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파구청 현수막 철거사건, ‘현수막 전쟁’의 서막

송진식 기자

정당 현수막 게재 허용 범위 확대 후 다툼 늘어

내년 총선에는 유권자도 현수막 게재 가능

“허용 기준 더 세부적으로 다듬어야”

대통령 선거 유세 첫날인 15일 오후 서울 공덕동 교차로에 대선후보들의 공약을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대통령 선거 유세 첫날인 15일 오후 서울 공덕동 교차로에 대선후보들의 공약을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주간경향] 지난 2월 14일 열린 서강석 송파구청장과 주민과의 현장 간담회인 ‘찾아가는 주민과의 대화’ 자리. 질의응답 과정에서 지역 주민대표 자격으로 참석한 박지선 진보당 강동·송파구위원장과 서 구청장 간 설전이 벌어졌다. 진보당이 2월 4일 송파구 관내에 게재한 현수막을 구청이 철거한 것이 원인이었다. 박 부위원장은 “구청이 불법으로 현수막을 철거했다”고 항의했고, 서 구청장은 “애초에 불법 현수막이었다”며 맞섰다. 설전은 서 구청장이 “헌법을 준수하시라”며 말을 끊을 때까지 3분여간 이어졌다.

앞서 1월에는 광주광역시 서구청이 정의당 광주시당이 내건 현수막을 철거했다가 불법 논란이 일었다. 서구청 측은 철거 사실을 부인하다가 경찰을 통해 CCTV 내역이 확인되자 뒤늦게 사과했다. 이 사건은 정의당 항의를 받은 서구청의 한 공무원이 현수막 제작비 5만원 등 7만원을 배상비 명목으로 정의당에 입금해 더 화제가 됐다.

지난해 12월부터 정당이 정책이나 정치적 현안에 대한 입장을 현수막으로 게재하는 행위를 허용하는 내용의 ‘옥외광고물법·시행령 개정안’이 시행됐다. 법 시행 후 정당이 내거는 현수막이 늘면서 전국 각지에서 현수막 철거나 훼손 문제 등을 둘러싼 다툼도 늘고 있다. 올해 7월 말이 되면 선거를 앞두고 현수막 설치를 제한해왔던 공직선거법 내 조항도 폐지된다. 내년 총선 국면에서는 현수막이 더 늘 것으로 예상된다. 향후 벌어질 수 있는 ‘현수막 전쟁’을 대비해서라도 모호한 관련 법 조항을 세부적으로 다듬을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송파구청 현수막 철거사건의 전말

설전은 ‘2차전’이었다. 박 위원장과 서 구청장은 이미 서로 고소·고발을 주고받은 사이다. 박 위원장은 지난 2월 6일 서 구청장을 재물손괴, 절도,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송파경찰서에 고소했다. 이튿날 송파구청(서 구청장)은 박 위원장을 무고죄와 허위사실 공포에 따른 명예훼손 혐의로 송파서에 고발했다. 서로 취하하지 않는다면 나란히 송파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게 된다.

다툼의 원인은 현수막 철거 문제지만, 그 배경에는 지난해 말 개정된 옥외광고물법이 있다. 정당법에서는 ‘정당이 특정 정당이나 공직선거의 후보자를 지지·추천·반대하려는 목적이 아닌 자당의 정책이나 정치적 현안에 대한 입장을 인쇄물·시설물·광고 등을 이용해 홍보하거나 당원을 모집하기 위한 행위’를 통상적인 정당활동으로 보장하고 있다. 반면 개정 전 옥외광고물법에서는 집회나 행사 등의 사용 목적이 아닌 현수막 게재는 불허한 탓에 정당들이 현수막을 통한 정당활동을 펼치는 데 제한이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진보당이 2월 16일 송파구청 앞 도로변에 게재한 정당 현수막.  진보당 제공

진보당이 2월 16일 송파구청 앞 도로변에 게재한 정당 현수막. 진보당 제공

지난해 6월 국회에서 옥외광고물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6개월이 지난 12월부터는 정당이 현수막을 통해 정당활동을 펼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다만 무분별한 현수막 게재를 막기 위해 시행령에 몇 가지 제한조건을 포함시켰다. 반드시 정당법 제2조가 규정하는 ‘정당’이 설치해야 하고, 제작 경비 역시 정당 경비로 해야 한다. 실제 제작된 현수막에는 정당 명칭(당대표·지역위원장 등 명의자 포함)과 연락처, 설치업체의 연락처, 표시기간(최대 15일)이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

개정된 옥외광고물법에 따라 진보당은 지난 2월 4일 ‘성폭력 혐의자 시설관리공단 이사장 임명, 서강석 송파구청장 규탄한다’고 적힌 현수막 10개를 잠실 송파구청 주변 등에 게재했다. 진보당과 지역 시민단체 협의회인 ‘송파연대회의’는 최근 서 구청장이 공직에 부적절한 인사를 시설관리공단 이사장에 임명했다고 비판해왔다. 이를 현수막에도 담아 내걸었다.

현수막을 본 송파구청은 하루 뒤인 5일 현수막을 모두 철거했다. 현수막의 내용이 ‘통상적인 정당활동’으로 볼 수 없고, 현수막에 ‘표시기간’을 법에서 허용하는 15일을 넘긴 ‘16일’로 표시했다는 이유에서다. 불법 현수막 게재에 대한 과태료 621만원도 진보당에 부과했다. 철거에 반발한 진보당은 지난 2월 9일 기존 문구에 ‘정당 현수막 불법철거’란 내용을 추가해 현수막 10장을 다시 게재했다. 문제가 된 표시기간은 규정대로 15일로 정정했다. 송파구청은 이 역시 불법 현수막이라며 철거했다.

“지자체 현수막 임의 철거는 표현의 자유 훼손”

이 사건에서 최대 쟁점은 현수막의 내용이 ‘통상적인 정당활동’에 해당하는지 여부다. 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논란을 예상해 행정안전부는 옥외광고물법 개정안 시행과 함께 ‘정당 현수막 설치·관리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각 지자체에 배포했다. 가이드라인에서는 현수막 내용이 정당활동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대해선 지역 선거관리위원회에 유권해석 등을 받도록 하고 있다.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송파구청은 현수막을 철거하기에 앞서 해당 문구가 가능한지 송파구 선관위의 유권해석을 받아야 한다. 결론적으로 송파구청은 이 같은 절차를 따르지 않고 임의대로 정당활동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유권해석을 받은 쪽은 오히려 진보당이다. 첫 번째 현수막이 철거된 뒤 진보당이 송파구 선관위에 유권해석을 의뢰했다. 약 2시간 뒤 선관위에선 유선상으로 “정당활동에 해당한다”는 답변을 보내왔다. 진보당이 송파구청의 현수막 철거를 ‘불법’으로 규정한 배경이다.

두 번째 쟁점은 현수막에 적힌 문구 중 ‘성폭력 혐의자 시설관리공단 이사장 임명’이란 내용이 사실에 부합하는지 여부다. 양쪽 주장은 엇갈린다. 진보당과 송파연대회의 측은 “해당 인사의 과거 성추행 사실을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했고, 송파구청에서도 아는 사실”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서 구청장은 “해당 인사는 성추행 문제로 감사를 받거나 징계를 받은 전력이 전혀 없고, 임명 절차 역시 모두 합법적”이라고 맞선다. 허위사실 유포에 따른 명예훼손 및 무고죄 등으로 송파구청이 현수막을 불법으로 판단하고, 진보당 측을 고발한 이유다.

지난해 6월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 출마한 후보들의 현수막이 거리 곳곳에 걸려 있다.연합뉴스

지난해 6월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 출마한 후보들의 현수막이 거리 곳곳에 걸려 있다.연합뉴스

행안부는 난감하다는 입장이다. 지자체에 하달한 가이드라인은 ‘내부 지침’에 해당하지만 그 자체로 강제성을 갖지는 않는다. 지자체가 따르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광주광역시 서구에서 발생한 현수막 철거 사건도, 비슷한 시기 광주 동구에서 발생한 철거 사건도 모두 지자체가 가이드라인을 제대로 따르지 않고 자의적으로 판단해 철거하는 바람에 결과적으로 문제가 됐다.

행안부 관계자는 “법에서 규정하는 정당 현수막의 일정한 게시 요건(정당명·게시기간 표기 등)을 어길 경우 ‘관리주체’인 지자체의 임의 철거가 가능하다”면서도 “현수막 내용의 경우 선관위의 유권해석을 통해 판단하라는 것이 정부 방침”이라고 밝혔다. 그는 “지자체가 가이드라인을 준용하지 않는 문제에 대해선 개선을 검토하겠다”고 덧붙였다.

지자체가 정당 현수막 내용의 합법 여부를 자의적으로 판단할 경우 표현의 자유를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헌법재판소 연구관을 지낸 노희범 변호사는 “표현의 자유 측면에서 볼 때 정치적인 입장이나 표현을 그 내용 자체로 제한해선 안 된다”라며 “특히 지자체장의 성향이나 이념, 득실에 따라서 그 판단이 달라진다면 위헌적인 공권력 행사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지자체가 지자체장을 비판하는 내용이 담긴 현수막을 게재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 침해라는 판단을 내린 바 있다. 지난해 한 지자체가 지자체장을 비판하는 내용의 현수막을 게재하려는 관내 시민단체의 시도를 불허했고, 해당 시민단체는 인권위에 진정을 냈다. 인권위는 지난해 7월 4일 결정에서 “정부·지자체 등 공적 기관의 업무 수행에 관한 사항은 일상적인 감시와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라며 진정인의 현수막 게시 불허를 재검토하라고 권고했다. 향후 주민의 ‘표현의 자유’가 침해되지 않도록 해당 지자체의 공무원을 대상으로 재발 방지 교육을 실시하라고도 권고했다.

현수막 게재 허용 확대, 난립에 따른 문제도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7월 21일 선거기간이나 선거기간 전 유권자의 정치적 의사 표현을 폭넓게 제한하고 있는 현행 공직선거법의 다수 조항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위헌 결정을 받은 조항에는 선거 180일 전부터 선거일까지 일반 유권자가 현수막이나 인쇄물을 통해 정치적 의사 표현을 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제90조 등도 포함됐다. 결정과 함께 헌재는 “2023년 7월 31일까지 유예기간을 두고 국회가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헌재의 결정을 적용하면 내년 총선에는 정당뿐만 아니라 일반 유권자들도 현수막을 통해 정치적 의사표현이 가능해진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헌재 결정에 따라 국회에 법 개정을 위한 의견서를 지난 1월 17일 제출했다. 중앙선관위는 의견서에서 “누구든지 선거 운동에 해당하지 않는 현수막 등 시설물과 인쇄물을 이용한 의사표현을 자유롭게 허용하도록 개정이 필요하다”며 “다만 특정 후보자에 대한 지지·반대 등은 제한적으로 허용하도록 한다”고 밝혔다.

공직선거법이 개정되면 내년 총선에는 시민단체나 지역단체, 개별 유권자 등이 현수막을 통해 다양하게 의사표현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중앙선관위 관계자는 “국회에서 설사 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는다 해도 7월 31일 이후 현수막 등을 제한한 해당 조항은 법적 효력이 없어지게 된다”고 밝혔다. 총선 국면에는 지금보다 현수막도 더 늘어나고, 현수막의 내용이 법에서 금지한 ‘선거운동에 해당하는지’를 놓고 더 많은 갈등과 다툼이 생겨날 수 있다는 의미다.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끝난 뒤 지자체 공무원이 수거한 폐현수막을 정리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끝난 뒤 지자체 공무원이 수거한 폐현수막을 정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때문에 현수막 내용의 위법성 문제에 대해 관련 법령에서 보다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규정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수막만 놓고 보면 정당법과 공직선거법 등에서 의사표현의 자유가 보다 확대되긴 하지만, 현수막이 옥외광고물법 규제를 받다 보니 정당법 등과 충돌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노희범 변호사는 “일부 지자체에서는 자체 조례 등을 들어 정당 현수막을 철거하기도 하는데 이는 상위법에 위배된 것”이라며 “내용을 제한해야 한다면 객관적이고 동일한 기준을 마련해 법령에 보다 구체적으로 명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근 경남 창원에서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등이 내건 정당 현수막이 한 개인에 의해 잇달아 훼손된 점을 들어 훼손이나 무단 철거 시 처벌하는 조항을 보다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현수막이 늘면서 난립에 따른 환경 파괴 및 도시경관 훼손, 안전 문제 등이 악화될 것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대부분 플라스틱 합성 섬유인 현수막은 매립할 경우 토양 오염, 소각할 경우 대기 오염을 일으킨다. 중앙선관위가 추산한 제20대 대선과 8대 지방선거에서 쓰인 현수막은 모두 17만여장이 넘는다. 실제 사용량은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환경단체 등은 추정하고 있다. 2022년 환경부 집계를 보면 재활용되는 현수막 비율은 전체의 25% 수준에 그친다. 각 지자체 등이 생분해 원료로 된 현수막 제작을 권고하는 등 노력하고는 있지만 역부족이다. 현수막이 더 늘어난다면 분명 환경에 바람직하지 않다.

지하철역 앞이나 차량 통행이 많은 교차로 등은 현수막의 ‘명당’으로 꼽힌다. 각 정당 간 경쟁도 치열하다. 특히 소수 정당이나 지역 기반 정당에는 현수막이 ‘가성비’가 높은 선전수단이지만 난립할 경우 보행자나 운전자의 시야를 가릴 수 있다. 도시경관을 해치기도 해 비판의 대상이 된다. 정당의 현수막 게재를 폭넓게 허용한 뒤 맞은 올해 설에도 지하철역 등 주변에 현수막이 우후죽순 난립해 시민들이 불만을 나타내기도 했다.

서울의 한 자치구 관계자는 “지역 상인들이 현수막이 간판을 가려 생업에 지장을 준다며 철거 민원을 해오는 사례가 적지 않다”라며 “표현의 자유 확대도 좋지만 현수막 난립으로 다수의 시민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제약을 두는 방안도 고려했으면 한다”고 밝혔다.


Today`s HOT
파리 뇌 연구소 앞 동물실험 반대 시위 앤잭데이 행진하는 호주 노병들 기마경찰과 대치한 택사스대 학생들 케냐 나이로비 폭우로 홍수
황폐해진 칸 유니스 최정, 통산 468호 홈런 신기록!
경찰과 충돌하는 볼리비아 교사 시위대 아르메니아 대학살 109주년
개전 200일, 침묵시위 지진에 기울어진 대만 호텔 가자지구 억류 인질 석방하라 중국 선저우 18호 우주비행사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