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간호에 남녀 차이 없어요”…편견 깨는 남자 간호사들

이진주 기자

병원에서 ‘고군분투’ 이야기

‘간호사가…’ 펴낸 간호사 14인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남자 간호사 14명이 공동 저자로 참여한 <간호사가 되기로 했다>는 남자 간호사들의 생생한 병원 생활이 담겨있다. 공동 저자 14명 중 인터뷰에 참여한 간호사 8명(왼쪽부터 장명철·박준용·이수근·박상곤·김진수·엄군태·유세웅·유중윤씨)이 책을 들어보이고 있다. 한수빈 기자 subinhann@kyunghyang.com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남자 간호사 14명이 공동 저자로 참여한 <간호사가 되기로 했다>는 남자 간호사들의 생생한 병원 생활이 담겨있다. 공동 저자 14명 중 인터뷰에 참여한 간호사 8명(왼쪽부터 장명철·박준용·이수근·박상곤·김진수·엄군태·유세웅·유중윤씨)이 책을 들어보이고 있다. 한수빈 기자 subinhann@kyunghyang.com

‘손이 거칠고 덜 꼼꼼’ 오해받아
신입 시절엔 호통치는 환자도

투박해 보여도 섬세히 역할 수행
친화력에 ‘그분은?’ 찾으며 반겨

‘남자가 무슨 간호사냐’는 핀잔도 들었다. ‘남자는 꼼꼼하지 못하다’는 편견도 받았다. 강도 높은 노동환경에 그만두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버텼다. 환자에게는 따뜻한 간호사로, 후배에게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싶어서였다.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남자 간호사들 이야기다.

이들은 최근 응급실부터 장기이식센터, 수술실, 어린이병원 등 병원 곳곳에서 고군분투해온 이야기를 담아 <간호사가 되기로 했다>를 출간했다. 책 수익금은 전액 간호국과 어린이병원에 기부하기로 했다. 책은 출간 한 달여 만에 2쇄를 찍었다.

한 병원에서 일하면서도 업무가 바빠 서 서로 이름 정도만 알고 지내던 이들이 뭉친 계기는 김진수씨(31·수술간호팀 마취회복파트)의 제안 덕분이었다. 김씨는 2021년 말 병원 내 남자 간호사들 단톡방에 ‘책을 함께 쓸 사람을 모집한다’는 글을 공유했다.

김씨는 당시 남자 간호사로서의 경험을 후배들에게 알리기 위해 전국 간호대 등에서 강연하고 관련 서적을 출간했다. 그의 제안에 단톡방에 있던 간호사 280여명 중 13명이 손을 들었다.

공동저자인 간호사 14명 중 8명을 지난 23일 병원에서 만났다. 김씨는 “남자 간호사가 늘고 있지만 같은 병원에서도 교류가 적어 서로 어떠한 일을 하는지 잘 몰랐다”며 “남자 간호사의 다양한 역할을 알리고 동료들과 간호대 학생들에게는 정보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 책을 기획하게 됐다”고 말했다.

국내에는 1962년 남자 간호사가 처음 등장했다. 60여년이 흐른 현재 남자 간호사 수는 3만명을 넘어섰다. ‘간호’와 ‘돌봄’이 여성의 일이라는 선입견이 무너지면서 남성들의 간호대 진학도 늘고 있다.

대한간호협회에 따르면 올해 간호사 면허를 취득한 남자 간호사는 3769명으로 전체 합격자 중 16.1%를 차지한다. 2004년(121명)과 비교하면 30배가량 늘었다.

남자 간호사가 급증했지만 편견은 여전히 존재한다. 장명철씨(31·응급간호팀 응급진료센터)는 “(남자 간호사는) 뭘 해도 손이 거칠고 덜 꼼꼼할 거라고 생각한다”며 “가운을 입고 병실에 가면 의사인 줄 안다. 아직도 남자는 의사라는 편견이 있다”고 했다.

여성 환자를 간호할 때 신체 노출이나 접촉이 불가피해 겪는 어려움도 있다. 유중윤씨(39·응급간호팀 응급진료센터)는 “간호사에 남녀 구분이 없듯 간호사도 환자를 성별로 구분하진 않는데 여자 간호사로 바꿔달라는 요청이 종종 있다”고 말했다.

엄군태씨(32·비뇨기과 외래방광내시경실)는 특유의 친화력으로 환자들에게 다가간다.

“신입 시절에는 ‘왜 남자 간호사가 오냐’며 호통을 치는 환자에 주춤한 적도 있었죠. 성격상 말하는 걸 좋아해 까칠한 환자나 보호자들에게도 거리낌 없이 다가가니 나중에는 ‘그 남자 선생님 어디 있냐’고 찾을 정도로 좋아해주세요.”

남자 간호사가 한 명도 없던 신경외과와 류마티스 및 내분비내과 병동에 발령을 받은 박상곤씨(32·외래간호팀)는 ‘남자는 멀티플레이가 안 된다’는 편견에 맞서야 했다. 박씨는 “1년이 지난 뒤 병동에 남자 간호사가 하나둘씩 들어오더니 지금은 여러 명의 남자 간호사가 투박해 보이지만 그들만의 섬세한 간호로 각자의 역할을 해내고 있다”고 말했다.

탈의실이나 화장실 등 기반이 부족한 예도 있다. 이수근씨(29·중환자간호팀 소아중환자파트)는 “여자 간호사들을 위한 탈의실은 층마다 있지만 남자 탈의실이 없는 병동도 있고 다른 층에 있어 멀리까지 가야 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이들은 남자 간호사로서 가장 어려운 점으로 ‘롤모델 부재’를 들었다. 업무 강도가 높아 여자 간호사도 정년을 채우기 어려운 상황에서 소수인 남자 간호사가 버티는 건 더 힘든 일이다.

이들은 <간호사가 되기로 했다> 시즌2를 준비 중이다. 김진수씨는 “새로운 부서의 선생님들을 모시고 남자 간호사의 다채로운 모습을 소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Today`s HOT
인도네시아 루앙 화산 폭발 시드니 쇼핑몰에 붙어있는 검은 리본 전통 의상 입은 야지디 소녀들 한화 류현진 100승 도전
400여년 역사 옛 덴마크 증권거래소 화재 인도 라마 나바미 축제
장학금 요구 시위하는 파라과이 학생들 폭우로 침수된 두바이 거리
케냐 의료 종사자들의 임금체불 시위 2024 파리 올림픽 D-100 솔로몬제도 총선 실시 수상 생존 훈련하는 대만 공군 장병들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