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검찰수사심의위 신청 ‘승부수’ 띄워볼까

정희완 기자

‘수사 중단’·‘불기소’ 권고 땐 검찰에 치명타

민주당 체포동의안 부결 ‘방탄’ 논란 돌파 가능

수세 놓인 이재명 대표에 일종의 ‘승부수’ 될 듯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2월 23일 국회에서 개최한 기자간담회에서 자신을 상대로 한 검찰 수사와 관련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 박민규 선임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2월 23일 국회에서 개최한 기자간담회에서 자신을 상대로 한 검찰 수사와 관련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 박민규 선임기자

[주간경향] 검찰의 칼끝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정조준했다. 검찰은 최근 이 대표의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 대표의 체포동의안은 국회에서 부결될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의 ‘방탄’ 논란도 더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이 대표의 구속영장을 다시 청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이 대표가 대응할 수 있는 카드로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제도가 거론된다. 이 대표의 기소·불기소 여부를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수사심의위의 판단에 맡겨보는 것이다. 수사심의위는 검찰수사 단계에서 이 대표가 던질 수 있는 일종의 승부수가 될 수 있다.

수사심의위 개최 요건 부합

검찰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세 차례 조사한 데 이어 지난 2월 16일 이 대표의 구속영장을 법원에 청구했다. 검찰이 제1야당 대표를 구속하겠다고 나선 건 헌정 사상 최초다. 구속영장 청구서에 적시된 혐의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제3자 뇌물 등이다. 이 대표가 성남시장 재직 시절 대장동 개발사업에서 부정한 방법을 동원함으로써 민간사업자들이 7886억원의 이익을 보게 한 반면, 성남시 측에는 4895억원의 손해를 끼쳤다고 검찰은 의심한다. 또 이 대표가 기업 4곳의 부정한 청탁을 들어주면서 그 대가로 이들 기업이 성남FC에 133억5000만원을 제공케 했다고 본다.

이 대표는 모든 혐의를 부인한다. 대장동 사업은 적법한 절차를 거쳐 추진했고, 성남시가 외려 5503억원의 공익을 얻었다고 반박한다. 성남FC가 기업에서 받은 돈은 정당한 광고비라는 입장이다. 구속영장 청구서에는 이 대표에게 직접 돈이 흘러갔다는 내용이 없다는 점도 강조한다. “이재명 없는 이재명 구속영장”이라는 것이다.

검찰이 이 대표의 구속영장을 청구했다는 건 구속 여부를 떠나 일단 이 대표를 기소하겠다는 뜻이다. 이 대표가 검찰의 기소에 앞서 꺼낼 수 있는 방안으로 검찰수사심의위원회가 꼽힌다. 이 제도는 검찰이 외부의 의견을 반영함으로써 수사의 공정성·중립성을 담보하고 신뢰를 제고한다는 취지로 2018년 1월에 도입했다. 외부 전문가들이 모여 검찰수사의 타당성 등을 심의한다. 위원회 구성과 운영, 역할 등에 관한 내용은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운영지침’(대검찰청 예규)에서 규정한다.

수사심의위가 논의할 수 있는 사건의 기준은 ‘국민적 의혹이 제기되거나 사회적 이목이 집중되는 사건’이다. 국민의 알권리, 사안의 중대성, 인권보호 필요성 등도 고려 요소다. 이재명 대표 사건은 이미 국민적 관심사로 떠올랐기 때문에 이런 기준에 부합한다고 볼 수 있다. 심의 대상은 ‘수사 계속’, ‘기소 및 불기소’, ‘구속영장 청구 및 재청구’ 여부 등이다. 피의자·고소인 등 사건관계인은 구속영장 청구 여부의 심의를 신청할 수 없다. 이는 검찰 측의 소집 요청이 있을 때만 가능하다.

검찰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구속영장을 청구한 지난 2월 1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의 모습 / 이준헌 기자

검찰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구속영장을 청구한 지난 2월 1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의 모습 / 이준헌 기자

사건관계인이 수사심의위 소집을 신청했다고 무조건 열리는 건 아니다. 2개 관문을 넘어야 한다. 우선 관할 검찰청의 검찰시민위원회에 ‘수사심의위 소집 신청서’를 제출해야 한다. 검찰시민위원장이 심사 대상에 해당하는지를 일차적으로 판단한다. 심사 대상으로 인정하면 검찰시민위원으로 구성된 ‘부의심의위원회’가 꾸려진다. 부의심의위는 신청 사건을 수사심의위에 안건으로 부칠지 검토한다. 여기서 회부 결정이 내려지면 비로소 수사심의위가 개최된다. 기존 사례를 보면 수사심의위 소집 신청 뒤 개최까지 약 20~40일이 걸렸다.

수사심의위원은 150~300명이다. 법조계, 학계, 언론계, 시민단체, 문화·예술계 등 사회 각 분야의 전문가를 검찰총장이 위원으로 위촉한다. 정당에 가입한 사람은 위원이 될 수 없다. 특정 사건의 수사심의위에서 실제 심사를 맡을 위원들은 무작위 추첨을 통해 추려진다. 위원장을 제외하면 15명으로 구성된다. 위원장은 회의를 주재하지만 질문이나 표결에는 참여할 수 없다.

회의에서 주임검사와 피의자 등 신청인은 30쪽 분량의 의견서를 제출한다. 30분 이내로 사건을 설명하거나 의견을 개진할 수 있다. 위원들은 양측에 질문도 가능하다. 의견서의 분량이나 시간 등 회의진행은 위원회가 자율적으로 조정할 수 있다. 심의는 비공개로 진행한다.

수사심의위는 일치된 의견을 도출할 수 있도록 하되, 그렇지 않으면 과반수 찬성으로 심의 결과를 의결한다.

분위기 급반전 가능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사건을 대상으로 한 수사심의위에서 ‘수사 중단’과 ‘불기소’라는 결론이 나오면 어떻게 될까. 검찰은 그래도 이 대표의 기소를 강행할 가능성이 높다. 수사심의위 심의 결과를 검찰이 반드시 따라야 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규정에는 ‘주임검사는 심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고만 나와 있다. 권고적 효력에 그치는 것이다. 검찰이 이 대표의 구속영장을 청구한 점도 기소 강행 관측에 무게를 더한다.

전례도 있다. 2020년 6월 당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현 회장)의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 사건에서 수사심의위는 수사 중단과 불기소를 권고했다. 하지만 검찰은 약 두 달 뒤 이 부회장을 불구속 기소했다. 당시 검찰은 수사심의위 권고 이후에 외부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고, 부장검사회의 등을 개최한 끝에 기소에 이르게 됐다고 밝힌 바 있다. 또 같은 해 7월 ‘채널A 기자의 강요미수 의혹’ 사건에서도 수사심의위는 피의자인 한동훈 검사장(현 법무부 장관) 수사를 중단하고 불기소하라는 의견을 냈지만, 검찰은 강제수사를 이어갔다. 이는 검찰이 수사심의위 권고를 거부한 첫 번째 사례로 기록됐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022년 10월 27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회계부정·부당합병 혐의 관련 공판을 마치고 취재진에게 입장을 밝히고 있다.  / 문재원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022년 10월 27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회계부정·부당합병 혐의 관련 공판을 마치고 취재진에게 입장을 밝히고 있다. / 문재원 기자

그럼에도 수사심의위가 일단 이재명 대표를 불기소해야 한다는 권고를 내놓으면 분위기가 급반전될 수 있다. 검찰수사의 정당성은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수사가 주춤할 수도 있다. 검찰이 이 대표를 기소하면 ‘스스로 만든 제도를 무력화한다’는 비판 여론을 피하기 어렵다.

반면 “보복수사”, “정치탄압”이라는 이 대표의 주장은 힘을 받게 된다. 체포동의안 부결 등에 따른 방탄 논란을 누그러뜨리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이 대표의 체포동의안은 2월 27일 국회에서 표결한다. 재적의원 과반수가 참석해 과반수가 찬성하면 가결된다. 민주당은 지난 2월 21일 의원총회를 열고 체포동의안을 부결시키기로 총의를 모았다. 민주당이 169석을 확보하고 있어서 부결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그러면 이 대표는 법원의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반대급부로 민주당은 방탄 정당이라는 프레임을 걷어내야 하는 과제를 떠안게 된다. 수사심의위가 불기소 결론을 내린다면 민주당은 이를 근거로 체포동의안 부결의 정당성을 피력할 수 있다.

게다가 내년 4월에는 총선을 치른다. 이 대표 사건은 내용이 복잡하고 기록이 방대할 것으로 예상돼 법원의 1심 판결은 총선 이후에나 나올 가능성이 있다. 이 대표는 공판이 열릴 때마다 법원에 출석해야 한다. 부정적인 모습이 계속 조명될 수밖에 없다. 국민의힘도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소재로 공격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이 대표와 민주당이 내년 총선까지 줄곧 수세에 놓여 고전할 수 있다는 얘기다. 수사심의위의 불기소 권고는 이런 여당의 공세에 맞설 수 있는 방어책이 될 수 있다.

또 이 대표를 겨냥한 검찰의 다른 수사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검찰은 이 대표가 대장동 일당의 편의를 봐주는 대가로 김만배씨로부터 428억원 상당의 지분을 받기로 했다는 의혹을 수사 중이다. 백현동 개발과 정자동 호텔 개발 과정에서의 특혜 의혹, 쌍방울그룹의 대북송금 및 변호사비 대납 의혹 등의 수사도 벌이고 있다. 이들 사건에서 검찰이 이 대표의 구속영장을 청구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독이 될 수도

수사심의위 카드는 위험 부담도 크다. 수사심의위가 이 대표에게 유리한 결론을 내릴 것이라고 낙관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수사심의위가 이 대표를 기소해야 한다는 의견을 낼 수도 있다. 그러면 검찰수사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효과를 내면서 이 대표를 향한 다른 수사도 탄력을 받을 수 있다. 체포동의안 부결에 따른 방탄 이미지가 더 굳어질 위험성도 있다. 모든 혐의를 부인해온 이 대표는 궁지에 몰릴 가능성이 높다. 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기 전까지는 ‘사법 리스크’ 꼬리표를 떼기가 쉽지 않은 상황에 놓일 수 있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민주당 내에선 수사심의위 소집 신청에 부정적인 견해도 나온다. 한 친이재명계 의원의 말이다. “이번 사건은 정치적인 사건이다. 따라서 수사심의위원들이 사건의 실체나 법리를 면밀히 따지기보다는 개인적인 정치성향에 따라 기소·불기소 여부를 판단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꼭 진보·보수가 아니더라도 이 대표에게 우호적이냐 아니냐에 따라 심의 결과가 좌우될 수도 있다. 위원 중에는 경력 많은 법조인 출신이나 교수 등 이른바 주류 계층의 원로급이 많은 것으로 안다. 이런 분들은 대체로 이 대표를 포퓰리스트나 선동가로 보는 시각이 많다. 이 대표의 인성에 대해서도 불신하는 성향을 갖고 있다. 그를 부정적으로 보는 것이다. 법원에서 유무죄를 다퉈보면 된다는 이유를 들어 기소 자체가 부당하다고 결론낼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수사심의위가 이 대표에게 외려 독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지난 2월 21일 국회에 접수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체포동의요구서 / 국회사진기자단

지난 2월 21일 국회에 접수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체포동의요구서 / 국회사진기자단

민주당 내 일각에선 이 대표가 불체포 특권을 내려놓거나 민주당이 체포동의안을 가결시켜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 대표가 법원의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법원이 영장을 기각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맞서볼 만하다는 시각이다.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은 2월 23일 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당당하게 가서 (구속)된들 플러스가 될 수도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만약 법원이 영장을 기각하면서 ‘범죄 혐의가 소명조차 되지 않았다’는 취지의 판단을 밝힌다면, 이 대표와 민주당에 유리한 정국이 조성될 수 있다. 검찰은 치명타를 입게 된다. 법원이 이 대표의 구속영장을 발부한다면 정반대의 상황이 펼쳐질 것으로 전망된다.

수사심의위 제도 개선한다고 했는데?

수사심의위는 2018년 1월 도입 이후 지난 2월 21일 현재까지 모두 14번 열렸다. 수사 계속이나 기소 여부 등을 판단하는 현안위원회는 13차례, 이미 처분을 내린 사건 수사의 적정성·적법성 등을 점검하는 수사점검위원회가 한차례 열렸다고 대검찰청이 밝혔다.

수사심의위 제도 자체는 검찰의 기소 독점권 등을 견제한다는 취지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다만 수사심의위 의결의 효력이 권고에 머물러 검찰이 이를 무시해도 그만이라는 점이 한계로 지적됐다. 동시에 사건 내용이 많고 복잡한 사건을 다룰 때 짧은 심사 시간과 위원들의 전문성 문제가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국민적 관심이 제기되거나 사회적 이목이 집중된 사건’이라는 사건 선정 기준은 자의적 해석이 가능해 권력자 등 특정 계층에만 적용된다는 비판도 나왔다. 위원 구성 자체를 두고 정치적·사회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이들이 주를 이룬다는 것도 개선점으로 꼽혔다.

대검은 2022년 4월 민주당이 검찰의 수사권을 축소하는 내용의 형사소송법·검찰청법 개정을 추진하자 방어 차원에서 자체 개혁안을 제시했다. 여기에는 수사심의위의 실질화와 법제화 방안도 담겨 있다.

당시 대검은 수사심의위원 가운데 일정수 이상이 찬성하면 그 결과에 기속력을 부여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수사심의위를 국민참여재판과 유사하게 미국식 ‘기소대배심’처럼 운용할 수 있도록 ‘국민참여소추에 관한 법률’(가칭)을 제정하는 등 “국민께 기소권을 돌려드리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또 심의 대상을 확대해 ‘수사 착수’ 여부까지 포함하는 방안, 수사심의위 소집을 요청할 수 있는 대상을 국회 법제사법위원장, 법무부 장관, 대한변호사협회장 등 제3자까지 확대하는 방안 등도 검토하겠다고 했다.

현재 이런 논의가 진행 중인지를 묻자 대검은 지난 2월 21일 “현재 헌법재판소에서 개정 검찰청법에 대한 권한쟁의심판이 진행 중이고, 이에 검찰은 형사사법 시스템의 개선을 위한 다양한 제도의 정비를 검토하고 있다”고 답했다. 수사권 축소법이 국회를 통과해 시행됐기 때문에 당시 발표했던 개혁안을 본격 논의하고 있지는 않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법무부는 2022년 6월 검찰수사권 축소법의 위헌성을 주장하며 헌재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한 바 있다. 헌재는 해당 사건을 심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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