문소설 <순교자>의 작가 김은국씨가 미국 매사추세츠주 자택에서 타계했다. 향년 77세. 인간의 고난과 구원, 진리와 위선 등을 깊이있게 다룬 그는 한국 출신 작가로는 처음으로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명됐다. 60여편의 오페라에 출연하고 50여편의 오페라를 연출한 ‘한국 오페라의 산 증인’이자 ‘한국 가곡의 전도사’인 성악가 오현명씨(한양대 명예교수)가 6월24일 85세를 일기로 눈을 감았다. ‘가고파’와 ‘목련화’를 남긴 한국 가곡의 거장 김동진옹도 7월31일 뒤를 따랐다. 향년 96세였다.

진주 검무의 명인 김수악(3월1일·향년 83세), 중고제의 마지막 소리꾼이자 서산 승무 예능보유자인 심화영(11월17일·향년 96세)이 이승에서의 한판 놀음을 마쳤다. 64년 최초의 TV 일일드라마 <눈이 내리는데>를 집필한 방송작가 한운사(8월11일·향년 86세), 한국소설가협회장을 지낸 소설가 정을병(2월18일·향년 75세), 미술비평가이자 국립현대미술관장을 지낸 이경성씨(11월26일·향년 90세)도 뜨거웠던 삶을 마감했다.

대중문화·기타-50년 연기인생 여운계·충무로의 별 장진영

위암으로 투병해오던 배우 장진영씨가 자신의 대표작인 <국화꽃 향기>의 계절인 9월 첫날 37세의 짧은 생을 마쳤다. 미스코리아 충남 진으로 연예계와 연을 맺은 그는 <싱글즈> 등에 출연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여배우로 사랑을 받았다. 장씨와의 순애보로 감동을 준 남편 김영균씨는 최근 두 사람의 사랑을 담은 에세이집 <그녀에게 보내는 마지막 선물>을 출간했다.

탤런트 여운계씨는 50여년간 안방극장에서 웃음과 감동을 선사하다 5월22일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69세. 고인은 죽음을 맞기 며칠 전까지 병세를 숨긴 채 TV 드라마 <장화홍련>에 출연할 만큼 생의 마지막까지 연기에 대한 열정을 불태웠다. 대하 사극에서 선 굵은 연기로 깊은 인상을 남긴 탤런트 김흥기씨도 뇌출혈로 투병한 지 5년 만인 3월6일 63세를 일기로 숨을 거뒀다.

한국 영화계의 거장인 유현목 감독이 6월28일 세상을 떴다. 향년 84세였다. 전후세대의 암울한 현실을 포착한 <오발탄>으로 명성을 얻은 고인은 동국대 연극영화과 교수로 재직하며 수많은 영화인들을 길러냈다. 70년대 하이틴 영화 붐을 일으켰던 문여송 감독도 1월11일 77세로 타계했다. <황성옛터>를 부른 원로가수 이애리수(3월31일·향년 99세), 60년대 섹시스타 도금봉씨(6월3일·향년 76세)는 화려했던 인생 전반기와 달리 복지시설에서 쓸쓸히 눈을 감았다.

세계 패션의 중심부를 누비던 톱모델 김다울씨가 스무살 꽃다운 나이에 자살을 택해 충격을 던졌다. 김씨는 11월19일 프랑스 파리의 자택에서 숨진 채로 발견됐다. 아시아인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런웨이를 화려하게 장식하던 그였지만, 타국에서의 치열한 경쟁이 주는 중압감과 고독감을 이기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54년 국내 최초로 요리학원을 설립한 한국 요리계의 대모 하선정씨도 3월6일 87세를 일기로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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