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연이 목표 아냐, 운동장 밖에 머물지 않겠다는 것”

박용필 기자

홍성 여성 축구클럽 반반FC

‘우리가 공을 차는 이유’

‘반반FC’ 선수들이 충남 홍성군 홍동중학교에서 경기를 앞두고 손을 모으고 있다. ‘반반FC’ 제공

‘반반FC’ 선수들이 충남 홍성군 홍동중학교에서 경기를 앞두고 손을 모으고 있다. ‘반반FC’ 제공

멤버는 주부·귀촌한 학생 등 다양
“공만 쫓아서 우르르 몰려다니다
이젠 각자 포지션 지키는 법 배워
고정관념과 속박 깨는 극적 경험”

최근 ‘시골, 여자, 축구’ 책도 발간

“그림 같은 슈팅으로 상대의 골문을 가르는 주인공을 응원만 하다가 내가 그 주인공이 되는 체험, 그건 ‘여성이라서…’라는 고정관념과 속박을 깨뜨리는 가장 극적인 경험이긴 해요. 다만 제 경우 그게 다는 아닙니다. 오히려 ‘공만 쫓지 않는 삶의 태도’를 배운다는 게 가장 큰 매력이에요.”

지난 19일 경향신문과 만난 노해원씨(35)는 ‘요즘 여성들 사이에 축구 붐이 이는 이유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는 충남 홍성군 홍동면의 여성 축구클럽 ‘반반FC’의 주장이다. 이 클럽에는 농사를 배우러 귀촌한 20대 학생도 있고, 자녀를 2~3명씩 둔 40~50대 주부들도 있다. 공통점은 대부분 이전까지 축구를 해본 적 없는 여성들이라는 것이다. 세 아이의 엄마인 노씨 역시 마찬가지다. 노씨가 자신과 동료들의 이야기를 모았다. 이들의 이야기는 최근 <시골, 여자, 축구>라는 책으로 출간됐다.

클럽의 시작은 2021년 동네 학교 방과후교실 체육 선생님의 제안이었다. ‘여성들끼리 축구를 해보자’는 제안은 노씨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예전부터 ‘토트넘’ ‘손흥민’의 팬이었어요. 고교 때는 축구팀의 매니저를 해 상도 탔습니다. 다만 제게 축구는 ‘뛰는 것’이 아니라 ‘보는 것’이었어요.”

‘보는 축구’가 아닌 ‘뛰는 축구’를 할 용기를 얻은 건 주변의 언니들 덕이었다. “아이 셋을 키우는 언니도 뛰더라고요. 저도 할 수 있을 것 같았죠.”

이들은 주말마다 동네 중학교 운동장에 모였다. 낮에는 물론 밤에도 단 2개뿐인 가로등 불빛 아래 땀을 흘렸다. 그러고 나서 치른 인근 초등학교 아이들과의 첫 친선 경기. 경기 결과는 ‘0-13’ 대패였다. 그러나 경기가 반복될수록 점수 차는 좁혀졌고, 공식대회에도 2번이나 출전했다.

“목에서 피 맛이 날 정도로 뛰었어요. 난생처음 ‘쌈닭 같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창피하지 않았어요. 날것 그대로의 나를 드러내는 후련함이 좋았어요. 예전의 저는 남의 시선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자신을 숨기기 바빴거든요.”

그는 자신의 한계뿐 아니라 사회적 한계도 뛰어넘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슬램덩크>나 <마지막 승부>에서 여성은 선수가 아닌 매니저, 남자 주인공을 응원하는 여자친구 역할이에요.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회자된 여성들은 심지어 응원 자체가 아닌 ‘외모와 복장’ 때문이었고요. 축구를 시작한 뒤에야 고교 때 제가 ‘선수가 아닌 매니저를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게 당연한 게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러나 그는 ‘조연’이 아닌 ‘주연’이 되고자 축구를 하는 건 아니라고 했다. “처음에 우리는 공만 쫓아 우르르 몰려다녔어요. 골을 넣는 것, 내가 넣는 것이 지상 목표였죠. 그러다 차츰 각자의 포지션을 지키는 법을 배워나갔습니다. 축구에는 공격수뿐 아니라 미드필더나 윙이 필요해요. 수비수의 경우 공이 자신에게 오지 않을수록 팀에는 좋죠. 내가 골을 넣는 게 아닌, 다른 이가 넣도록 도와주는 ‘어시스트’가 제가 가장 좋아하는 플레이입니다.”

그는 “더 이상 운동장 밖에만 머물 생각은 없다. 그러나 공만 쫓아다니지도 않을 것”이라고 했다. “우리들은 남성들을 제치고 ‘주연’ 자리를 차지하고 싶은 게 아니에요. 운동장에 들어설 기회 자체를 박탈당하거나 포기하는 게 싫을 뿐입니다. 일단 운동장에 들어서면 돋보이길 바라기보단 각자의 위치와 역할에 충실합니다. 나이가 많든 적든, 학생이든 ‘애 엄마’든, 남자든 여자든 모두가 공동의 목표를 위해 공헌할 기회와 보람을 가질 수 있다는 것, 그게 축구를 하며 느끼는 가장 큰 매력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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