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진격 막는 ‘오데사의 방패’…‘고려인 김 주지사’와 용감한 주민들

박은하 기자

비탈리 김 미콜라이우 주지사

우크라이나 미콜라이우주의 비탈리 김 주지사가 사회관계망서비스 ‘틱톡’ 영상으로 인사를 전하고 있다. 비탈리 김 틱톡 영상 캡처

우크라이나 미콜라이우주의 비탈리 김 주지사가 사회관계망서비스 ‘틱톡’ 영상으로 인사를 전하고 있다. 비탈리 김 틱톡 영상 캡처

최대 항구 오데사 진입로 차단
주민들에게 용기와 희망 주고
“우리의 화염병에 다 타버릴 것”
비디오 메시지로 러군 조롱도

우크라이나 남부 크름반도(크림반도)에서 이동을 시작해 지난 3일 헤르손을 장악한 러시아군 일부는 서쪽으로 진격했다. 우크라이나 제3도시이자 해군 중심지, 곡물 수출 허브 오데사가 목표다. 러시아군은 ‘오데사 함락’을 우크라이나 전체를 봉쇄하는 기회로 여기고 공세를 쏟아내고 있지만 길목의 미콜라이우에서 막혀 2주 넘게 진격하지 못하고 있다. 미콜라이우주의 비탈리 김 주지사(41)가 미콜라이우의 저항을 이끌며 우크라이나의 또 다른 영웅으로 떠오르고 있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우리는 우크라이나에서 왔습니다.”

김 주지사가 아침마다 틱톡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리는 영상 인사말이다. 그는 전쟁이 발발한 이후 매일 SNS에 전황을 보고하는 영상을 올린다. “오늘은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오늘 하루에 우크라이나 군인 8명이 숨지고 19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러시아군에 빼앗겼던 공항을 탈환했습니다.” 탱크 안에서 영상을 찍기도 한다.

그는 러시아군을 조롱하는 촌철살인의 유머로 잘 알려져 있다. 민간인을 공격하는 러시아군을 바보, 악당, 영화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오크족이라고 부른다. “국장에 닭이 있는 국가가 삼지창이 있는 국가를 이길 수 없습니다.” 러시아 국장에 쌍두독수리가, 우크라이나 국장에 방패와 삼지창이 있다는 걸 활용한 표현이다. 영상을 마무리하는 인사말은 “모두에게 지겨운 밤을”이다. 전쟁 중인 현실을 일깨우면서도 주민의 평화와 안녕을 기원하는 표현이다.

김 주지사의 지시로 미콜라이우시 전역에는 타이어 더미와 휘발유통, 화염병이 깔려 있다. 러시아군이 진입할 경우 폭파시키기 위해 설치해놓은 것이다. 그는 러시아군을 향해 “어느 경로로 진입하든 모든 방향에서 공격을 받을 것”이라며 “미콜라이우는 격자형 가로망에 고층건물이 많아 지붕에서 몰로토프 칵테일(화염병)을 던지기 좋다. 들어왔다가는 다 타버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콜라이우주는 육해공 삼면에서 러시아군의 공격을 받고 있다. 러시아군의 육상 공격은 미사일 위주로 이뤄지고 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15일 하루에만 미콜라이우시에서 시신 132구가 영안실에 안치됐다. 오데사에서도 이날 해군의 폭격으로 2명이 부상했다. 러시아 해군은 개전 첫날부터 오데사를 공격했지만 보급 문제 등으로 육상의 지원이 올 때까지 움직이지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미콜라이우시가 오데사의 방패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김 주지사의 메시지는 러시아군의 포격에 시달리는 미콜라이우 주민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고 있다. 미콜라이우시 인구와 맞먹는 50만명이 그의 SNS를 팔로한다. 주민들 사이에선 “비탈리 김 주지사가 무사한지를 봐야 잠이 들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프랑스 매체 쿠리에앵테르나시오날은 “전쟁 전 김 주지사는 홍보를 너무 많이 한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지금 그의 메시지는 많은 이들에게 불행을 달래는 향유가 되고 있다”며 “시민의 희망을 파괴하지 않으면서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사실적으로 전달하고 말에만 그치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영국 더타임스는 김 주지사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에 이은 우크라이나의 차세대 지도자로 지목했다.

김 주지사는 증조부 때 한반도에서 이주한 고려인 4세이다. 대학에서 조선공학을 전공하고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하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선거운동을 도우며 정계에 뛰어들었다. 주지사는 2020년부터 맡고 있다. 전쟁 전까지만 해도 흑해 연안의 관광 개발이 주된 관심사였다. 아버지 올렉산드르 김은 소련 유소년 농구대표팀 선수로 활약했으며 한국어에 능통하다. 김 주지사도 한국어를 약간 할 줄 아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KBS를 통해 한국의 러시아 제재 동참에 감사를 표하기도 했다.


Today`s HOT
러시아 미사일 공격에 연기 내뿜는 우크라 아파트 인도 44일 총선 시작 주유엔 대사와 회담하는 기시다 총리 뼈대만 남은 덴마크 옛 증권거래소
수상 생존 훈련하는 대만 공군 장병들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불법 집회
폭우로 침수된 두바이 거리 인도네시아 루앙 화산 폭발
인도 라마 나바미 축제 한화 류현진 100승 도전 전통 의상 입은 야지디 소녀들 시드니 쇼핑몰에 붙어있는 검은 리본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