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권위’ 상징 청와대 이전 공약의 역사…김영삼부터 문재인까지 ‘단골 공약’

유설희 기자
청와대. 강윤중 기자

청와대. 강윤중 기자

대통령 집무실을 이전하겠다는 공약은 역대 대통령들의 ‘탈권위’를 입증하기 위한 ‘단골 공약’이었다. 역대 대통령들은 제왕적 권력의 상징인 청와대에서 벗어나 국민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겠다는 의지를 밝히며 집권 초기 대통령 집무실 이전 공약을 추진해왔지만 결국 청와대를 대체할 공간을 찾지 못해 이행하지는 못했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 공약을 처음으로 내세운 대통령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다. 김 전 대통령은 1993년 대선 후보 시절 군사독재 정치와 결별하겠다는 상징적인 조치로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집무 공약을 내걸었지만 지키지는 못했다. 대신 김 전 대통령은 1993년 2월25일 대통령 취임 첫 날 1968년 1월21일 발생한 이른바 김신조 사건으로 인해 시민들의 출입이 통제됐던 청와대 앞길과 인왕산을 개방했다. “문민정부 시대에 걸맞게 국민들이 청와대 앞을 자유로이 통행토록 해서 국민과 좀 더 친숙한 대통령이 되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김 전 대통령은 취임 2주 뒤인 같은해 3월에는 “과거 권위주의 밀실정치의 산실이었던 안가(안전가옥)를 철거하고 국민에게 되돌려주겠다”며 궁정동, 삼청동 등에 위치한 청와대 소유 안가 12채 철거를 지시했다. 궁정동 안가 자리에는 시민공원인 무궁화동산이 조성됐다. 궁정동 안가는 1979년 10월26일 박정희 전 대통령이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쏜 총에 맞고 숨진 곳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1998년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와 과천 제2정부청사에 집무실을 마련하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경호, 비용 등 문제로 중단했다. 대신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던 관례를 깨고 처음으로 서울청사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했다. 김 전 대통령은 청와대 경내에 있는 칠궁(조선 왕들의 생모 7인 신위를 모신 사당)을 개방했다. 청와대 관람 허용 대상도 단체 관람객에서 개인·외국인 관람객으로 넓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청와대 이전 공약에 가장 적극적이었다. 2002년 행정수도 이전 공약을 냈던 노 전 대통령은 청와대를 포함한 정부 부처를 모두 세종시로 이전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밝혔지만 2004년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에 따라 중단됐다. 노 전 대통령은 경복궁 4대문 중 유일하게 비공개로 남아 있던 북문인 신무문을 개방하고, 창의문에서 와룡공원에 이르는 북악산 성곽로 구간도 처음으로 개방했다.

전직 대통령 이명박씨도 임기 초반 서울청사 별관으로 집무실, 비서실, 경호실 이전을 검토했지만 비용, 국회 승인 문제 등으로 중단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광화문 대통령’이 되겠다고 공약했다. 문 대통령은 당선 이후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를 광화문대통령시대 준비자문위원으로 임명하는 등 집무실 이전 공약을 본격적으로 추진했지만 경호, 비용 문제에 막혀 보류했다. 유 석좌교수는 2019년 1월 “청와대 영빈관, 본관, 헬기장 등 집무실 이외 주요기능 대체부지를 광화문 인근에서 찾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2017년 6월부터 한시적으로 개방되던 청와대 앞길을 24시간 개방했다. ‘북악산 성곽로 전면 개방’을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던 문 대통령은 북악산 성곽 북측면 탐방로를 개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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