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군

청해부대 '백신 변명’과 참모총장의 '엄지 척!’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특수임무단이 지난 19일 출국에 앞서 서욱 국방장관과 부석종 해군참모총장, 박인호 공군참모총장 등을 가운데 놓고 ‘화이팅’ 포즈를 취하고 있다. 공군은 이 사진을 홈페이지에 게재했다가 20일 내렸다.

특수임무단이 지난 19일 출국에 앞서 서욱 국방장관과 부석종 해군참모총장, 박인호 공군참모총장 등을 가운데 놓고 ‘화이팅’ 포즈를 취하고 있다. 공군은 이 사진을 홈페이지에 게재했다가 20일 내렸다.

“이봐, 해 봤어? 해 보기는 해 봤냐구, 일단 해 보고 이야기 해!” “해 보지도 않은 놈이 가타부타 말이 많아”.

현대그룹 창업주 정주영 회장이 자주 사용했던 말이다. 정 회장의 말은 해보면 기회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해 보기도 전에 미리 핑계를 만드는 것에 대한 경고다.

세상에 사람들이 모르는 변수들이 너무도 많다. 하물며 군사작전은 더욱 그렇다. 군사작전은 오로지 경험으로만 습득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

군이 청해부대(4400t급 문무대왕함) 코로나19 집단감염에 대해 핑계 찾기에 급급하다. 국방부는 사태가 터지자 코로나19 집단감염을 막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했다면서 언론 보도에 유감부터 표명했다. 서욱 국방장관은 지난 20일 백신 접종 노력이 부족했다고 사과했지만, 군 당국은 그때까지도 변명에 급급했다.

국방부는 청해부대의 5개월간 ‘노백신’ 상태 비판에 대해 “지난 2월 백신과 관련해 질병관리청에 구두 협의했고, 종합적으로 고려해 해외 파병 부대는 백신 접종이 어렵다고 판단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청해부대의 백신 미접종 배경이 질병관리청에 있다는 투다.

정주영 회장의 말을 빌리면, 국방부는 설사 질병관리청이 청해부대 백신 접종이 어렵다고 했더라도, 접종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았어야 했다. 국방부의 국회 보고 등을 종합하면 합참은 청해부대가 지난 2월 출항한 이후 국방부에 청해부대 백신 접종과 관련해 한 번도 보고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군 당국은 해 보지도 않고, 언론 브리핑에서 질병관리청 핑계부터 댔다. 게다가 백신 접종을 둘러싼 국방부와 질병관리청의 입장은 엇갈리고 있다. 서로에게 책임을 돌리는 식이다.

군 당국은 청해부대가 국내 코로나19 백신 접종에 앞서 출항했기 때문에 백신 접종이 불가능했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이채익 국민의힘 의원은 20일 국방부 등에서 제출받은 문건을 분석한 결과, 군 당국은 청해부대 백신 접종 계획을 아예 수립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 의원은 “군이 그간 밝혀온 각종 설명도 사후에 급조한 거짓말 핑계일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앞서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강대식 국민의힘 의원은 “정부가 제출한 청해부대 파견연장 동의안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가 근거로 돼 있다”며 “청해부대는 유엔에 백신 접종을 요청할 권리가 있고, 명분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국방부는 “청해부대는 유엔 안보리 결의안에 근거해 우리 결정으로 파병됐으나 유엔이 아닌 다국적군사령부에 소속돼 파병됐다”며 “유엔의 코로나19 백신 접종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국방부는 유엔에 백신 접종을 요청조차 하지 않았다. 해보지도 않고 안됐을 것이라는 입장을 내놓은 것이다.

청해부대는 또 2주~2.5주에 한 번씩 유류와 식량을 적재하려고 항구에 들어간다. 이때 청해부대가 속한 다국적군 사령부를 통해서도 백신을 지원받을 수 있다. 그러나 군은 요청하지 않았다.

군 당국은 또 냉동보관 등 백신의 까다로운 유통 조건 때문에 문무대왕함 함상으로 가져갈 수 없었다고 항변한다. 이 역시 냉동이나 냉장 보관 백신을 군용기로 청해부대로 수송해 접종하는 일도 법적으로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해군 함정은 국제법상 자국 영토처럼 인정받는다. 국내 백신을 문무대왕함으로 수송해 현지 접종해도 국제법으론 문제가 되지 않는다.

청해부대 34진 장병들이 20일 성남 서울공항에 내리고 있다. 국방부 제공

청해부대 34진 장병들이 20일 성남 서울공항에 내리고 있다. 국방부 제공

군 당국은 접종 후 이상 반응에 대한 응급 처치가 어려워 백신 접종이 어렵다고 주장했다. 문무대왕함에는 백신을 접종할 수 있는 군의관이 승선해 있다. 각종 진단 장비(X선·초음파검사·피검사·소변검사·심전도 등)도 구비돼 있다. 항구에 입항한 상태에서 접종한 뒤 이상 반응을 살피다 인근 병원으로 후송할 수 있다. 해상 작전 중에는 헬기로 긴급 후송도 가능하다.

마지막 대안도 있었다. 파병 부대 임무를 단축해 조기에 교대하는 방안이다. 이에 대해서도 군은 파병 사전 준비 등으로 일정상 어렵다고 강변했다.

어찌됐든 군 당국이 군내 백신 접종이 시작된 지난 4월 이후 현재까지 해외 파병 부대로 보낸 백신은 0개였다. 해외 백신 접종은 불편하고 까다로운 절차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기피한 것이다. 청해부대의 코로나19 집단 감염은 ‘행정 편의주의’에 물든 군 당국이 만든 ‘인재’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대신 군 당국은 평소에 하던 습관은 버리지 못했다. 군 수뇌부는 지난 19일 청해부대 후송을 위한 특수임무단을 파견하면서 ‘청해부대 해외 공수’ 플래카드를 내걸고 마치 해외여행 떠나는 단체관광객들처럼 기념 사진을 찍었다. 서욱 국방장관과 부석종 해군참모총장, 박인호 공군참모총장을 가운데 놓고 평소 하던대로 ‘주먹 쥐고’ 화이팅 포즈를 취했다. 공군은 이 사진을 공식 홈페이지의 참모총장 동정 코너에 내걸었다. 이후 “분위기 파악 못한다‘는 비난이 일자 사진을 내렸다. 박 공군총장은 청해부대 34진을 태운 공군의 다목적 공중급유수송기가 지난 21일 성남공항에 내리자 서욱 국방장관 옆에서 ‘엄지 척’을 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이번 청해부대 철수 사태를 대하는 태도가 각 군마다 확연히 다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청해부대 34진 장교 33명 중 함장과 부함장을 포함한 19명이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았다. 청해부대는 지난 15일 코로나19 확진자가 6명 나오자 유증상자 80여 명은 함내에 코호트(동일집단) 격리했지만 나흘 만에 방역 저지선이 무너졌다. 국방부는 청해부대의 코로나19 감염 백서를 만들어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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