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 수위 넘은 종전선언 밀어붙이기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기자메모]위험 수위 넘은 종전선언 밀어붙이기

“종전선언은 비핵화와 평화를 위한 대화의 입구다. 그리고 무엇보다 전쟁을 끝내고 평화프로세스를 시작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옳다.”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이 지난 15일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한·미전략포럼 기조연설에서 한 말이다. 평화를 위한 노력이 정부의 책무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 언급은 논리 비약일 뿐 아니라 매우 위험한 주장이다.

이 발언이 왜 문제인지 논하기 앞서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종전선언에 대한 반대는 종전선언 자체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문재인 정부가 내세우는 ‘종전선언 입구론’에 대한 반대라는 점이다. 종전선언을 먼저 해놓고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 모르는 비핵화·평화협정 체결 협상을 시작했을 때 자칫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다. 현실은 여전히 정전체제에 머물고 있는데 각국 정상이 이미 전쟁이 끝났음을 선언한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커다란 혼란이 올 수 있다는 지적은 충분히 타당하고 경청할 만한 내용이다. 미국이 종전선언에 미온적인 것도 종전선언 자체에 반대하기 때문이 아니라 종전선언 입구론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다.

“종전선언은 도덕적으로 옳다”는 최 차관의 주장은 ‘종전선언에 반대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옳지 않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종전선언 입구론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의견을 ‘종전선언 자체에 대한 반대’로 호도하고 있다. 또한 종전선언 입구론에 대한 비판에 ‘도덕적으로 옳지 않은 것’이라는 낙인을 찍음으로써 종전선언에 대한 논란을 ‘선과 악의 구도’로 몰고 가려는 의도도 보인다. 종전선언 논란은 한반도평화를 위해 무엇이 긴요한 것인지 토론하고 설득해서 국민과 국제사회의 지지를 구하는 문제이지 선과 악을 가려내기 위한 싸움이 아니다.

더불어민주당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지난 12일 종전선언에 부정적 입장을 밝힌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를 겨냥해 “대한민국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의지가 없다”고 단정하는 성명을 낸 것은 최 차관 발언과 일맥상통한다. 이런 식의 덮어씌우기는 ‘종전선언에 반대하면 반(反)평화 세력’이라는 편가르기와 다를 바 없다. 최 차관 발언과 민주당 외통위원들의 성명은 문재인 정부의 무리한 종전선언 추진이 한반도 평화에 대한 열망이 아닌 정치적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한 매우 위험한 주장이다. 선거에 이용하기 위해 종전선언을 꺼냈다는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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