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권력 성범죄 등 이슈 때만 ‘와글’…예방·인식 개선 제도화는 답보

조형국 기자

제자리걸음 젠더 법안

[해 넘기는 법안](4)권력 성범죄 등 이슈 때만 ‘와글’…예방·인식 개선 제도화는 답보

2018년 ‘미투 운동’ 확산, 2019년 텔레그램 n번방 파문에 이어 올해 오거돈·박원순 전 시장 등 고위공직자 권력형 성범죄 ‘젠더 폭력’이 사회문제로 부상했다. 수사당국의 진실규명이 요원한 사이 ‘2차 가해’는 일상이 됐다. ‘피해 호소인’과 ‘피해자’ 논란에 여당은 당헌 개정을 통한 서울·부산 시장 후보 추천으로 답했다. 디지털성범죄 피해자 지원 등 일부 제도 개선의 성과가 있었지만 젠더 폭력 방지를 위한 입법은 여전한 과제로 남았다.

대표적 미투 법안인 ‘비동의 간음죄’는 여야 공감대가 형성돼 있지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 머물고 있다. 20대 국회에서는 나경원 당시 자유한국당 의원이, 21대 국회에서는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각각 비동의 간음죄를 규정한 형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현행 강간죄는 ‘폭행 또는 협박’을 전제하고 있어 피해자 보호가 충분치 않고 처벌 공백이 생긴다는 비판이 법조·여성계에서 제기돼왔다. 명백한 폭행·협박이 없더라도 ‘상대방 의사에 반하거나 명백한 동의가 없을 경우’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비동의 간음죄의 골자다. 정영애 여성가족부 장관은 후보자 때 국회에 제출한 답변서에서 “현행법상 강간죄는 범주가 너무 협소하다”며 “강간죄 요건을 완화하거나 범위를 넓히는 방안을 부처 간 협의해 가야 한다”고 밝혔다.

여야 공감 ‘비동의 간음죄’
아직 법사위 소위 논의 중
‘2차 피해’ 방지 법안들은
국회 논의 한번 제대로 못해

디지털성범죄 피해 지원 등
일부 제도 개선 ‘작은 성과’

그러나 처벌 범위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고, 피해자의 주관적 의사에 처벌 여부가 좌우될 수 있다는 점 등이 반론으로 제기되며 비동의 간음죄는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21대 국회에서 제출된 법안도 올해 제대로 심사 한 번 이뤄지지 못한 채 새해를 맞게 됐다.

젠더 폭력 피해자의 2차 피해를 막는 법안도 국회에 붙잡혀 있다. 최근 박 전 시장 측근 인사들이 성폭력 피해자가 과거에 박 전 시장에게 쓴 편지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개하면서 ‘2차 가해’가 큰 논란이 됐다. 이종배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7월 대표발의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은 피해자에 대한 명예훼손, 모욕 등 2차 가해를 가중처벌하는 내용을 담고 있지만 국회에서 제대로 논의 한 번 된 적 없다. 20대 국회에서도 2차 가해 발생 시 여가부 장관이 관련자 징계를 요청하거나 이를 방지하기 위한 연구·교육 의무를 부여하는 법안이 다수 제출됐지만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오거돈·박원순 전 시장의 성추문이 권력형 성범죄가 맞냐’는 질문에 여가부 수장의 답변이 “수사 중인 사건”에서 “(권력형 성범죄에) 동의한다”로 바뀌었지만, 제도는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관련 법안 대부분이 예방보다 처벌 강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기관장이 성폭력 사실을 파악한 경우 여가부에 이를 통보하고 여가부가 현장점검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은 지난 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성범죄 등 귀책사유로 보궐선거를 하게 될 경우 해당 정당은 후보자를 추천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의 공직선거법 개정안은 최근에야 국회에 접수됐다.

법무부가 2018년부터 추진해온 ‘스토킹 처벌법’, 직장 내 위력에 의한 추행 신고를 의무화하는 남녀고용평등법 개정안도 국회 논의를 기다리고 있다. 한 해 2만건에 달하는 데이트폭력을 막기 위한 ‘데이트폭력 방지법’도 제정 요구는 무성했지만 논의는 진행되지 않았다. 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이 일어났을 때 주목받은 뒤 뒷전으로 밀려나는 젠더 폭력 법안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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