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파병 줄타기하는 정부의 ‘고뇌’

김유진·정희완 기자

“미국 입장과 반드시 같을 수 없어…이란과도 오랜 관계”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9일 미국의 호르무즈 해협 파병 요구에 대해 “미국 입장과 우리 입장이 반드시 같을 수 없다”고 밝혔다. 미국과 이란 간 긴장 고조로 호르무즈 파병 가능성에 대해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파병 신중론을 밝힌 것이다.

외교부 장관, 국회 외통위서
긴박한 정세 속 ‘신중한 입장’

14일 미국서 폼페이오 회담
‘파병 문제’ 주요 이슈 될 듯
북핵·남북 경협 연계 관측도

강 장관은 이날 긴급 소집된 국회 외교통상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미국이 동맹국으로서 파병을 강력하게 주장하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박주선 바른미래당 의원의 질의에 “정세 분석이나 중동 지역 나라들과의 양자 관계를 고려할 때 미국 입장과 우리 입장이 반드시 같을 수 없다”며 “이란과도 오랜 경제 관계를 맺어왔고, 지금도 인도지원이나 교육 같은 건 지속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 장관은 ‘미국에 파병을 약속한 것 아니냐’고 의원들이 질의하자 “(파병 약속은) 아니다” “선박 안전과 국민 보호를 최우선으로 고려하면서 여러 제반 사항을 검토하고 있다”고 답했다.

청와대는 이날 오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열고 미국·이란 간 갈등이 이어지는 상황과 관련한 대응방안을 논의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의 호르무즈 파병 요구는 오는 14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강 장관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간 회담에서 본격 제기될 것으로 예상된다. 강 장관과 폼페이오 장관의 회동은 지난해 9월 뉴욕 유엔총회를 계기로 이뤄진 한·미 정상회담 이후 4개월 만이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정착을 위한 공조 방안, 다음주 재개될 11차 한·미 방위비 분담금 특별협정(SMA) 협상 등 한·미 현안을 논의하는 자리다.

그러나 회담에서는 최근 중동 정세 급변으로 초미의 관심사가 된 호르무즈 파병 문제가 주로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같은 기간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일본 외무상이 샌프란시스코를 방문, 한·미·일 3국 외교장관이 회동하는 방안이 최종 조율되고 있다. 미국이 동맹국인 일본과 한국에 이란에 대한 공동 대응전선을 촉구하는 모습이 연출되는 셈이다. 앞서 일본은 지난달 27일 각의에서 호르무즈 해협 주변에 독자적으로 해상자위대 호위함 1척과 P3C 초계기를 포함해 260명 규모를 보내기로 의결했다.

지난해 7월부터 미국으로부터 호르무즈 해협 민간선박 호위연합체 참여 요청을 받아온 정부는 아덴만 해역에서 활동 중인 청해부대의 작전 범위를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해 왔다. 정부로서는 한·미동맹과 북핵 문제 공조를 고려하면 미국의 파병 요구를 외면하기 어렵지만, 미국과 이란의 군사적 충돌 우려가 커지면서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신년사에서 남북관계 진전 의지를 밝힌 문재인 대통령이 파병 결정과 관련, 금강산관광·개성공단 재개나 남북 철도연결 등에 대해 미국에 협조를 부탁할 가능성도 제기한다. 노무현 정부도 이라크 전쟁 파병을 결정하면서 조지 W 부시 행정부에 북핵 문제 협조를 요청한 바 있다.

정부는 2004년 헌법재판소가 ‘일반 사병 이라크파병 위헌확인’ 헌법소원 각하 결정문에서 제시한 해외 파병에 관한 네 가지 기준을 토대로 파병 여부를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헌재는 해외 파병은 “궁극적으로 국민 내지 국익에 영향을 미치는 복잡하고도 중요한 문제”라며 파견 군인의 생명과 신체 안전,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지위와 역할, 동맹국과의 관계, 국가안보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부 관계자는 “최종 유권해석 기관인 헌재가 제시한 조건이라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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