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부 기자들이 전하는 당최 모를 이상한 국회와 정치권 이야기입니다.”
서울 한낮 기온이 24도에 오른 14일 오후 1시30분. 여의도 국회 본관 계단 앞에는 가로 5m, 세로 5m의 하얀 몽골 텐트가 자리를 잡았습니다. ‘채 해병 특검 관철을 위한 더불어민주당 초선 당선인 비상행동’이란 현수막이 내걸린 텐트엔 정장 차림의 사람들이 수시로 드나들었습니다. 서미화 당선인(비례)을 비롯한 초선 당선인들과 3선의 박주민 의원 등 낯익은 얼굴도 보였습니다.
지난 10일 농성 시작···‘장외 여론전’ 본격화
민주당 22대 초선 당선인들은 지난 10일 같은 자리에서 비상행동 선포식을 열고 천막 농성에 돌입했습니다. 조국혁신당 당선인들이 지난 13일 농성장을 지지 방문하는 등 범야권 원외 투쟁의 장이 된 모습입니다. 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이 특검 거부권을 행사할 때를 대비해 범국민 대회 등 장외투쟁 연대 방안을 고심 중입니다.
이번 천막 농성은 최근 민주당 원내대변인이 된 윤종군 당선인(경기 안성)이 주도했습니다. 윤 당선인은 통화에서 “중앙당에서 당직자로 오래 일을 해온 경험을 토대로 개원 전 초선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찾다 천막 농성을 제안하게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개인 자격으로 제안했고, 직접 텔레그램 대화방을 만들어 참가자를 모집했다”며 “박찬대 원내대표에게는 사전에 말씀만 드렸다”고 말했습니다.
천막 농성은 주말을 제외한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이뤄진다고 합니다. 71명의 초선 당선인 중 60여명이 참여해 하루 약 10명씩 돌아가며 자리를 지킵니다. 윤 당선인은 천막 농성의 효과에 대해 “초선들의 결기를 보여주는, 유권자들이 준 표심을 국회 중앙 정치 무대에서 실천하는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보수·진보 가리지 않고, 오랜 ‘대정부 투쟁’ 수단
천막 농성은 야당의 역사 깊은 대정부 투쟁 방식 중 하나입니다. 이명박 정부 시절이던 2010년 12월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4대강 예산·날치기 법안 무효화를 주장하며 서울광장에서 100시간 천막 농성에 돌입했습니다. 박근혜 정부 시절이던 2013년 8월엔 김한길 민주당 대표가 서울광장에서 국가정보원 개혁을 요구하며 노숙 투쟁에 돌입했습니다. 두 시기 모두 집권 여당인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이 각각 173석, 154석으로 원내 절반 이상을 차지하던 때였습니다. 보수 언론은 민주당의 천막 농성을 “길거리 야당의 고질병”이라고 칭하며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국민의힘 전신인 자유한국당도 야당 시절 천막 농성을 한 바 있습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2019년 11월 지소미아(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연장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연동형 비례대표제 철회를 요구하며 청와대 앞에서 단식 노숙 농성을 했습니다. 단식 투쟁은 황 대표가 단식 8일 만에 의식을 잃고 병원에 이송되며 끝이 났습니다. 당시 집권 여당이던 민주당은 128석, 자유한국당은 114석으로 의석수는 14석 차이가 났습니다.
개원도 안 했는데···거야 ‘완력 과시’ 비판도
이 밖에도 수많은 농성장이 국회 안팎에서 생겨나고 사라지길 반복했습니다. 다만 민주당 초선 당선인들의 이번 천막 농성은 앞선 사례들과 다르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민주당은 지난 4·10 총선에서 압승해 22대 국회에서 171석의 초거대 야당이 됩니다. 원내 제1당의 초선 당선인들이 개원도 전에 ‘나인 투 식스(9 to 6)’ 출퇴근 농성을 하는 것이 맞느냐는 것입니다.
국민의힘은 당장 “완력 과시”라며 반발했습니다. 호준석 국민의힘 대변인은 지난 11일 논평을 내고 “22대 국회가 아직 개원도 하지 않았는데 천막부터 치고 완력을 과시하는 구태의연한 행태부터 보여서야 하겠나”라며 “민주당은 거대 의석의 원내 다수당”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민주당 초선 당선인들을 향해선 “나쁜 선동부터 배울 것이 아니라 진짜 정치를 배워야 한다”고 했습니다.
내로남불 행태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단식농성을 할 당시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변인(현 원내대표)은 농성장에서 당직자들이 4명씩 하루 2교대 하는 것을 지적하며 “보여주기식 ‘단식투쟁’을 중단하고 ‘민생논의’에 집중해 줄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지난해 9월 돌입한 단식 농성 역시 민생을 명분으로 삼았으나 원내 제1당 대표의 검찰 소환조사 대비용 ‘방탄 단식’이란 비난에 직면한 바 있습니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일부 자성 목소리가 감지됐습니다. 수도권의 한 의원은 “본인들이 하겠다는데 누가 말리냐”면서도 “천막 농성이나 단식 투쟁은 최후의 수단이 돼야 한다. 원내 제1당의 투쟁 방식은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