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대명’에 꺾인 ‘어대낙’의 꿈

김상범 기자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선 경선 후보가 지난 3일 인천 연수구 송도컨벤시아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인천 순회합동연설회 및 2차 슈퍼위크 행사에서 정견 발표를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선 경선 후보가 지난 3일 인천 연수구 송도컨벤시아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인천 순회합동연설회 및 2차 슈퍼위크 행사에서 정견 발표를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한때의 ‘어대낙’은 결국 ‘어대명’에게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인 이낙연 전 대표는 10일 당 대선 경선에서 누적득표율 39.14%를 기록했다. 3차 국민선거인단에서 압도적인 득표를 기록하면서 이재명 경기지사의 과반을 저지하기 직전까지 갔던 만큼 아쉬움이 커보였다. 이로써 과거 ‘어대낙(어차피 대선후보는 이낙연)’이라는 별칭으로까지 불리며 유력 대선 주자로 손꼽히던 이 전 대표는 첫 번째 대선 도전에서 패배의 쓴잔을 마셨다.

지난해 1월 역대 최장수 총리라는 기록을 남기고 퇴임한 이 전 대표는 당시 여권의 가장 강력한 차기 대선 주자로 평가받았다. 지난해 4월 총선에서 ‘미니 대선’으로 평가받은 서울 종로구 선거구에서 승리한 직후 이 전 대표의 지지율은 40%를 넘나들며 당시 10%대 중반 지지율이었던 이 지사를 두 배 격차로 앞섰다. 다선 의원·도지사·국무총리 등을 역임하면서 쌓은 국정운영 능력과 풍부한 경험, 신중한 성격, 안정감 등이 강점으로 꼽혔다. 민주당 최대 주주인 호남지역에서 정치적 기반을 쌓아온 데다가 주류인 친문(재인) 세력으로부터도 좋은 평가를 받는 등 당내 기반도 든든한 편이었다.

고공행진을 거듭하던 이 전 대표의 대선 가도는 지난해 중반 이후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지난해 8월 당대표에 취임한 이 전 대표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 ‘추미애·윤석열’ 갈등 같은 집권 여당의 악재를 마주하며 크고 작은 정치적 상처를 입었다. 특히 올초 전직 대통령 사면 요구 발언은 치명타였다. 정국 주도권 확보와 중도보수층으로의 확장을 위해 꺼내든 승부수였지만, 대다수 여론은 시기상조라는 입장이었고 당 내부에서도 강력한 반발이 불어닥쳤다. 4·7 재·보궐선거에서의 민주당 패배로 입지는 더욱 불안정해졌다. 이 즈음부터 이 전 대표 지지율이 이 지사의 지지율에 밀리는 ‘데드크로스’ 현상이 각종 여론조사에서 하나둘 나타났다.

4·7 재·보선 이후 이 전 대표는 “성찰의 시간을 갖겠다”며 전국을 돌며 밑바닥 민심을 청취했다. 한달간의 잠행 끝에 복귀한 그는 대선 어젠다로 ‘신복지제도’를 제안했고, 지난 5월 ‘광주 선언’에서는 사면론 발언에 대해서도 전격 사과했다. 한때 한자릿수까지 떨어졌던 그의 지지율은 청년·여성층을 중심으로 서서히 반등해 민주당 예비경선의 막이 오른 지난 7월에는 10%대 중반까지 회복하며 이 지사와 양강 구도를 형성했다. 하지만 이미 ‘어대명’으로 기운 대세를 뒤집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 전 대표는 지난달 의원직 사퇴라는 초강수까지 던지며 당원과 지지자들에게 호소했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이 전 대표는 이날 경선 뒤 기자들과 만나 “차분한 마음으로 책임이 있는 마음으로 기다려 주길 바란다. 오늘은 여기서 여러분과 헤어진다. 끝까지 함께 하겠다”면서 “제 정리된 마음은 정리되는 대로 말씀드리겠다”고 말했다. 대선 경선 결과에 승복하느냐는 질문이 여러 차례 나왔지만 이 전 대표는 모두 답변하지 않았다.

이 지사가 예상과 달리 간신히 과반인 50.29%를 기록한 이날 경선 결과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이 전 대표는 특히 이날 3차 국민선거인단 투표에서 62.37%를 기록, 이재명 지사(28.3%)를 2배 넘게 이겼다.

민주당의 현재 관심은 ‘원팀 선대위’가 가능할지 여부에 쏠려있다. 당내 1·2위 주자가 ‘명·낙대전’으로 인해 깊어진 감정적 골을 이른 시일 내 극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 지사 측은 조만간 이 전 대표에게 선대위 참여를 권유할 것으로 보이지만, 이 전 대표 측은 당분간 상황을 지켜보며 거리를 둘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이 지사 비판에 앞장서온 캠프 내 강경파 의원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은데다 이 전 대표 핵심 지지층 가운데서는 이 지사의 개인 신상 문제와 최근의 대장동 의혹 등을 들며 “믿을 수 없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이 전 대표가 3차 국민선거인단 투표에서 예상 외의 선전을 거둔 만큼 ‘무효표 논란’을 제기하며 결선투표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내에서는 단기간에 이 지사와 이 전 대표 진영의 완전한 화학적 결합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대다수다.

이 전 대표 본인은 긴 잠행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5년 후 21대 대선에서 재수에 나설 가능성도 있지만, 이미 의원직을 내던진 자연인 신분으로는 재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총선 때마다 여야가 팽팽한 승부를 보이며 ‘정치 1번지’라고까지 불리는 서울 종로 지역구를 개인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내던졌다는 부정적인 시선도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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