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강경책 펴다 북·일 접근 땐 한국 소외…미·일 일변도 벗어나야”

서의동 논설위원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장

남기정 서울대 교수(일본연구소장)가 지난 8일 경향신문사에서 한 인터뷰에서 윤석열 정부의 강제동원 해법과 외교정책을 평가하고 있다. 남 교수는 정부의 강제동원 해법에 대해 “외교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 역사에 남을 과오”라며 “(식민지배에 대한) 역사해석권에서 일본이 완승을 거뒀다”고 비판했다. 서성일 선임기자 centing@kyunghyang.com

남기정 서울대 교수(일본연구소장)가 지난 8일 경향신문사에서 한 인터뷰에서 윤석열 정부의 강제동원 해법과 외교정책을 평가하고 있다. 남 교수는 정부의 강제동원 해법에 대해 “외교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 역사에 남을 과오”라며 “(식민지배에 대한) 역사해석권에서 일본이 완승을 거뒀다”고 비판했다. 서성일 선임기자 centing@kyunghyang.com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한 뒤 도쿄대 대학원 총합문화연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고려대와 일본 도호쿠(東北)대, 국민대를 거쳐 서울대 일본연구소 소장으로 재직 중이다. 전후 일본의 정치와 외교를 동아시아 국제정치의 문맥에서 추적·분석하고, 전후 일본의 평화주의와 평화운동에 대해서도 연구하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강제동원 등 한·일관계 현안에 대해 꾸준히 발언해왔다. 일본의 대표적인 진보 지식인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의 제자다. 저서로는 <기지국가의 탄생-일본이 치른 한국전쟁> <아베 시대 일본의 정치와 외교-보수정치가 주도하는 국가혁신> 등이 있다.

북한 위협 과도하게 이용 땐, 일본이 한반도서 미국 외교 대리인 할 수도
남북 소통하며 한반도 완충지대화 의지 보이면 한·미·일 열린 협력 가능
강제동원 해법 외교의 흔적 안 보여…식민지배 역사해석권 ‘일본 완승’
일 총리가 한국 국민에 분명하게 사과하는 게 한·일관계 복원의 최저선

일제 강제동원 피해 배상금을 국내 기업 돈으로만 지급하겠다는 윤석열 정부의 ‘강제징용 대법원 판결 관련 해법’에 대해 일본 주장을 전면 수용한 굴욕 해법이자 외교참사라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주말 서울 도심에서는 대규모 비판집회가 열렸고, 양금덕 할머니 등 강제동원 피해자들은 ‘제3자 변제’를 거부하기로 했다. 일본에선 하야시 요시마사 외무상이 “강제동원은 없었다”는 말로 가해 사실 자체를 부인하며 찬물을 끼얹었다. 이런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하기 위해 16~17일 일본을 방문한다. 여론 반발에도 아랑곳없이 ‘한·일관계 복원’을 향해 돌진하는 형국이다.

한·일관계 전문가인 남기정 서울대 교수(일본연구소장)를 지난 8일 경향신문사에서 만나 정부 발표에 대한 평가, 한·일관계의 바람직한 방향, 윤석열 정부 외교정책 등에 대해 물었다. 남 교수는 한·일관계 복원을 위해서는 “최소한 기시다 총리가 (강제징용 문제에 대해) 한국 국민이 직접 들을 수 있도록 분명하게 사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한·일 양국이 과거 직시와 미래지향, 민주주의와 평화 가치의 공유에 기반한 화해를 이루고 동아시아 평화에 공동 협력하자는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의 취지를 진지하게 성찰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남 교수는 윤석열 정부의 미·일 편중 외교를 비판하면서 “한국이 북한과의 소통을 기반으로 독자적 외교영역을 만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특히 대북 강경태도로 일관하다가 북·일이 접근하는 상황이 벌어져 한국이 소외될 가능성을 우려했다. 일본이 한반도에서 미국의 외교 대리인 역할을 할 개연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 윤석열 정부의 대법원 판결 관련 해법에 대한 총평을 부탁드립니다.

“참사 외에 표현할 말이 없습니다. 외교의 흔적이 안 보이니 외교참사라는 말도 부적절합니다. 왜 외교부 장관이 발표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역사에 남을 과오이고 길게 후과가 남을 것 같습니다.”

-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입니까.

“대법원 판결 취지가 반영돼 있지 않습니다. 사법부 무시는 물론 강제동원 문제를 대법원까지 이끌며 환기시켜온 국민의 노력을 무시한 것입니다. 1965년 체결된 한일기본조약은 식민지배의 불법성에 대해 ‘Agree to disagree(합의하지 않음을 합의)’했다는 취지를 담고 있습니다. 양국 간 합의하지 못했다는 점에 동의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이 선조차 지키지 않겠다는 것이니 역사해석권에서 일본이 완승을 거두게 된 셈입니다.”

- 내용도 그렇지만 너무 서둘렀다는 비판도 나옵니다.

“배상 판결을 집행하기 위한 가해기업 자산의 강제매각(현금화)이 임박하지도 않았는데 서두른 이유가 잘 설명되지 않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한·일 정상회담, 미국 국빈 방문, 히로시마 G7(주요 7개국) 정상회의 등의 외교 일정을 역산(逆算)하고,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등 악재가 닥치기 전에 끝낼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한·미 연합훈련을 염두에 둔 것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북한이 반발해 군사행동을 하면 ‘상황이 이러니 한국과 일본이 협력해야 한다’는 레토릭을 내놓을 수 있으니까요.”

- 일본 경제단체 게이단렌과 전경련이 ‘미래청년기금’을 만드는 방안도 엉뚱해 보입니다.

“가해기업들이 배상기금에 불참하겠다고 하니 나온 것인데, 이는 미쓰비시가 10여년 전부터 거론해온 방안입니다. 가해기업이 참여해 만든 기금으로 어떤 사업을 할지 주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위안부는 매춘부’라고 망언한) 존 마크 램지어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가 미쓰비시 돈을 받지 않았습니까. 가해기업들이 돈을 내더라도 사업은 한국이 맡아야 합니다.”

- 미래청년기금이 양국 민간협력을 활성화하는 데 도움이 되나요.

“정부 간 관계만 나쁘지 시민들 간의 관계는 문제가 없습니다. 코로나19 시기 비대면 채널 등을 통한 네트워킹이 전례없이 활발하게 진행돼 왔고, 국경을 트자 교류가 폭발적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이런 민간의 움직임에 정부가 오리엔테이션을 주려는 것, 청년들이 이런 거 하라고 방향 짓는 것 자체가 문제 아닐까요.”

- 일본 정부는 한국이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절차를 중지하겠다고 하니 그제서야 수출규제 문제를 이야기해보겠다고 합니다.

“일본은 이 사안을 한국의 국내 정치이지 외교가 아니라고 간주하는 것이죠. ‘그랜드 바겐’도 아니고 한국이 알아서 다 하라는 것입니다. 고노 다로 전 외무상이 ‘국제법 위반 상태가 됐으니 한국이 시정하라’고 담화를 낸 이후 일본의 일관된 입장입니다. 지금 정부의 태도는 100점 만점짜리 답안지 가져왔으니 상을 달라고 하는 격입니다.”

- 정부 발표 직후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블링컨 국무장관이 격하게 환영한 것도 거슬린다는 반응이 적지 않았습니다.

“미국 민주당 정부가 그만큼 타락한 거죠. 그동안의 민주당 정부는 인권이나 과거사 문제에 대해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을 갖고 있었습니다. 바이든 정부가 발표의 맥락을 모른다면 정부가 설명 노력도 안 했기 때문이겠죠. 물론 미국의 코멘트는 일본용이지 한국 사람들을 향한 건 아닐 겁니다. 그러나 한국인들에게 어떤 인상을 줄지 생각 못했다면 ‘한국 무시’고, 알면서도 했다면 일본을 우위에 놓겠다는 뜻일 겁니다.”

- 바이든 정부는 갈수록 ‘한국 무시, 일본 중시’ 기조를 보이는 듯합니다.

“지난 10년 동안 미국의 한계가 뚜렷하게 드러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미국도 여유가 없는 것 같습니다. 한국민의 감정도 헤아려 가면서 천천히 다져갈 여유가 없는 듯 보입니다.”

- 윤석열 정부의 외교정책이 일본과 판박이니, 미국이 굳이 한국을 쳐다볼 이유가 없어 보입니다.

“남북이 소통하면서 한반도를 완충지대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한국이 보여야 한·미·일 관계가 그나마 수평적이고 열린 삼각협력으로 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가 앞장서 북한과 대치하고 중국·러시아와 갈등하며 스스로 신냉전의 전초기지가 되려 하는 것 아닙니까. 이렇게 되면 한국이 미·일 동맹의 하위구조로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일본을 설득하기 위해 미국 지렛대를 쓰려고 해도 거꾸로 당하게 됩니다.”

- 발표의 주요 명분이 북한 위협에 대비한 한·미·일 안보협력인데, 일본의 동북아 안보대국화의 꽃길을 깔아놓는 것 같습니다.

“한국 정부가 북한을 관리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들면서 한·미·일 협력을 한다면 한국의 (독자적) 영역을 만들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어떤 구도로 갈 것인지 분명합니다. 미국·일본의 대북정책이 다른 방향으로 움직일 것에 대한 ‘플랜B’를 윤석열 정부가 갖고 있는지 의문입니다.”

- 한국을 제쳐두고 북한과 일본이 소통할 가능성을 말하는 건가요.

“일본과 북한이 2014년 스톡홀름에서 일본인 납치문제 전면 재조사에 합의한 이후 북한이 새로운 납치자 정보를 제공했지만 일본이 묵살했습니다. 그랬다가 북·일 평양공동선언 20주년인 지난해 일본 당국자가 이를 ‘의미있게 평가한다’고 했습니다. 9월 유엔총회에서 기시다 총리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조건 없이 만날 의향을 밝힌 것도 눈여겨봐야 합니다. 여차하면 한국을 제치고 북·일이 대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 그렇게 되면 일본이 동북아에서 미국의 안보 대리인뿐 아니라 외교 대리인 역할까지 맡게 되는 셈이네요.

“한국 정부가 핵개발까지 거론하면서 북한 위협을 과도하게 이용하려 들면 미국이 일본 카드를 쓸 수도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대만, 한반도 문제를 한꺼번에 감당하기 힘들 테니 한반도는 진정시켜야겠다는 취지죠. 북·일 수교를 진정으로 바란다기보다는 ‘일단 대화 좀 하라’고 하는 정도일지 모릅니다. 그래도 미국이 일본인 납치 문제에 적극적으로 움직이면 일본의 환심을 살 수 있으니 바이든, 기시다 둘 다 점수 딸 일입니다.”

- 미·중 경쟁체제 속에서도 일본 외교는 미·일동맹에 완전히 구애받는 것 같지는 않아 보입니다.

“중·일관계를 보면 양국이 서로의 행동에 어느 정도 양해하는 듯 보입니다. 일본의 인도·태평양 전략은 중국 포위가 아니라 인게이지(engage·관여)하겠다는 뜻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인·태 전략의 군사안보적 측면만 따오려고 합니다. 일본은 중국과의 타협으로 독자 공간을 만들어갈 여지가 보이지만 한국은 미국·일본에 섣불리 약속하면서 운신할 공간을 스스로 좁히고 있습니다.”

남 교수는 윤석열 외교의 문제점을 1·2층 복합구도로 설명했다. 미국, 일본, 유럽연합 등 주요국들은 1층에서는 가치외교를 부르짖다가도 2층에 올라가선 실리외교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은 좁은 사다리를 타고 1·2층을 오갔는데 윤석열 정부가 사다리를 치워버리면서 2층에 올라가지 못하는 상황을 스스로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요즘은 가상세계(가치외교)와 현실세계(실재외교)로 바꿔 비유하고 있습니다. 가치외교는 언제든 실재외교에 의해 바뀔 수 있습니다. 실재외교에선 경제와 안보가 치열하게 줄다리기하면서 주요국들이 가변차선을 오가듯 움직입니다. 윤석열 외교는 가상세계에서는 칭찬받을지 몰라도, 현실세계에서 벌어지는 게임에는 참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죠. 중국, 인도, 남아공, 브라질, 베트남, 인도네시아까지 주체적으로 움직이는 판에 한국은 끼지 못하는 겁니다. ‘글로벌 중추 외교’가 아니라 ‘외통수 외교’입니다.”

- 김대중 정부 시기 한·일관계는 물론 남북, 한·중관계 모두 호조였는데 중국이 굴기한 지금과 판이 다르기 때문이라는 견해가 있습니다.

“이후의 전개를 당연시하다 보니 지금보다 나아 보이는 착시현상입니다. 당시 한국 외교는 미국과 일본뿐이었고, 일본과도 관계가 나빴습니다. 북한 회담 대표의 ‘서울 불바다 발언’이 나올 정도로 남북관계도 살얼음판이었습니다. 중국과 러시아와도 수교는 했지만 외교자산으로 활용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까지 겹쳐 혼란스러운 상황이었습니다. 이후 중국과의 관계도 30년을 경과하면서 외교자산으로 활용할 수 있는 관계가 됐고, 러시아와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본은 이중외교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러시아와 복합외교를 벌이고 있는데, 윤석열 정부는 왜 평면외교만 할까요? 노무현 정부는 물론 박근혜 정부도 북방과의 관계를 어느 정도는 유지해 왔는데 북방을 버리고 인·태로만 비집고 들어오는 발상이 정상적인지 의문입니다.”

남 교수는 윤석열 정부가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을 표피적으로 인용할 것이 아니라 이번 기회에 김대중 외교의 아키텍처(구상)를 성찰할 것을 주문했다.

“김대중 정부 때 세 가지 외교자산, 즉 한·일 공동선언, 북·일 공동선언, 남북공동선언이 만들어졌습니다. 동북아의 평화삼각형 혹은 세 개의 기둥인 셈인데요, 이를 활용해야 합니다. 윤석열 정부가 인도·태평양으로 내려가려고 하는데 그 기원은 신남방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한·일 공동선언을 한 뒤 베트남 하노이에서 ‘아세안+3’와 동아시아정상회의를 조직했습니다. 동북아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동남아라는 ‘외교의 무게추’를 만들려 했던 것입니다. 글로벌한 시선에서 지역을 바라보며 만든 김대중의 아키텍처입니다. 왜 활용하지 않는가 안타까울 뿐입니다. 아키텍처에 담긴 사상적 지평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인 듯 합니다.”

- 그 사상적 지평이란 무엇입니까.

“한국 민족주의에 대한 깊은 성찰입니다. 민족주의는 근대화와 자주화라는 두 가지 속성이 불가분으로 내화된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은 일제 식민지배를 거치면서 근대화와 자주화가 따로 존재하는 것처럼 돼 버렸고, 어느 한쪽을 일방적으로 추구하는 경향이 생겨났습니다. 한국 민족주의의 비극입니다. 식민지를 극복하는 길은 근대화 민족주의와 자주화 민족주의를 어떻게 통합할 것인가에 달려 있습니다. 김대중은 이를 통합하려는 노력을 했지만 이후 정권에 계승되지 못하고 보수는 근대화, 진보는 자주화에 쏠리는 잘못이 되풀이됐습니다. 문재인 정부 때 ‘한·일관계의 악화(惡貨)가 남북관계의 양화(良貨)를 구축할 때가 온다’고 경고했는데 결국 그렇게 됐습니다. 지금 한·일관계를 진전시켜봤자 남북관계에서 악화가 만들어지면 한·일관계가 또 엉클어질 수 있습니다.”

- 일본 정부가 한·일관계 복원을 위해 해야 할 일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기시다 총리가 ‘나, 기시다는 일본의 한국에 대한 식민지배로 인해 발생한 다대한 손해에 대해 깊이 성찰하고 반성하고 사죄한다’며 본인을 주어로 한국민이 직접 들을 수 있도록 사과해야 합니다. 일본 정부가 해야 할 최저선입니다.”


“한국 민족주의, 근대화와 자주화 충돌로 정권 따라 ‘반쪽 민족주의’ 되풀이”


김대중·오부치 선언, 한국 민족주의 딜레마 해결 시도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가 1998년 10월 8일 일본 도쿄에서 ‘21세기 새로운 한·일 공동선언’ 협정서를 교환한 뒤 악수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가 1998년 10월 8일 일본 도쿄에서 ‘21세기 새로운 한·일 공동선언’ 협정서를 교환한 뒤 악수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남기정 교수는 한국 민족주의의 속성을 근대화와 자주화의 ‘상쇄조합’으로 설명한다. 근대화와 자주화가 서로 충돌하면서 정치적 국면이나 정권의 성향에 따라 한쪽이 두드러지는 ‘반쪽 민족주의’ 상태가 되풀이되었다는 것이다. 한국은 조선말 외세의 간섭과 일본 식민지배를 거치면서 근대화와 자주화의 속성이 분열됐다고 그는 분석한다. 일제 강점 이후 3·1운동과 신간회 결성 등에서 통합 시도가 있었지만 실패했고, ‘근대화 민족주의’와 ‘자주화 민족주의’는 내내 분열·대립했다. 해방 이후 이승만 정권은 ‘근대화를 유보한 자주화’ 노선을 유지했으나 4·19혁명으로 집권한 장면 내각은 ‘일본에 의한 근대화’의 시동을 걸었다. 이어 박정희 정권은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를 이루면서 ‘근대화 민족주의’로 질주했다. 남 교수는 “식민지 경험은 ‘근대화 민족주의’와 ‘자주화 민족주의’가 충돌하는 상쇄조합 구조가 형성된 과정이었고, 이것이 민족주의의 질곡이 돼왔다”면서 “‘일본에 대한 자주화’와 ‘일본에 의한 근대화’가 한국 민족주의의 딜레마”라고 했다.

민족주의의 두 가지 속성을 본격적으로 통합하려 노력한 인물로 남 교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을 꼽았다.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에 담긴 ‘과거 직시와 미래지향’은 한국 민족주의의 오랜 분열상을 끝내려는 시도였다. 김대중·오부치 선언은 또 한국 국민의 민주화 노력, 전후 일본의 국제평화 노력을 평가하면서 양국이 민주주의와 평화의 가치를 공유할 것을 강조했다. 이를 통해 이룩한 화해를 바탕으로 아시아·태평양 지역 평화에 협력하고, 자유롭고 개방적인 자유주의 경제질서를 유지·발전시키자는 내용도 담겨 있다. 남 교수는 “정부가 선언의 편리한 내용만 취사선택하지 말고 전체 내용을 꼼꼼히 음미하길 권한다”며 “2025년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에 맞춰 ‘선언 2.0’을 만든다면양국이 공동 논의기구를 만들 필요도 있다”고 주문했다.


서의동 논설위원

서의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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