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트 투나잇(Fight Tonight)!’ “오늘 밤이라도 당장 (최적의 태세로) 전투에 나설 수 있다”는 주한미군 슬로건이다. 한국군 수뇌부도 10여년 전부터는 ‘항재전장(恒在戰場·항상 전쟁터에 있다)의 자세’라는 전통적 한국군 구호와 함께 ‘파이트 투나잇’ 용어를 함께 사용하고 있다.
파이트 투나잇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오늘 밤 당장 전투에 나설 수 있을 정도로 실전을 방불케 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이는 문재인 정부 ‘국방개혁 2.0’의 상징인 ‘표범 같은 군대’의 필요충분조건이기도 하다. 현실은 거리가 있다. 군을 정예강병으로 키우기 위한 사격장과 훈련장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지휘관들이 훈련 중 안전과 주민 민원 등을 내세워 야간훈련이나 강도 높은 훈련을 기피하고 있는 게 군의 현주소다.
■ 갈수록 훈련할 곳이 줄어든다
군 사격장은 지난해 9월 발생한 육군 6사단 자동화사격장 사고 이후 실시한 전수조사 결과 298곳이 안전 등에서 불안한 것으로 드러났다. 6사단 사격장 사고 원인으로는 실전전투사격훈련도 작용했다. 육군이 과거 입사호 안에서 하는 조준 사격훈련을 벗어나 입사호 밖에서 실시하는 전진사격까지 훈련과정에 포함시키면서 병사가 쏜 총알이 높이 14m의 방호벽(사선 지표면 기준 높이는 28m)을 넘어가 버린 것이다. 이는 부지 확보 등의 어려움으로 애초부터 육군 표준훈련장 설치 지침을 지키기 어렵게 만들어진 상당수 사격장들이 다양한 방식의 사격을 감당하기 어려운 구조임을 알 수 있는 사례다.
전군 훈련장 현황을 보면 사격장은 총 1522곳(육군 1379곳, 해군·해병대 53곳, 공군 60곳, 국방부 직할 20곳)이다. 훈련장은 총 1655곳(육군 1321곳, 해군·해병대 182곳, 공군 114곳, 국방부 직할 38곳)이다. 이 가운데 군 사격장 115곳이 1일 현재 사용중지 상태다. 53곳은 폐쇄 대상이다. 국방부는 군 훈련장도 2030년까지 권역화를 명분으로 385개로 줄일 방침이다. 권역 단위로 통합해 효율성과 안전성을 높이겠다는 목적에서다. 육군은 2024년까지 전국 시·군별 대대급 훈련장 200여개를 연대급 40개로 개편할 계획이다. 군 당국은 이달 중으로 군 사격장·훈련장 대책을 공식 발표할 예정이다.
군 당국은 사격장의 경우 미8군 험프리스 기지 사격장을 벤치마킹해 올해 ‘차단벽 구조 사격장’을 시범 설치할 계획이다. 상당수 실외사격장의 실내사격장 전환도 고려하고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사격할 장소가 부족해지는 문제의 해결책은 될 수 없어 고민하고 있다.
훈련장 문제도 마찬가지다. 육군 훈련장 대부분은 규모가 작아 중대급 이하 보병부대 전술훈련만 가능하다. 대대급 부대를 대상으로 1주일씩 진행하는 공지합동훈련용 훈련장이 부족하다. 이 때문에 연초 일정을 짤 때 통상 1개 사단에 2차례 훈련장 이용권을 준다. 한 해에 1개 사단 예하 9개 대대 중 2개 대대만 훈련을 할 수 있다는 의미다. 산술적으로는 대대급 부대의 경우 4년6개월에 한 차례 정도만 공지합동훈련을 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게다가 육군 보병과 포병, 기갑 부대들이 한꺼번에 참여하고 공군 전력의 실사격까지 가능한 공지합동훈련장은 전국에 경기 포천의 승진훈련장 한 곳뿐이다. 이곳은 미군도 사용해야 하고, 겨울철 정비 등으로 훈련을 할 수 없는 8주 정도를 제외하면 1년 내내 훈련 일정이 가득 차 있다. 야전에서 근무하는 육군의 한 영관급 간부는 “현대전이 입체전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훈련 환경”이라고 지적했다.
장거리 포병 사격훈련은 사격하는 진지와 포탄이 떨어지는 표적지역까지의 거리가 20~30㎞는 돼야 제대로 이뤄질 수 있다. 하지만 지상 작전을 하는 육군과 해병대가 130㎜ 다연장 로켓탄과 K9 자주포를 20㎞ 이상 발사할 수 있는 곳은 군의 30여개 포사격장 가운데 강원 고성군 야촌리와 송지호 해변 일대, 백령도 등 3곳뿐이다. 그러다보니 사격훈련을 하기 위해 도심지를 지나 150㎞가 넘는 거리를 이동하기도 한다. 사격훈련에 따른 소음 민원 때문에 한 해 사격계획을 대폭 줄이는 경우도 허다하다.
육군의 사단 및 연대급 훈련은 넓은 지역이 필요하지만 한국 육군의 경우 대대급 훈련장 규모가 최대다. 사단 및 연대급 훈련을 부대 밖에서 실시하는 이유다. 국내에선 전차부대가 사격하면서 기동훈련을 하기도 쉽지 않다.
공군의 경우 대규모 공대지 실사격이 가능한 훈련장은 전북 군산에서 63㎞ 떨어진 직도 해상 사격장과 강원 영월군 상동의 필승사격장뿐이다. 대도시 인근 공군기지에서는 오후 10시가 넘으면 훈련 출격이 어렵다. 소음 민원 때문이다. 게다가 한·미 당국이 양해각서(MOU) 체결 등을 통해 직도사격장은 ‘한국군 80%, 미군 20% 사용’, 강원 필승사격장은 ‘한국군과 미군이 각각 50% 사용’ 등으로 합의해 미군과 훈련 일정을 또 조정해야 한다.
■ 갈등 관리 과제가 돼버린 사격·훈련장
군 당국은 사격장과 훈련장을 갈등 관리 과제로 정해 관리하고 있다. 훈련을 어떻게 더 효과적으로 실시할 수 있을 것인가에 집중하기보다는 사격장이나 훈련장 인근 지역 주민과의 갈등을 줄이는 데 신경쓰고 있다는 의미다.
포사격장 인근 주민들은 포사격으로 인한 소음과 이로 인한 축산농가의 피해, 산양과 사향노루 서식지 파괴 등을 내세우며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육군은 이를 무마하기 위해 농사철 대민지원이나 지역 농산물 구입 등 주민 친화활동에 적극 나서고 있지만 효과는 신통치 않다.
훈련장 문제를 놓고 민·관·군 협의체가 구성된 곳도 있다. 육군 20사단은 지난해 9월 지자체 및 주민들과 함께 양평종합훈련장(용문산 사격장) 갈등 관리 협의체를 구성했다. 이 훈련장은 기계화보병사단인 20사단이 1982년부터 36년간 전차 및 장갑차 훈련장으로 사용하고 있는 곳이다. 하지만 각종 사격훈련으로 인한 도비탄 사고와 지속되는 굉음, 산불 발생 등을 이유로 양평군민들이 폐쇄를 요구해 왔다.
양구 팔랑리에서는 포사격장 표적지를 최대 21㎞까지 포사격이 가능한 민통선 이북지역인 방산면 천미리로 옮기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천미리 포사격장 표적지 이전사업은 2012년 4월 양구군 동면 대암산 포사격장 표적지에서 1.5㎞ 떨어진 팔랑리 마을 7곳에 155㎜ 포탄 일부가 떨어지자 주민들이 포사격장 표적지 이전을 요구하면서 본격 추진됐다.
육군 기갑부대 전차는 새벽에 궤도차량 적재가 가능한 트레일러로 경기 연천군의 다락대훈련장이나 임진강 인근 유역으로 이동하는 경우가 많다. 훈련장비 이동을 놓고 소음과 교통체증으로 항의하는 지역민들의 반발 때문이다. 이 역시 갈등 관리 차원의 한 방안이다.
군 당국은 갈수록 열악해지는 훈련 환경을 벗어나기 위해 2005년 해상에 인공섬이나 해상 플랜트를 조성해 공대지사격장으로, 러시아의 훈련장을 임차해 기계화부대용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한 적도 있다. 특히 기계화부대 훈련장 임차는 러시아 측 반응이 나쁘진 않았지만, 50t 무게의 전차 등 중장비 이송이 어려운 데다 북한과 중국은 물론 미국까지 자극할 수 있다는 난제 등으로 이뤄지지 못했다. 러시아는 극동지역을 맡고 있는 극동군관구사령부에만 가로 50×세로 30㎞ 규모의 초대형 군사훈련장이 세 곳이나 있다.
전군의 사격장과 훈련장 대부분은 ‘소음과 먼지, 유탄 등과 관련한 민원’에 시달리고 있다. 일부 지자체는 지역 개발을 위해 사격장과 훈련장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이를 의식하다보니 군의 훈련량 축소가 비일비재한 일이 돼버렸다.
훈련장 통합은 예비군으로까지 불똥이 튀고 있다. 훈련장을 통합하면서 이전보다 훈련장이 20∼30㎞ 멀어져 대중교통으로 왕복 4시간이 걸리는 곳도 생겨났다. 올해부터 충북의 청주·진천·음성·증평·괴산 5개 시·군 예비군들은 괴산 청안 통합 예비군 훈련장에서 훈련을 받고 있다.
또 훈련장 민원 대책 등에 고심하다보니 현대전에서 중요한 도심지 전투훈련장 마련 등은 후순위로 밀리고 있다. 도심지 전투훈련장은 대규모 게릴라전이나 시가지 전투 준비에 필수적이다. 일각에서는 미국 본토 원정훈련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해병대 공지훈련장’ 면적은 서울시의 약 4배에 달하는 2411㎢로, 안에 시가지 전투를 위한 모의 도심지까지 조성돼 있다. 호주 육군은 2009년 이곳까지 와서 시가지 전투 훈련을 실시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