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주제로 저서 27권 낸 ‘나무 인문학자’
고규홍 작가(57)는 ‘나무 인문학자’로 불린다. 나무와 나무를 둘러싼 사연을 문학적으로 풀어낸 그의 말과 글은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고 있다. 최근엔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요 기업의 임직원을 대상으로 매년 주최하는 ‘찾아가는 직장인 인문학’ 강좌의 강사로 나서 주목을 받았다. 지상파와 케이블 등 방송 출연과 강연을 통해 나무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고 작가를 최근 서울 정동에서 만났다.
그는 나이 마흔에 작가를 꿈꾸며 기자 생활을 접을 때만 해도 지금처럼 ‘나무 전문가’가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한다. 고 작가는 “차장 승진을 눈앞에 두고 있던 터라 주변의 만류가 심했지만, 더 늦어지면 어린 시절부터 품어온 작가란 꿈에 영영 닿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에 과감하게 언론사를 뛰쳐나올 수 있었다”고 했다.
어느덧 18년 전의 일이다. 그간 28권의 책을 펴냈다. 단 한 권을 제외하곤 모두 ‘나무’와 관련된 이야기다. <옛집의 향기, 나무>(2007년), <베토벤의 가계부>(2009년), <천리포에서 보낸 나무 편지>(2012년)는 문체부의 우수교양 도서로 선정됐고, <슈베르트와 나무>는 2016년 한국출판산업진흥원이 선정한 ‘이달의 책’과 문체부 지정 ‘세종도서 교양부문 올해의 책’으로 꼽히기도 했다.
나무와의 인연은 ‘우연처럼’ 다가왔다. “퇴직 이후에 ‘천리포수목원’에 두 달가량 짐을 풀었어요. 절만큼이나 조용한 곳이 필요했거든요. 기자 생활에 몸과 마음이 지쳐 있던 터라 아무 생각 없이 쉬고 싶었습니다. 거기서 우연히 한겨울에 핀 목련을 봤어요. 그동안 사람의 이야기만 쫓아다녔는데, 나무에도 저마다 사연이 있을 것 같더라고요. 그때부터 나무의 이야기를 좇기 시작했죠.”
마흔 살에 식물도감을 샀을 정도로 그는 나무에 별 관심도, 지식도 없었다. “처음에 나무 이야기는 1년 정도만 해볼 생각이었어요. 그러곤 소설을 쓰려고 했죠. 그런데 나무에 얽히고설킨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니, 끝이 없더라고요.”
고 작가를 통해 소개되는 나무엔 언제나 사연이 있다. “목련 얘기를 쓰면서 목련에 얽힌 신화, 전설, 목련을 소재로 쓰인 시 등 ‘나무의 사연’을 다루는 거죠. 정동길에도 560년가량 된 회화나무가 있잖아요. ‘이 나무를 누가, 왜 심었을까’부터 문학적인 상상력을 동원해 가장 합당한 이유를 추측해 나가는 방식이죠. 사람은 떠나도 나무는 자리에 남잖아요. 그렇게 오랜 세월을 살아온 나무의 이야기를 저만의 언어로 끄집어내 소개하는 겁니다.”
고 작가는 작가로 전업한 후 10년이 다 돼서야 이름을 알렸다. 당시 이명박 정권의 4대강 사업으로 인해 환경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면서 고 작가도 함께 주목을 받았다고 한다. “4대강 사업이 한창 진행될 때 강바닥을 파헤치고 수변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환경에 대한 관심이 늘었죠. 정확히 얘기하면 나무 기본 상식부터 특정 나무들에 대한 가치, 역사성 등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거죠. 어느 날부터 고정 칼럼 요청이 오고 강연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간 외면받았던 저의 책들도 관심을 받았고요. 지금은 스케줄을 조절해야 할 정도로 바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기자로서의 경험은 작품 활동에도 유리했다. “ ‘현장에 가지 않으면 쓰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켜왔어요. 그 덕분에 나이를 350여년으로 추정하고 있는 화성 전곡리 물푸레나무를 알리며 천연기념물 제470호에 등록시킬 수 있었죠. 개인 자격으로 천연기념물 등록 신청을 낸 것은 이게 첫 사례였습니다.”
고 작가는 인터뷰 내내 나무의 고마움을 강조했다. “나무를 전봇대처럼 길가에 서 있는 사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분들에게 한여름 나무 그늘에 들어가 단 30초만이라도 나무를 느껴보라고 권하고 싶어요. 나무와 함께 호흡한다는 느낌을 받으면, 나무의 고마움을 아시게 될 겁니다. 제가 그랬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