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손주들에게 진 빚…더 지체하면 안 돼”

글·사진 강한들 기자

어린이대공원에 모인 60대 이상 ‘60+기후행동’ 회원들

60+기후행동 회원들이 5일 세계 환경의날 50주년을 맞아 서울 광진구 어린이대공원 앞에서 ‘멈춤 시위’를 열고 성명서를 발표하고 있다.

60+기후행동 회원들이 5일 세계 환경의날 50주년을 맞아 서울 광진구 어린이대공원 앞에서 ‘멈춤 시위’를 열고 성명서를 발표하고 있다.

“우리 노년세대서 나쁜지도 모르고 개발…지금 보니 환경 파괴”
세계 환경의날 50주년…절박한 상황 전하려 ‘멈춤 시위’ 열어

“우리가 이런 봄을 몇 번이나 더 볼 수 있을까?”

5일 오후 서울 광진구 어린이대공원 앞. 머리가 희끗한 시민들이 현수막을 펼쳤다. 한 사람은 종이 상자를 잘라 뒷면에 “진서·진하야, Only One Earth(오직 하나뿐인 지구) 할머니가 앞장설게”라고 쓴 손팻말도 들었다. 하지만 구호를 크게 외치는 이는 없었다.

60대 이상 회원들로 구성된 60+기후행동은 이날 세계 환경의날 50주년을 맞아 묵언으로 메시지를 전달하자며 ‘멈춤 시위’를 열었다. 세계 환경의날은 1972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렸던 ‘유엔인간환경회의’에서 국제사회가 환경을 보전하기 위해 같이 노력하자고 다짐하며 만들어졌다. 당시 슬로건이었던 ‘하나뿐인 지구’는 50년 만인 올해 세계 환경의날에 다시 슬로건이 됐다. 유엔환경계획(UNEP)은 “지구가 여전히 우리가 가진 살기 좋은 행성임을 강조하고 더 나은 미래를 창조하기 위해 사람과 자연의 균형을 재설정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왜 멈춤 시위를 어린이대공원 앞에서 열었을까. 애초 행동 장소 후보로 한남대교 입구, 광화문 광장 등 장소가 물망에 올랐다. 60+기후행동은 논의 끝에 “어린이와 양육자가 즐겨찾는 장소인 어린이대공원에서 세계 환경의날이 50주년을 맞을 때까지 시간을 허비한 것을 반성하자”며 이곳에 모였다. 또한 ‘세대 간 연결성’을 강조하고자 한 취지도 있었다. 한승동 60+기후행동 행동팀장은 “노년세대는 개발 시대에 나쁜지도 모르고 성장 가도를 달려왔는데 지금 보니 지구와 환경이 파괴됐다”며 “특히 어린이들에게 빚을 진 거고, 그래서 어린이대공원을 장소로 정했다”고 말했다.

60+기후행동 회원들은 ‘절박한 심정’으로 기후 행동에 나섰다고 말했다. 전북 무주에서 작은 텃밭 농사를 짓는 나승인씨(66)는 “텃밭이 너무 가물어서 다 말라가고 있다. 비닐을 안 써보려 하는데 물을 뿌려도 소용이 없다”며 “기후위기를 피부로 느끼며 살고 있다”고 말했다. 60+기후행동 회원인 민윤혜경씨(66)는 “손녀 경은이가 스무 살, 서른 살이 되면 이 세상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는 절박함을 느낀다”며 “할머니로서 손녀가 살 지구를 조금이라도 낫게 만들기 위해서 행동한다”고 말했다.

이날 60+기후행동 회원으로 멈춤 시위에 함께한 이문재 시인은 “우리에게 앞으로 50년이 있을지 없을지 정말 염려가 된다. 책상에 앉아서 글을 쓰는 것보다 밖에 나와서 한 번이라도 더 행동하는 게 절박했다”며 “유엔 세계 환경의날 50주년인데 지구 차원의 생명과 평화의 차원에서 보면 우리 어른들이 지난 50년을 허비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희망의 목소리도 나왔다. 할머니를 따라 손팻말을 직접 만들고 행동에 참여한 이진서양(9)은 “50년 전 지구는 강과 바다도 깨끗하고 환경도 좋았을 것 같다”며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노력하면 깨끗한 지구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60+기후행동은 이날 성명에서 “50년 전 인류는 하늘과 땅의 오염에 놀랐으되 기후위기의 징후까진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지금은 심연을 알 수 없는 기후 파국의 징후에 두려워하고 있다”고 했다. 단체는 “50주년 세계 환경의날을 맞아 유엔은 다시 ‘하나뿐인 지구’를 주제로 위기를 새롭게 인식하려고 애쓰는데, 우리 새 정부는 과연 어떤 고민으로 환경의날을 맞으려 하는지 궁금하다”고 짚었다. 이어 “세계 환경의날 이후 50년을 허비한 우리는 더는 지체할 수 없다. 늦었더라도 행동을 멈출 수 없다”며 “(정부는) 기후 전문가들이 안일하다고 지적한 ‘2050년 탄소제로’ 목표를 앞당겨 달성하기 위한 로드맵을 제시하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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