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너머 “주…스” 한마디에 ‘당뇨 위급상황’ 직감…‘현장 중심 돌봄 복지’ 전문성으로 귀한 생명 살렸다

류인하 기자

죽어가는 50대 독거남성 구한 양천구 신정3동 주민센터 주윤홍 팀장

서울 양천구 한 임대아파트에서 혼자 사는 50대 남성의 집 안 모습. 지난 17일 동주민센터 주윤홍 복지건강2팀장(아래 사진)이 이 남성과 통화하면서 위급 상황임을 파악하고 병원 치료를 받게 했다.  서울 양천구 제공

서울 양천구 한 임대아파트에서 혼자 사는 50대 남성의 집 안 모습. 지난 17일 동주민센터 주윤홍 복지건강2팀장(아래 사진)이 이 남성과 통화하면서 위급 상황임을 파악하고 병원 치료를 받게 했다. 서울 양천구 제공

위기가구 발굴 업무 ‘베테랑’
발빠른 조치로 고독사 막아

“복지 관련 업무 오래 하다보니
단어 하나로도 상태 파악 가능”

“복지 업무를 오래 하다보면 단어 하나로도 알 수 있거든요. ‘주스’를 찾는 건 그분이 당뇨환자라는 의미예요.”

무심코 지나칠 수 있었던 수화기 너머 목소리에 위험을 직감한 동주민센터 복지담당자의 관심이 죽어가던 독거남성을 살렸다.

서울 양천구 신정3동 주민센터 복지건강2팀 주윤홍 팀장(49·사진)은 지난 17일 오전 ‘취약계층 국민지원금’ 지급 대상자인 A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원금 지급 계좌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긴 수신음만 들릴 뿐 통화는 연결되지 않았다. 직감적으로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렵게 연결된 전화 너머로 들리는 말은 “주…스”였다.

22일 기자와 전화통화를 하면서 주 팀장은 “주스라는 말을 들으면 복지 업무를 오래 한 사람들은 단번에 알거든요. 이분이 당뇨환자라는 것을요”라고 말했다. 당뇨환자는 관리하지 않으면 고혈당 쇼크사 위험이 있었다. 주 팀장은 A씨에게 “지금 주스가 필요하신 거죠? 주스가 마시고 싶다는 말씀이시죠?”라고 여러 차례 물었다. 느릿하게 “네…”라는 대답이 들렸다.

위급상황임을 직감한 주 팀장은 즉시 돌봄매니저·방문간호사와 함께 A씨의 집으로 찾아갔다. A씨가 살고 있는 곳은 신정3동 임대아파트였다. 닫힌 문을 열자 뜨거운 공기가 밖으로 밀려나왔다. A씨는 현관 앞에 주저앉아 있었다. 뼈만 앙상하게 남은 50대 남성 A씨는 “괜찮으시냐”는 주 팀장의 말에 고개조차 들지 못했다. 집 안은 쓰레기로 가득 차 있었다. 냉장고 안에는 부패한 반찬 위로 날파리(하루살이)가 날아다녔다. 에어컨은커녕 선풍기조차 없었다. 고장난 선풍기 한 대만 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전화 너머 “주…스” 한마디에 ‘당뇨 위급상황’ 직감…‘현장 중심 돌봄 복지’ 전문성으로 귀한 생명 살렸다

20년차 베테랑 사회복지담당 공무원인 주 팀장은 매번 위기가구 발굴을 위한 현장방문을 하고 있다.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주 팀장은 위기가구에 ‘양해를 구하고’ 방문 업무를 이어가고 있다. “현장을 가보지 않고 설명만 들어서는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명확하게 알 수가 없어요. 가봐야 알죠. 이번 경우처럼 전화통화로 위기상황을 발견하는 것은 어려워요.”

A씨는 돌봄사각지대 한가운데에 있었다. 임대아파트에 거주하고 있지만 임대료와 관리비, 전기세 등 요금은 A씨의 가족이 계좌이체를 하고 있어 연체된 적이 없었다.

알코올 중독자들은 통상 집 안 곳곳에 대소변을 봐서 악취가 집 밖까지 새어나온다. 이 때문에 이웃들의 악취민원은 복지담당자들에게는 위기가구 발굴의 기회가 된다. 그러나 A씨는 열흘 이상 식사를 못해 대소변도 보지 않은 상태였다. 만약 주 팀장이 집을 찾지 않았다면 고독사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신정3동 돌봄SOS센터는 119와 협력해 A씨를 보라매병원 응급실로 데려갔고, A씨는 현재 입원치료 중이다. 돌봄SOS센터는 수소문 끝에 오랜 기간 연락이 끊겼던 A씨의 가족도 찾았다. 신정3동 동장 등 직원의 설득 끝에 A씨 가족은 그와의 관계회복을 위해 노력해 나가기로 했다. 또 A씨와 같은 중장년 1인 가구에 맞는 정부·서울시의 맞춤형 지원책을 발굴해 지속적으로 돕는 한편, 쓰레기로 가득 찬 A씨의 집 안을 청소하는 등 주거환경도 개선할 예정이다.

주 팀장은 “늘 해오던 업무인데 주목받게 돼서 쑥스럽다”면서도 “늘 현장 중심으로 돌봄복지를 해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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