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윤선희 세계식량계획 한국사무소장 “WFP, 국경 열리는 즉시 북한 사업 재개할 것”읽음

김유진 기자

“북한 지원 매우 중요한 임무” 국경봉쇄로 북한 식량난 2019년 이후 심화 우려

한·미 대북 인도지원 논의엔 “인도적 수요와 정보에 기반한 모든 인도지원 지지…모니터링이 핵심”

탈레반 장악 아프간 10월말이 ‘시한’ “식량안보-평화 안정 직결”

“(북한의) 국경 봉쇄로 그동안 세계식량계획이 추진해오던 대북 사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지만, 국경이 다시 열리는 즉시 우리 기구는 북한에서의 활동을 재개할 것입니다.”

윤선희 세계식량계획(WFP) 신임 한국사무소장은 “WFP는 한국 정부와 마찬가지로 북한에 대한 지원을 매우 중요한 임무로 여긴다”면서 “국경 통제 완화 등 여건이 나아지는 대로 북한 관련 사업을 곧바로 재개할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1월부터 북한이 코로나19 확산 우려로 국경을 전면 차단하면서 유엔 등 국제기구와 구호단체들의 활동은 사실상 정지됐다. 외교단과 국제기구 직원들의 연이은 ‘엑소더스’에도 마지막까지 평양에 남아있던 WFP 북한 사무소장도 결국 지난 3월 철수해야 했다.

그럼에도 지난 24일 서울대 관악캠퍼스 내 사무실에서 만난 윤 소장은 “WFP 평양사무소는 문을 닫지 않았다”고 힘주어 말했다. 유엔 산하 식량원조기구 WFP의 본부가 있는 이탈리아 로마나 중국 베이징 등에서 직원들이 원격으로 업무를 보고 있고, 평양의 사무실에선 북한 현지 직원들이 계속 근무하고 있다는 것이다.

팬데믹 위기 이전부터 북한은 외부로부터 식량 지원이 필요한 나라에 속했다. 그런데 20개월 넘게 이어진 국경 폐쇄 조치, 가뭄·홍수 등 자연재해로 인한 작황 피해까지 겹치면서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도 북한을 식량부족국으로 재지정했다.

윤 소장은 “대면 설문 등 현장 데이터 부족으로 북한 식량 안보 상황을 정확하게 진단하기는 어렵다”고 전제하면서도 2019년 이후 북한 식량난이 심화됐을 것으로 짚었다. WFP가 북한 내 수혜자들을 상대로 원격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충분한 식량 섭취를 하는 비율은 2020년 22%에서 올해 1%로 떨어졌다. 반면 식사 횟수와 식단의 다양성 등의 면에서 부족하게 섭취하는 비율은 2020년 38%에서 올해 69%로 늘었다.

그는 “국경 차단 조치가 식품 수입에 전반적으로 영향을 주면서 식량 부족과 식품가격 급등 현상을 부추겼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도 제76차 유엔총회에 제출한 ‘북한 인권 상황 보고서’에서 국경 봉쇄·이동 제한 등 북한 당국의 코로나19 대응 조치가 식량권을 포함해 인권 상황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한국 정부가 미국과의 협의에 속도를 내고 있는 대북 인도지원에 관한 세계식량계획의 입장을 물었다. 윤 소장은 “WFP는 정치적 상황이 아닌 인도주의 가치에 뿌리를 두고 활동한다”면서 “현장의 인도적 수요와 정확한 정보에 기반한 모든 인도지원을 지지하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특히 철저한 모니터링을 강조했다. 그는 “모니터링은 모든 인도적 지원사업의 핵심 요소이자 조건”이라며 “코로나19 상황을 고려해 WFP는 비대면 모니터링 역량 강화에 집중하고 있고, 전문성도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수혜자인 북한 주민들과 전화 설문 등으로 직접 소통하는 것이 인도지원의 효과성, 책임성을 보장하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윤선희 세계식량계획(WFP) 한국사무소장은 24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북한 지원은 WFP에게 매우 중요한 임무”라며 “북한의 국경 봉쇄 조치가 완화되는대로 북한 관련 사업을 곧바로 재개할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다”고 강조했다. 박민규 선임기자

윤선희 세계식량계획(WFP) 한국사무소장은 24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북한 지원은 WFP에게 매우 중요한 임무”라며 “북한의 국경 봉쇄 조치가 완화되는대로 북한 관련 사업을 곧바로 재개할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다”고 강조했다. 박민규 선임기자

지난해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WFP는 “백신이 나오기까지는 식량이 최고의 백신”(데이비드 비즐리 사무총장)이라고 역설해왔다. 지구촌 부유한 나라들이 부스터샷 접종 논의까지 벌이고 있지만, 여전히 식량이 곧 백신인 나라들이 훨씬 많다. 윤 소장도 “코로나19, 기후변화, 분쟁 등 삼중고로 기아 문제가 더욱 심각해졌다”고 우려했다. WFP는 올해 역대 가장 많은 1억3900만명을 지원하겠다는 방침이지만, 모금액 목표치(150억달러)에는 아직 도달하지 못했다.

탈레반이 장악한 아프가니스탄을 비롯해 에티오피아, 아이티 등 분쟁 지역에서 일촉즉발의 식량 안보 위기에 직면한 나라들도 늘고 있다. 윤 소장은 “식량 안보와 평화 안정은 직결되는 문제”라며 “어떤 인도적 위기는 느리게 찾아온다. 불행히도 위기가 위기가 되어야만 모금이 도착하는데, 그 땐 이미 늦었을 때가 많다”고 말했다.

특히 아프간은 산악 지형과 혹한으로 10월말까지 각 지방에 지원할 식량이 전달되지 않으면 제 때 주민들에게 전달할 수 없다고 했다. 윤 소장은 “WFP는 탈레반 장악 이전부터 현재까지 아프간 각지에서 계속 활동하고 있지만 가장 큰 위기는 펀딩”이라며 “인도주의 원칙에 따라 우리가 도와야 하는 사람들에 접근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탈레반이든 누구와도 일한다”고 전했다.

지난 7월 한국에 부임한 윤 소장이 언론과 인터뷰한 것은 처음이다. 그는 한국사무소장 임기 동안 “공공, 민간 등 한국 사회 모든 부문에서 공적개발원조(ODA)나 유엔에서의 기여에 관한 인식을 넓히는 데 기여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유엔 가입 30주년을 맞은 한국이 다가올 30년 동안은 경제, 기술 부문 역량을 바탕으로 기후변화나 기아 등 글로벌 문제에서 혁신적 접근을 하기를 기대한다”고도 했다.

여섯살 때 가족과 함께 말라위로 이주해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학부·대학원까지 마친 윤 소장은 2002년 맥킨지코리아 경영컨설턴트라는 커리어를 뒤로 하고 국제기구초급전문가(JPO)로 유엔에 입문했다. 고향과도 같은 아프리카에 미력이나마 도움을 주고 싶단 마음으로 선택한 세계식량계획은 평생의 직장이자 소명이 됐다.

그는 “2003년 로마 본부에서 한국인 직원은 저 혼자였다”며 “지금은 세계 구석구석에 한국의 지원과 활동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가 됐으니 한국인으로서 자긍심을 느끼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제가 국제무대에서 얻은 기회를 많은 한국 청년들도 누릴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더 많은 한국인들이 유엔에서 커리어를 쌓도록 돕고 싶다”고 덧붙였다.

윤선희 세계식량계획(WFP) 신임 한국사무소장은 24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코로나19, 기후변화, 분쟁 등 삼중고로 글로벌 기아 문제가 더욱 심각해졌다”며 한국과 국제사회의 관심을 호소했다. 박민규 선임기자

윤선희 세계식량계획(WFP) 신임 한국사무소장은 24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코로나19, 기후변화, 분쟁 등 삼중고로 글로벌 기아 문제가 더욱 심각해졌다”며 한국과 국제사회의 관심을 호소했다. 박민규 선임기자


경향티비 배너
Today`s HOT
젖소 복장으로 시위하는 동물보호단체 회원 독일 고속도로에서 전복된 버스 아르헨티나 성모 기리는 종교 행렬 크로아티아에 전시된 초대형 부활절 달걀
훈련 지시하는 황선홍 임시 감독 불덩이 터지는 가자지구 라파
라마단 성월에 죽 나눠주는 봉사자들 코코넛 따는 원숭이 노동 착취 반대 시위
선박 충돌로 무너진 미국 볼티모어 다리 이스라엘 인질 석방 촉구하는 사람들 이강인·손흥민 합작골로 태국 3-0 완승 모스크바 테러 희생자 애도하는 시민들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