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사망

참회 없이 떠난 독재자...역사적 단죄는 다시 시작

유정인·조문희·민서영·강현석 기자
사자 명예훼손 혐의를 받고 있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지난8월 9일 오후 광주광역시 동구 광주지방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공판기일 출석을 마치고 법원을 나서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사자 명예훼손 혐의를 받고 있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지난8월 9일 오후 광주광역시 동구 광주지방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공판기일 출석을 마치고 법원을 나서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전직 대통령 전두환씨가 23일 사망했다. 향년 90세. 전씨는 12·12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뒤 5·18민주화운동 당시 민간인 학살을 주도한 민주주의 암흑기의 독재자다. 마지막까지 희생자들에 대한 참회와 사죄는 없었다. 41년 간의 사과 요구는 응답 없이 끝났지만, 역사적 단죄의 시간은 또다른 시작을 맞았다. 5·18민주화운동 단체들은 “죽음으로 진실을 묻을 수 없다”며 추가 진상 규명을 요구했다.

전씨는 이날 오전 8시45분쯤 서울 연희동 자택 화장실에서 쓰러져 사망했다고 측근 민정기 전 청와대 공보비서관이 밝혔다. 민 전 비서관은 “정확한 사인은 의료진이 밝혀야 한다”면서도 “지난 8월 만성골수종 진단을 받았다”고 말했다. 전씨의 사망은 지난달 26일 12·12 군사 쿠데타 동지인 노태우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난 지 28일 만이다. 12·12 군사 쿠데타 주역이자 5·18 유혈 진압의 책임자인 두 전직 대통령이 잇따라 사망하면서 표면적으로는 역사의 한 페이지가 마무리됐다.

1931년 경남 합천에서 태어난 전씨는 1955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군인으로 임관했다. 1961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5·16 쿠데타를 지지하면서 ‘정치 군인’으로 승승장구했다. 1979년 10월26일 박 전 대통령이 암살되자 그해 12월12일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했다. 비상계엄 확대로 대대적인 탄압이 시작됐다. 이에 맞선 1980년 5·18 민주화운동은 전씨가 주도한 유혈진압으로 숱한 사상자를 남겼다. 11·12대 대통령에 오르며 견고하게 쌓아가던 ‘5공화국’ 독재체제는 결국 1987년 민주화 열기에 무너졌다.

사법적 심판대는 뒤늦게 열렸다. 전씨는 12·12 쿠데타와 5·18 유혈진압과 관련해 김영삼 정부 당시인 1995년 반란수괴, 내란수괴, 내란목적 살인 등 혐의로 기소됐다. 1997년 4월 대법원에서 무기징역과 추징금 2205억을 선고한 판결이 확정됐으나, 그해 12월 사면복권됐다. 현재 956억원의 추징금이 미납 상태다.

말년까지 전씨는 5·18민주화운동 무력 과잉진압을 인정하지도, 희생자들에게 사과하지도 않았다. 회고록에선 ‘대한민국을 지키려는 정당하고 불가피한 조치’라며 스스로 면죄부를 줬다. 고 조비오 신부의 ‘헬기 사격 목격’ 증언을 거짓말이라고 부인하며 거칠게 비난한 혐의(사자명예훼손)로 고소돼 항소심 결심공판을 앞둔 상태이기도 했다. 전씨측 민 전 비서관은 이날 ‘민주화운동 피해자들에게 남긴 말이 없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질문 자체가 잘못됐다”고 발끈했다. 그는 “여러 차례 (사과) 했는데 어떻게 더 하느냐”고도 했다.

5·18민주화운동 단체와 시민들은 전씨의 사과 없는 죽음 이후로도 5·18민주화운동의 진실을 밝히는 작업이 계속돼야 한다고 했다.

5·18기념재단과 5·18민주유공자유족회,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5·18구속부상자회 등은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회고록으로 5·18 영령들을 모독하고 폄훼했던 전두환이 생전에 역사적 심판을 받지 못하고 죄인으로 죽었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월 학살 주범들에게 반드시 책임을 묻고 전두환의 범죄행위를 명명백백히 밝혀 역사정의를 바로 세워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광주시민단체협의회는 성명에서 “전두환의 뻔뻔하고도 편안한 죽음에 분노한다”면서 “정치권은 하루빨리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담는 것을 합의하고 여전히 왜곡과 폄훼가 끊이지 않는 5·18의 진실 규명을 위해 나서라”고 했다.

전씨 빈소는 서울 신촌세브란스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유해는 화장할 예정이라고 전씨측은 밝혔다. 유족으로는 부인 이순자씨와 아들 재국·재용·재만씨, 딸 효선씨가 있다.

발인은 오는 27일 오전 8시다. 유해는 화장될 예정이다. 장지는 미정이다. 전씨는 앞서 회고록에서 “북녘땅이 보이는 전방고지에 백골로 남아있고 싶다”고 했다. 민 전 비서관은 “장지가 결정될 때까지 일단 화장 후 연희동에 모시다가 결정되면 그리로 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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