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출마 선언문, ‘공정·경제’ 있고 ‘기후·차별금지’ 없다읽음

유정인·유설희 기자
여권 유력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왼쪽)와 야권 유력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각각 지난 1일과 지난 달 29일 대선 출마 선언문을 발표하고 있다. 이 지사 유튜브 채널 캡쳐·경향신문 자료사진 사진 크게보기

여권 유력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왼쪽)와 야권 유력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각각 지난 1일과 지난 달 29일 대선 출마 선언문을 발표하고 있다. 이 지사 유튜브 채널 캡쳐·경향신문 자료사진

대선 주자의 출마선언문은 그의 생각을 가장 압축적으로 담아놓은 그릇이다. 출마 이유, 현실 인식, 미래 구상의 ‘핵심 중 핵심’만 골라 담는다. ‘정권교체’나 ‘정권재창출’ 같은 단어는 여러 곳에서 반복된다. 어떤 단어는 등장도 하지 않는다. 무엇을 담고, 무엇을 담지 않았는지를 보면 대선주자들이 생각하는 한국의 미래가 그려진다.
 
5일 현재까지 정치권에서 나온 대선 출마선언문은 15편 정도다. 예비경선에 돌입한 더불어민주당 후보 9명이 각각 출마선언문을 발표했다. 야권에선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사실상의 출마선언문인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내놨고, 5명의 국민의힘 주자가 공식 출마선언문을 발표했다.
 
‘(불)공정’과 ‘양극화’, 경제 해법 등은 거의 모든 주자가 거론했다. 그러나 전지구적 과제인 기후위기, 14년째 입법 지연 중인 차별금지법 제정 등은 이번에도 ‘잊혀진 의제’였다. 코로나19가 드러낸 개인주의와 공동체주의의 공존 등도 좀 더 부각됐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모두의 키워드, ‘공정’…구체성은?

15편의 출마선언문 중 ‘공정’이라는 단어를 담은 선언문은 13편이다. 민주당 예비후보 9명 전원이 ‘공정’을 주요하게 다뤘다. 여권 유력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는 “(대한민국) 위기의 원인은 불공정과 양극화”라면서 “공정성 확보가 희망과 성장을 가능하게 한다”고 썼다. “상처받은 공정을 다시 세워야 한다”(이낙연 전 대표), “국민이 공정하지 않다고 느낀다”(정세균 전 국무총리), “구조화된 불공정”(추미애 전 법무부장관) 등 현실인식과 정치적 과제로서 ‘공정’을 말했다.
 
야권 유력주자인 윤 전 총장도 “시대와 세대를 관통하는 공정의 가치를 기필코 다시 세우겠다”면서 출마선언문에서 ‘공정’을 9번 반복했다. 황교안 전 대표는 “공정, 정의, 자유가 살아 숨 쉬는 열린 사회”를 미래구상으로 내세웠다. 공식 출마선언문을 내놓진 않았지만 홍준표 의원은 국민 8100명을 심층인터뷰 결과 나타난 시대정신 중 하나로 “기회를 위한 공정”을 꼽았고, 유승민 전 의원도 ‘공정한 사회’를 대선 과제로 말하고 있다.
 
여야 주자들은 ‘공정’을 실현할 방법으로 경제 정책기조를 선언문에 담았지만 구체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종훈 정치평론가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2007년 야당 경선 과정에서 박근혜, 이명박 후보가 출마선언했을 때는 각각 ‘줄·푸·세’, ‘7·4·7’ 공약 등 어느 정도 구체성 있는 정책이 나왔다”며 “이번에는 모두 경제와 공정을 말하지만 이전 대선 후보들에 비해 구체성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잊혀진 의제, 더 말해야 할 의제
 
간략한 출마선언문에 모든 분야의 공약과 구체적인 정책 구상이 담길 수 없다. 그럼에도 출마선언문에 담기지 않은 공약이 ‘1호 공약’ ‘대표 의제’가 되기는 어렵다.

대선이나 총선 등 굵직한 선거마다 ‘빈약한 공약’ 지적을 받았던 환경분야는 이번에도 외면받았다. 15편의 출마선언문 중 ‘기후위기’라는 단어를 포함한 주자는 박용진 민주당 의원뿐이었다. 그마저도 “넓은 시야를 가지고 기후위기와 저출생의 위기에 맞서겠다”는 한 줄에 그쳤다. 환경시민단체 녹색연합은 이날 “민주당 예비경선후보들 중 ‘기후위기’와 관련한 공약을 제시한 사례는 이재명·최문순 2명의 후보에 불과했고, 구체적이고 실효성있는 내용은 담겨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야권에서는 윤 전 총장과 안상수 전 인천시장 등이 환경과 관련한 에너지 문제를 선언문에 담았지만, 대체로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비판하는 성격이 강했다. 윤 전 총장은 연일 ‘탈원전 정책’을 비판하고 있지만 그에 대응하는 에너지 정책에 관한 비전을 내놓지는 않고 있다.
 
차별금지법 제정은 여전히 ‘나중’으로 밀렸다. 출마선언문에서 차별금지법을 언급한 인사는 “차별금지법 등을 국민투표에 부치겠다”고 한 민주당 김두관 의원 뿐이다. “어떤 시민도 부당한 차별을 받지 않는 평등한 사회”(박 의원) 등 간접적 표현은 있었지만 대부분은 ‘차별금지법’을 명확히 말하지 않았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5월 9일 국회의사당에서 대선 출마선언을 하고 있다. /박 의원 블로그 캡쳐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5월 9일 국회의사당에서 대선 출마선언을 하고 있다. /박 의원 블로그 캡쳐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국가의 역할도 대선주자들이 더욱 고민해야 할 분야로 지적된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집회의 자유, 개인정보 공개 등 개인의 자유가 계속 침해되고 있는 상황에서 기본권을 어디까지 제한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뜻이다. 이는 개인주의와 공동체주의의 ‘공존’ 문제로도 연결된다. 김 평론가는 “디지털로 전환되는 시대에 대처하는 법과 중산층 재건 방법도 더 심도깊게 논의돼야 하는데 잘 드러나지 않은 이슈”라면서 “시대적으로 가장 필요한 의제들을 빨리 인식하고 해법을 담아줘야 하는데 대선 국면이 답답하게 흘러간다”고 말했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2020년대 전지구적 차원에서 가장 중요한 도전이 기후위기인데 ‘선진국’에 걸맞는 의제들이 논의되지 못하는 점이 아쉽다”면서 “한국 사회에서 대선은 새로운 시대정신이 탐구되고 논의되는 하나의 광장인만큼 남은 8개월 동안 후보들간의 치열한 논쟁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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