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여당 대변인의 무게와 ‘펜스룰’

유설희 기자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 김영민 기자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 김영민 기자

지난 22일 여의도 한 식당에서 국민의힘 대변인 2명과 국민의힘 출입기자 3명이 점심을 먹었다. 기자들에게 출입처 대변인과의 식사 자리는 취재 활동의 일환이고, 대변인에게는 공적인 만남이라 할 수 있다.

이날 식사 자리에 나온 문성호 대변인과 임형빈 상근부대변인은 이준석 대표가 도입한 대변인단 선발 토론 배틀(나는 국대다)를 통해 정계에 입문했다. 이 대표의 당 윤리위원회 회부가 정당한지 등 당내 현안에 대한 대화가 오갔다. 식사를 마친 뒤 ‘다음에 식사 한 번 더 하시죠’라는 의례적인 인삿말을 건넸는데, 문 대변인에게서 이례적인 답이 돌아왔다. “다음에는 남성 기자님들과 함께 식사하시죠.” 이날 참석한 기자 3명은 모두 여성이었다.

왜 그래야 하는지 물었다. 그는 대변인이 되기 전 자신이 설립한 시민단체(당당위) 활동으로 인해 정신적 외상을 입었노라고 설명했다. 여성들의 성폭력 무고로 남성들이 피해를 입는 사례들을 너무 많이 목격했고, 그로 인해 여성들만 있는 자리가 불편하다는 취지였다.

집권여당의 ‘입’인 대변인이 출입 기자를 상대로 여성을 배제하는 논리인 ‘펜스룰’을 적용한 것이다. 공적 자리에서 만난 상대방을 ‘기자’가 아닌 ‘여성’으로 보는 시각을 드러냈다. 그는 “또 처음 본 여성들과는 만나는 게 두렵다”며 기자들을 ‘처음 본 여성’으로 대했다. 모든 여성은 잠재적인 무고죄 가해자가 될 수 있으므로 피하는 게 낫다는 식의 주장이었다.

기자들은 당 대표실 측에 공식적인 사과가 필요하다는 뜻을 전했다. 이 대표 측 역시 사안이 심각하다고 판단하고 즉각적인 조치를 약속했다.

문 대변인은 23일 기자에게 전화해 “어디까지나 제 개인사이고 힘들어도 스스로 감내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모습을 보였다”며 사과했다.

대변인은 그 당의 가치와 철학을 전하는 최전선에 있다. 그의 말 한마디가 당의 입장이 되는 무거운 자리다. 문 대변인의 말이 국민의힘이 지향하는 어떤 가치를 담은 것인지 묻고 싶다. 사과와는 별개로 이번 사안의 공론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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