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보다 새 사진찍는게 더 좋아요” 16세 ‘조류사진가’ 김서진군

이진주 기자
10대 아마추어 조류사진가로 주목받고 있는 김서진군. 이진주 기자

10대 아마추어 조류사진가로 주목받고 있는 김서진군. 이진주 기자

학교가 끝난 뒤 부모님 몰래 찾아간 곳은 게임방이 아니었다. 새들을 볼 수 있는 공원이었다. 밥값을 아껴 모은 용돈은 운동화나 게임 아이템이 아닌 카메라를 구입하는 데 썼다. 게임보다 ‘새’를 찍는 것이 훨씬 즐겁다는 김서진군(16·서울 영동고 1학년) 이야기다.

김군은 10대 아마추어 조류사진가로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제15회 청소년 사진공모전’ 특별상과 ‘2022년도 환경사랑공모전’ 사진부문 동상, ‘제32회 청소년 숲사랑 사진 공모전’ 우수상을 받으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의 민물가마우지 사진은 2022년 6월호 <내셔널지오그래픽> ‘이달의 나도 사진작가’ 코너에 실렸다. 내셔널지오그래픽 해당 코너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지만 10대가 선정된 경우는 이례적이다.

지난 11일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만난 김군은 “공부도 못했고 잘하는 것도 없었는데 새를 찍기 시작하면서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은 부모님이 새 사진 찍는걸 싫어하셔서 새벽에 방문을 잠그고 공모전 출품을 준비했지만 지금은 제 노력을 믿고 응원해주신다. 힘이 난다”고 말했다.

‘2022년도 환경사랑공모전’ 사진부문 동상을 수상한 ‘작별 인사’. 본인 제공

‘2022년도 환경사랑공모전’ 사진부문 동상을 수상한 ‘작별 인사’. 본인 제공

김군은 중학교 1학년이었던 2020년부터 새를 찍기 시작했다. 3년간 함께했던 반려조 코비와 로리(모란앵무)가 세상을 떠나면서 느낀 상실감이 계기였다. 그는 코비와 로리가 보고 싶을 때마다 집 근처 공원에 나가 새들을 봤고, 예쁜 새들을 기록하고 싶어 아빠 카메라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새를 찍기 시작하면서 좋아하던 게임도 끊었다. 카메라 조작법은 유튜브 등을 보며 독학으로 익혔지만 오래된 카메라로 새의 역동적인 움직임을 제대로 담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2년 동안 최대한 안 먹고 안 쓰면서 용돈을 아꼈어요. 레고를 포함해 가지고 있는 물건은 중고장터에도 팔았고요. 그렇게 모은 돈으로 중고지만, 원하는 카메라와 렌즈를 샀어요.”

김군은 새로운 카메라로 지난해 2월부터 ‘작품 사진’을 본격적으로 찍기 시작했다. 그는 매주 1~2회씩 올림픽공원과 경기도 파주·화성·수원 등으로 출사를 나가고 있다. 파주 공릉천에서는 독수리를, 화성에선 개펄을 노니는 도요새를 주로 찍는다. 수원 일월저수지는 계절마다 각기 다른 새들을 찍을 수 있어 김군이 가장 좋아하는 장소다.

김서진군은 한번 촬영에 나가면 겨울에는 5~6시간, 여름에는 최대 12시간까지 사진을 찍지만 늘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낄 만큼 새를 찍는 순간이 즐겁다고 말한다. 이진주 기자

김서진군은 한번 촬영에 나가면 겨울에는 5~6시간, 여름에는 최대 12시간까지 사진을 찍지만 늘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낄 만큼 새를 찍는 순간이 즐겁다고 말한다. 이진주 기자

촬영을 가면 겨울에는 5~6시간, 여름에는 최대 12시간씩 사진을 찍지만 늘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낄 만큼 김군은 새를 찍는 순간이 즐겁다고 말한다. 그는 “지난 1월 영하 17도 날씨에 파주 문산에서 흰꼬리수리를 찍다 동상에 걸렸다”며 “5분 만에 400장 정도를 찍었는데 고생했던 기억보다는 원하는 사진을 찍을 수 있어 더 기뻤다”고 웃었다.

김군은 지금까지 약 140여종 새를 촬영했다. 촬영 나갈 곳에 서식하는 새에 대해 미리 공부한다는 그는 외형만 보고 이름과 특징을 알 수 있는 새가 몇백 종에 이른다.

앞으로 조류를 사진과 영상 등으로 촬영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김군은 “전형적인 구도의 조류 사진에서 벗어나 저만의 스타일이 담긴 창의적인 사진을 찍고 싶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요즘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다양한 구도에서 사진을 찍거나 소품을 활용하는 등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올해 고등학생이 되면서 예전보다 사진 찍을 시간이 적어진 것이 김군은 아쉽다. 그는 “조만간 날씨가 따뜻해지면 새끼새들을 촬영하러 갈 예정”이라며 “질릴 때까지 새 사진을 찍고 싶은데 쉽게 질릴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제32회 청소년 숲사랑 사진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받은 ‘오후의 햇빛’. 본인 제공

‘제32회 청소년 숲사랑 사진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받은 ‘오후의 햇빛’. 본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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