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 외교’ 내세웠지만···중국 신장위구르 인권성명 불참한 윤석열 정부

유신모 기자
중국의 인권탄압을 규탄하는 터키 위구르족  시위.  AP연합뉴스

중국의 인권탄압을 규탄하는 터키 위구르족 시위. AP연합뉴스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유엔총회 제3위원회에서 중국 신장·위구르 지역 인권 탄압을 규탄하는 성명이 채택됐다. 미국·일본·영국·프랑스·호주·이스라엘 등 50개국이 참여했다. 그러나 “보편적 가치와 규범을 중시하는 국정기조를 바탕으로 국제사회의 인권 논의에 적극 참여하겠다”고 천명했던 한국은 이 성명에 참여하지 않았다.

중국이 가진 경제·안보적 영향력을 감안하면 정부가 중국 인권 규탄성명에 이름을 올리기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문제는 윤석열 정부가 대외정책 기조로 ‘가치외교’를 표방하고 있다는 것이다. 선진국 반열에 올라선 한국이 자유·민주주의·인권 등의 가치를 지향하는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다. 그러나 국제무대에서 이를 행동으로 뒷받침하기 어렵거나 국익과 충돌을 일으키는 사안이 매우 많다. 정부가 이번 중국 인권규탄 성명에 참여하지 못한 것은 ‘가치 외교’를 전면에 내거는 것이 자칫 자가당착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 사례다.

실용과 가치의 균형잡기

윤석열 정부가 ‘가치외교’를 표방한 것은 신냉전 기류가 뚜렷해지는 국제정세 속에서 미국과 뜻을 같이 하는 나라로 분명한 좌표를 세우기 위한 목적이 컸다. 이전 정부와의 차별화를 부각시키려는 의도도 있었다. 지나치게 가치 지향적인 레토릭을 강조하면 실용적이지 못하다는 지적에 대해 정부는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를 일관되게 주장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국익”(박진 외교부장관 취임 기자회견)이라고 밝힌 바 있다.

미국과 중·러가 대치하는 현재의 국제질서에서 한국이 ‘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미국과 협력하고 손을 잡는 것은 자연스러운 선택이다. 하지만 미국과 중국 역시 자국의 이익 극대화를 뚜렷하게 추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이 ‘가치’를 외교 전면에 내세우면 전략적 운신의 폭이 좁아진다.

윤석열 정부가 외교 무대의 실전에서 가치 외교의 원칙을 지키지 못한 사례는 이번 중국 인권규탄 성명 외에도 여러 번 있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지원은 한국의 외교기조에 비춰 당연히 해야할 일이지만, 러시아를 의식해 하지 못하고 있다.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 방한 때도 중국을 의식해 말과 다른 행동을 했다. 보편적 가치를 지향하면서 동시에 국익을 지키기 위한 자국 중심성을 일관되게 유지하는데 실패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사례들이다. 현재 국제정세상 이 같은 일은 앞으로도 계속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윤석열 정부의 가치외교는 국내외적으로 지지와 인정을 받기 점점 어려워질 가능성이 있다. 이를 막으려면 ‘말을 줄이고 행동을 늘리는’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유엔총회 일반토의 모습. 연합뉴스

유엔총회 일반토의 모습. 연합뉴스

국제적 신뢰 우려, 북한인권 진정성에도 의구심

이번 중국인권 규탄성명에 동참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외교부는 “여러 가지 제반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인권의 가치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 고려가 작용한 결과라는 의미다. 문재인 정부가 북한인권결의 공동제안에 참여하지 않았던 것과 같은 이유로 윤석열 정부는 중국 인권비판에 동참하지 않은 셈이다.

강대국의 이해관계나 심대한 국익이 걸린 문제에서는 사안별 접근을 하면서 대외적으로는 ‘가치 중심의 외교’라는 문패를 걸고 있으면 말과 행동 사이의 괴리가 커져 국제적 신뢰를 받기 어렵게 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전 정부의 한 관료는 “한국은 외교적으로 감안해야 할 요소들이 많은 나라”라며 “이번 중국 인권문제에서 보듯이 외교적 수사를 너무 앞세우면 정책의 일관성이라는 측면에서 부담을 가질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다른 전직 외교관은 “이번 일이 만약 중국의 압박에 영향을 받은 것이라면 매우 안좋은 선례를 남긴 것”이라고 우려했다.

중국의 인권 문제에 침묵함으로써 정부가 유엔과 국제사회에서 북한 인권에 강하게 문제제기를 한 것도 진정성을 의심받을 수 있다. 정부는 “성명에 불참했다고 해서 가치를 추구하는 정부의 기조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인류보편의 가치인 인권문제를 적용하는 기준이 이중적이라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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