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바로 살아라”보다 제대로 잘 먹는 법부터…“집밥 가르치니 아이들이 달라졌어요”

최미랑 기자

전북 익산 ‘청년식당’ 운영하는

안윤숙 청소년자립학교 이사장

안윤숙 청소년자립학교 이사장이 지난 20일 전북 익산의 청년식당 2호점에서 이곳에서 일하는 청소년들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안윤숙 청소년자립학교 이사장이 지난 20일 전북 익산의 청년식당 2호점에서 이곳에서 일하는 청소년들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사고 친’ 경험 있는 아이들 모아
대안 경제 통해 자립 돕는 모델

청년식당 두 곳서 일하며 공부
안 이사장, 어머니이자 사장님

전북 익산의 대학로에는 두 곳의 ‘청년식당’이 있다. 간판만 보면 평범한 식당 같지만, 사연이 많은 곳이다. 한 번쯤 ‘사고 친’ 경험이 있는 청소년들이 이곳에서 좌충우돌하며 ‘사회생활’을 배운다. 처음엔 한 달도 붙어 있지 못하는 아이들이, 계속 가르치면 여섯 달, 일 년을 버텨낸다고 한다.

“3년간 40명쯤 겪으면서 시행착오를 많이 했어요. 아직도 모르는 게 많지만 일단 이것 하나는 알겠어요. 아이들은 기다려줘야 한다는 것.” 지난 20일 청년식당에서 만난 안윤숙 청소년자립학교 이사장(53)은 이렇게 말했다.

30대에 안 이사장은 ‘늦깎이 대학생’이었다. 상담을 전공할 생각으로, 결혼과 임신으로 중단한 학업을 다시 시작했다.

청소년 문제에 관심이 많아 자연스레 복지와 교정시설에 관심이 갔다. 전공을 사회복지학으로 돌렸고 박사 논문은 청소년 교정시설을 주제로 썼다.

박사 과정 때 전국의 청소년 교정 복지시설을 모두 둘러봤다. 가정에서 보살핌을 받지 못한 아이들이 라면과 과자, 탄산음료를 주식 삼아 먹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결식률도 일반 아동·청소년의 몇 배나 높았다. ‘똑바로 살라’ 교육하는 것에 앞서 제대로, 잘 먹는 법부터 알려주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집밥을 가르치면 아이들 건강에도 도움이 되고, 관련 일거리도 찾아줄 수 있겠구나 싶었다.

“우리 아이들은 시장경제를 통해서는 자립하지 못할 테니, 대안경제를 통해 자립을 돕는 모델을 만들자고 생각했어요.” 안 이사장은 사회복지 전공자, 청소년 교정시설 관계자, 시민단체 관계자들과 머리를 맞대 2년간 이 문제를 연구했다. 때마침 ‘사회적경제’가 크게 주목받던 때라 사회적협동조합을 만들어보자고 덤볐다.

연구 결과를 토대로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제안해 설립 자금을 지원받았고, 2019년 사회적협동조합 청소년자립학교가 출범했다.

현재까지 청소년자립학교에 머무르고 있거나 이곳을 거쳐간 청소년은 30여명이다. 공동주택 ‘블루하우스’에 거주하면서 공부하고 일도 배운다. 청년식당은 청소년들의 일 거점이자 자립학교의 재원 창출 수단이다. 2020년에 1호점, 지난해에 2호점이 문을 열었고 3호점이 준비 중이다. 안 이사장은 청년식당 대표를 맡아 식당 일을 직접 지휘하고, 블루하우스와 식당을 오가며 청소년들을 돌본다.

청년식당에선 아이들에게 먹는 법, 직업관, 사람을 대하는 태도 등 기초적인 것부터 가르친다. 안 이사장은 아이들의 엄마, 선생님이자 ‘사장님’이다. 노동인권을 가르치는 동시에, 일하다 도망간 아이들을 잡아와야 한다. “아이들이 처음엔 일주일도 못 버텨요. 용역을 나가서 하루 벌고 일주일을 노는 삶에 익숙해져 있거든요. 안정된 직업 또는 일터 같은 것을 잘 상상하지 못해요.” 아이들 몇 명이 작심하고 따돌리는 바람에 어렵게 식당에 고용한 사회복지사가 그만두는 일도 벌어졌다. 다행히 지역사회 손님들이 너그럽다. 인근 시청, 대학, 병원 등에서 오는 단골손님들은 가끔 아이들 안부도 물어봐준다.

청소년기본법상 청소년인 24세까지는 이들만을 위한, 특성에 맞는 일터가 따로 있어야 한다는 게 안 이사장의 생각이다. “아이들이 계속 변하는 게 정말 신기해요. 눈 부라리고 삿대질하던 아이들도 어느새 다 제 주변에 돌아와 있어요. 아이들이 원한다면 기회를 계속 줘야 돼요.”

지난 3년간 요리사가 되기로 결심한 아이도 있고, 바리스타가 될 준비를 하는 아이들도 있다. 안 이사장은 아직 방황하는 아이들에겐 “일하지 않아도 좋으니 밥이라도 먹고 가라” 한다.

‘사기꾼이다’ ‘고소하겠다’…. 안 대표는 지난 3년간 아이들로부터 온갖 욕을 들어봤다. 한밤중에 경찰이 찾아와 아이 셋을 체포해간 일도 있고, 퇴소한 아이들이 숙소 문을 따고 들어와 물건을 털어간 적도 있었다.

그래도 그는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재밌고 행복하다”고 말한다. 앞으로 학교 밖 청소년, 시설 퇴소 청소년, 보호종료아동을 두루 보호하는 법정 시설을 만드는 게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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