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팔이 돼줘 존경” “완주해줘 고맙다”…찰떡부부의 패럴림픽

김세훈 기자

장애인 트라이애슬론 선수 김황태와 아내 김진희의 멋진 ‘파리 피날레’

김황태가 지난 9월 7일 인천 문학경기장 앞에서 인터뷰 도중 아내 김진희의 두 팔에 안겨 활짝 웃고 있다. 김세훈 기자

김황태가 지난 9월 7일 인천 문학경기장 앞에서 인터뷰 도중 아내 김진희의 두 팔에 안겨 활짝 웃고 있다. 김세훈 기자

[주간경향] 수영에는 정말 목숨을 걸었다. 한쪽 의수를 핸들에 고정한 채 탄 사이클도 위험했다. 철인 3종(트라이애슬론)에 참가한 두 팔 잃은 남편, 남편을 옆에서 도운 아내 모두 조마조마했다. 두 차례 큰 고비를 넘긴 뒤 뛴 마지막 달리기. 부부의 마음이 조금씩 편안하고 행복해졌고 레이스를 마친 뒤 함께 울고 함께 웃었다.

출전 11명 중 두 팔 없는 유일한 선수

장애인 트라이애슬론 선수 김황태(47·인천시장애인체육회)와 아내 김진희(45)는 지난 9월 2일 프랑스 파리 패럴림픽(장애인 올림픽)에 선수와 핸들러(경기 보조원)로 나섰다. 장애인 트라이애슬론은 수영 750m, 사이클 20㎞, 육상 5㎞ 합산으로 최종 순위를 정한다. 김황태는 2000년 감전 사고로 두 팔을 잃었다. 출전 선수 11명 중 두 팔이 없는 선수는 김황태가 유일했다. 지난 9월 7일 인천 문학경기장 앞에서 김황태와 김진희 부부를 만나 패럴림픽을 무사히 마친 소감을 물었다.

김황태는 양팔이 없으니 수영에 취약했다. 빠른 센강 물결을 허릿심으로 버티며 배영과 평영을 섞어 물살을 헤쳤다. 기록은 24분 58초. 1위와는 13분 이상 차가 났고 10위에도 7분 이상 뒤졌다. 김황태는 “수영을 하다가 힘이 빠지면 죽을 수도 있다”며 “살아나와야 한다는 마음으로 헤엄쳤고 수영을 끝낸 뒤 ‘이제 끝났다. 나머지는 시간이 걸려도 완주할 수 있다. 내가 포기하지 않으면’이라고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아내는 수영을 마친 남편에게 물을 먹였고 사이클에 앉아 몸을 고정하는 데 힘을 썼다.

사이클도 위험천만했다. 경기 전날에는 손목과 핸들을 고정하는 잠금장치까지 고장나 대충 손을 봤는데 경기 당일에는 며칠 전 수리한 의수까지 말썽을 부렸다. 김황태는 “끈, 케이블 타이로 오른쪽 의수 팔꿈치 부위를 고정했고 잠금장치도 핸들에 묶었다”고 말했다. 오른쪽 의수는 핸들에 고정됐고 왼쪽 의수는 핸들에 걸쳐놓았다. 코스도 코블 코스(중세시대 마차들이 다니기 위해 만든 돌이 깔린 길). 김황태는 “넘어질까 봐 걱정하면서 탔다”고 말했다. 육상은 마라톤도 완주한 그가 가장 잘하는 종목이다. 그는 5㎞를 11명 중 5번째로 뛰었다. 레이스 막판 김황태는 저스틴 고드프리(호주)를 제치고 종목 합산 10위로 올라섰다. 김황태는 “고드프리를 제칠 생각은 없었다”며 “몸이 좋지 않아 보여 같이 들어오려다가 그가 한 바퀴가 더 남았다기에 어쩔 수 없이 내가 먼저 달려왔을 뿐”이라고 말했다.

김황태가 지난 2일 파리 패럴림픽 트라이애슬론 경기에서 사이클을 타고 있다. 오른쪽 의수가 케이블 타이 등으로 핸들에 고정돼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김황태가 지난 2일 파리 패럴림픽 트라이애슬론 경기에서 사이클을 타고 있다. 오른쪽 의수가 케이블 타이 등으로 핸들에 고정돼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사이클은 35분 29초로 7위, 육상은 21분 19초로 5위. 3개 종목 합산 최종 순위는 10위(1시간 24분 01초). 불혹을 훌쩍 넘긴 나이, 극복하기 어려운 장애. 그 속에서 김황태는 포기를 몰랐고 “패럴림픽에 출전해 반드시 완주하겠다”는 약속을 지켰다. 두 팔이 돼준 아내 김진희가 늘 함께했기에 쓸 수 있는 아름다운 피날레. 김황태는 “김진희님 존경하고, 사랑합니다”라고 말했고 김진희는 “완주해줘서 고맙다”며 울먹였다.

김황태는 어릴 때부터 운동을 좋아했고 잘했다. 학창 시절 오래달리기에는 자신이 있었다. 해병대 복무 시절 ‘무적 해병’ 선발 대회에서 30분 동안 윗몸일으키기를 1500회 이상 했다. 한국 전체 해병 중 2위였다. 김황태는 23세 때인 2000년 8월 고압선에 감전돼 양팔을 잃었다. 결혼을 위한 양가 상견례를 한 달 앞둔 때였다. 아내는 “부모님 반대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며 “내가 남편을 보살피겠으니 이해해 달라며 떼를 부렸다”고 회고했다. 병원생활 1년 3개월. 김황태는 “죽는 중환자가 많았다”며 “나는 행운아”라고 말했다. 둘은 2002년 결혼했다.

그는 마라톤, 노르딕스키, 태권도에 도전했다. 그냥 이런저런 운동을 하고 싶었다. 그러다가 패럴림픽에 출전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노르딕스키로 2018년 평창동계패럴림픽에 출전하려 했지만, 무릎 십자인대 부상으로 포기했다. 태권도로 도전한 2020 도쿄패럴림픽 출전도 등급이 없어 무산됐다. 주위 권유로 시작한 철인 3종. 김황태는 “수영과 사이클이 어렵다는 건 알았지만 평소 해봐야겠다고 생각하면 아무 고민 없이 그냥 하는 성격이라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김황태가 지난 2일 파리 패럴림픽 트라이애슬론 경기에서 결승선을 향해 뛰어오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김황태가 지난 2일 파리 패럴림픽 트라이애슬론 경기에서 결승선을 향해 뛰어오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잠잘 때 빼고 늘 붙어있는 아내

수영은 자유형, 접영, 배영을 섞어 배웠다. 빠른 유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나름의 방편이었다. 사이클은 실내에서 주로 연습했고 달리기는 인천 문학경기장을 돌았다. 아내는 2022년 남편의 정식 파트너가 됐다. 올해에는 패럴림픽까지 7개국을 함께 다녔고 국내에서 하는 모든 대회와 훈련도 함께 했다. 손으로 해야 하는 모든 일은 아내가 도맡았다. 김진희는 “잠잘 때 빼고 늘 붙어있을 수밖에 없었다”며 “정말 많이 다투고 싸웠다. 지금도 24시간 싸운다”고 말했다.

파리 패럴림픽 기간 부부는 긴장하면서도 행복했다. 김황태는 “수영 기록이 크게 뒤질 수밖에 없어 순위 싸움은 생각하지 않았다”며 “무사히 완주하자는 데 초점을 두고 편안하게 생활했다”고 말했다. 김진희는 “고비를 잘 넘기면서 완주하니 너무 행복하고 고마울 뿐”이라고 말했다. 김황태의 감동적인 완주는 각별한 관심을 끌었다. 부부는 “크게 잘한 것 없는 평범한 부부인데 너무 많은 관심을 받아 어리둥절하다”며 웃었다.

부부가 딱 붙어 생활하니 사람들 눈길을 끌게 마련이다. 김황태는 “안타깝게 보는 시선은 사양한다”며 “그냥 평범한 사람, 평범한 부부로 봐달라”고 말했다. 그는 “장애인들을 안쓰럽게 바라보기보다는 이들이 마음 편하게 살 수 있도록 지원해 달라”고 부탁했다. 김진희는 “패럴림픽 선수촌에는 우리보다 더 심한 장애인이 많았다”며 “누구에게나 장애는 올 수 있다. 장애인을 계속 쳐다보는 시선이 장애인을 불편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김진희·김황태 부부가 파리 패럴림픽 경기를 마친 뒤 개선문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대한장애인체육회

김진희·김황태 부부가 파리 패럴림픽 경기를 마친 뒤 개선문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대한장애인체육회

47세에 처음으로 출전한 패럴림픽. 다음 패럴림픽 때는 51세가 된다. 김황태는 “철인 3종, 마라톤은 기록이 나빠 다음 패럴림픽에 나서기 힘들다”며 “다른 종목으로 도전할까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아내는 “다음”이라는 말에 놀랐다. 아내는 “남편이 여유롭게 운동하고 나도 이제는 좀 여유를 갖고 싶다”고 말했다. 아내는 “현재 대학생인 딸도 아빠가 달리기만 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김황태는 오는 10월 중순 일본에서 열리는 철인 대회에 출전한 뒤 경상남도에서 벌어지는 전국 장애인체육대회에도 나선다. 김황태는 “종목과 상관없이 운동을 계속하고 싶은 마음뿐”이라고 말했다. 김진희는 “남편이 할 수 있을 때까지 보호자 겸 핸들러로 함께하겠다”라고 화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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