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위의 새, 숲보다 무거운 사람 …무얼 말하려는 걸까

배문규 기자

버려진 철사로 작품 만드는 와이어 아티스트 좋아은경씨

버려지는 철사로 작품을 만들어 환경문제를 알리는 좋아은경 작가가 환경재단이 주최한 ‘피스&그린보트’ 행사에서 폐철사로 작업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버려지는 철사로 작품을 만들어 환경문제를 알리는 좋아은경 작가가 환경재단이 주최한 ‘피스&그린보트’ 행사에서 폐철사로 작업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사람마다 생각은 다르겠지만
환경을 생각하며 만든 작품

일회용품 제한 여행도 진행
작은 행동들이 세상을 바꿀 것

달력에 새가 앉았다. 구불구불한 스프링이 물결치듯 이어지다 풀려난 지점에서 솟아오른 새는 발톱으로 앙상한 나뭇가지를 쥐었다. ‘와이어 아티스트’ 좋아은경 작가(34·본명 김은경)가 달력을 감싼 용수철을 구부려 만든 ‘침묵의 봄’이라는 작품이다.

지난 14일 환경재단의 ‘피스&그린보트’에서 만난 좋아은경 작가는 “일상 속에서 쓸모를 다하고 버려진 철사를 수집해 작업한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환경재단은 그를 ‘녹슨 철사로 생명의 존엄을 일깨우는 사람’으로 평가한다. 2013년 첫 개인전을 연 이래 해마다 각종 환경전시를 개최하고, 환경 관련 단체들에서 워크숍 강사로 꾸준히 초청받고 있다. 피스&그린보트에서는 선상학교 멘토링에 참여하고 있다.

침묵의 봄 Silent Spring.  좋아은경 제공

침묵의 봄 Silent Spring. 좋아은경 제공

그는 2010년 대학 졸업 후 국내 1호 환경디자이너 윤호섭 국민대 명예교수를 도우면서 환경디자인에 대한 감각을 길렀다. 2012년 여름 무심코 달력을 넘기다가 달력 스프링을 풀어서 처음 새 모양을 만들었다.

마침 그해는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 출간 50주년이었다. 열두 달이 지나면 쓰임을 잃어버리는 달력 위에 앙상한 새의 모습이 겹쳐졌다. 작품을 본 윤 교수는 “좋은 아이디어”라며 환경 관련 전시회인 ‘녹색여름전’에 출품하도록 했다. 그때부터 작가는 일상에서 흔하게 쓰이고 버려지는 철사를 가져다 작품을 만들었다. 제과점의 빵끈부터 마트에서 파는 채소 묶음에 통신용 케이블선까지 사용처가 이렇게 많은 것에 놀랐다. 금박을 벗겨낸 빵끈 철사로 만든 새는 동물권을 이야기하는 작품이 됐다. 틴케이스에 작은 새 4마리가 누워 있는 작품의 이름은 ‘Dead Bird(죽은 새)’.

“사람들이 처음에는 귀여워하다가 제목을 보면 생각이 복잡해지죠. 새는 왜 죽었을까…. 인간이 편해지려고, 부유해지려고 자연을 파괴할 권리가 있는지 묻는 것이죠.”

균형. 좋아은경 제공

균형. 좋아은경 제공

그의 작품은 직접 이야기하기보다는 생각을 권한다. 채소 묶음 철사를 벗겨내 만든 ‘균형’이라는 작품에선 시소의 왼편에 여러 사람이 서 있고, 오른편에는 단 한 사람만 서 있다. 하지만 시소는 한 사람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작품을 보는 사람마다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 남녀차별, 부의 불평등, 불균형한 공론장 등 다양한 해석이 나오더라”고 그는 전했다. 지난해 여름 기후변화로 인한 사상 최악의 폭염을 겪은 뒤에는 왼편에 많은 사람 대신 여러 그루의 나무를 세웠다. 왜 숲보다 사람이 무거운 것일까.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이 떠올랐어요. 오랜 세월에 걸쳐 숲을 조성한 한 사람의 귀한 노력을 보여주려고 했는데요. 반대로 사람 손에서 톱이나 도끼를 떠올리면 숲의 파괴, 스키를 연상하면 가리왕산 복원 문제까지 연결되겠죠.”

이러한 문제의식을 기반으로 지난겨울에는 일회용품 사용을 최소화하며 여행을 하는 ‘형편없는 살림꾼’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침묵의 봄>에 나오는 “우리는 눈에만 안 보이면 된다며 양탄자 밑으로 먼지를 쓸어 넣어 버리는 속담 속의 형편없는 살림꾼처럼 행동한다”는 구절에서 따온 제목이다.

“지난해는 재활용쓰레기 대란도 있었잖아요. 고래 배안이 비닐로 가득 찬 사진을 봤어요. 문득 저 중 한 장 정도는 내가 버린 쓰레기가 흘러간 것이 아닐까 마음이 무겁더라고요. ‘나 하나쯤이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여행 석 달간 안 쓴 생수병만 300개에 비닐봉지가 600장은 되겠더라고요. 작은 행동에서 변화가 시작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가의 희망은 작품 재료 구하기가 어려워지는 것이다.

“흔하게 쓰는 철사지만, 사실 철은 귀한 자원이잖아요. 우리가 사용하는 물건들의 쓸모에 대해 생각해봤으면 합니다. 현재로선 재료 구하기가 너무 쉬운데 낭비가 줄고 재활용이 늘어서 재료를 사다 쓰는 날이 왔으면 좋겠네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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