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익수 징계처분서로 본 ‘민주화 후 첫 장군 강등’ 전말

이효상 기자

“늦게 안 것도 주의의무 소홀” 직무유기 관련 3개 혐의 인정

고(故) 이예람 중사 사망 사건의 부실 수사에 연루됐다는 비판을 받아온 전익수 공군본부 법무실장이 지난 8월 24일 서울 서대문구 특별검사 사무실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 한수빈 기자

고(故) 이예람 중사 사망 사건의 부실 수사에 연루됐다는 비판을 받아온 전익수 공군본부 법무실장이 지난 8월 24일 서울 서대문구 특별검사 사무실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 한수빈 기자

[주간경향] 고(故) 이예람 중사 사건 수사에 개입한 혐의로 기소된 전익수 공군본부 법무실장(52)이 준장에서 대령으로 강등되는 중징계를 받았다. 장군의 계급 강등은 민주화 이후 처음이다.

전 실장은 이예람 중사 사건 부실수사의 책임자라는 의혹을 받아왔다. 공군 20전투비행단 소속이던 이 중사는 지난해 3월 2일 선임 부사관에게 성추행을 당한 뒤 피해사실을 신고했지만, 사건 처리가 지연되고 2차 가해가 계속되자 지난해 5월 21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사건이 안타까움을 더하는 것은 이 중사의 신고 이후 두 달 넘게 잘못을 바로잡을 시간이 있었음에도 군이 이를 방치했기 때문이다. 이전부터 군 성폭력 사건이 반복돼 가해자를 처벌하고 피해자를 지원하는 각종 지침을 마련했지만, 군은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전 실장은 사건 발생 당시 공군 법무실장으로 있으면서 군검찰 운영을 총괄했다.

국방부는 지난 11월 18일 군인·군무원 징계위원회(이하 징계위)를 열고 전 실장에 대한 징계를 의결했다. 주간경향은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징계의결기록을 확보했다. 전 실장은 모두 6가지 징계혐의로 징계위에 회부됐다. 이중 4가지 혐의사실이 인정됐다. 한가지 혐의를 제외하고는 모두 공군 법무실장으로서의 사건 지휘·감독 책임과 관련있다. 전 실장에게 형법상 직무유기 혐의를 묻지 않은 ‘이예람 중사 사망 사건 관련 특별검사(이하 안미영 특검팀)’의 수사결과와는 차이가 있는 셈이다. 지난 9월 안미영 특검팀은 자신을 수사하는 군검사에게 연락한 혐의로 전 실장을 기소하면서도, 전 실장이 이 중사의 사망 후에야 강제추행 사건을 인지했다고 보고 직무유기 혐의는 적용하지 않았다. 반면 징계위는 공군 법무실에 사건이 보고됐음에도 전 실장이 이를 뒤늦게 파악한 잘못이 있다고 봤다. 고의성이 없어 형사책임은 묻기 어렵더라도, 군 지휘관으로서 주의의무를 기울이지 않은 책임은 지울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업무 지침 바뀐 뒤에도 관행대로

공군 법무실이 사건 관련 최초보고를 받은 시점은 지난해 3월 8일이다. 공군 법무실 소속 검찰수사관이 전 실장에게 e메일로 이 사건 관련 참고보고를 보냈다. 이 보고에는 장 중사가 지난해 3월 2일 밤 11시쯤 회식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는 차에서 후배인 이 중사의 신체를 강제로 접촉한 사실 등이 담겼다. 직후 이 중사가 차에서 내려 숙소로 걸어가자 장 중사가 뒤따라갔다는 내용, 다음날 이 중사가 ‘3개월 이상의 정신과 치료가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고 청원휴가 중이라는 내용도 포함됐다. 하급자를 상대로 한 상급자의 성폭력 범죄가 발생했다는 사실, 피해자가 받은 정신적 충격, 범행 이후 피해자를 뒤쫓아간 가해자의 태도 등이 담겨 있었지만 전 실장은 아무런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

전 실장은 징계위에서 “(참고보고가 담긴) e메일이 송부된 것은 맞지만 해당 e메일을 열어봤을 수도 있고, 바빠서 열어보지 못하고 시간이 지난 후 자동 삭제됐을 수도 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또 법무실장이 단순 참고보고까지 다 파악할 수 없고, 참고보고만으로 법무실장에게 조치의무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라는 취지의 항변도 했다.

징계위는 “보고된 내용의 중대성 및 전 실장의 군 경험 등에 비춰볼 때 충분한 주의의무를 기울이지 않았다는 점이 인정된다”며 전 실장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징계위는 전 실장의 무대응이 국방부 훈령에도 위배된다고 봤다. 국방부 부대관리훈령은 성폭력 사고를 국방부에 보고해야 할 의무가 있는 ‘중한 사고’로 분류한다. 또 공군검찰지침은 ‘성범죄는 구속수사를 원칙으로 한다’고 규정한다. 그럼에도 전 실장은 이 사건을 국방부에 보고하지 않았다. 이 사건을 담당하는 군검사에게 구속수사 검토 지시 등 관련 지휘를 하지도 않았다. 결국 구속을 피한 장 중사는 부대 내에 ‘강제추행이 없었는데도 거짓 고소를 당했다’는 소문을 퍼뜨리는 등 2차 가해 행위를 했다.

나아가 징계위는 바뀐 업무 지침에도 불구하고 전 실장이 종전의 업무 관행을 유지해 강제추행 사건에 대한 보고와 대응이 늦어졌다고 판단했다. 개정 공군검찰지침에 따르면 공군 소속 검찰수사관은 형사사건이 접수될 경우 24시간 이내에 공군본부에 e메일로 사건을 보고해야 한다. 실제로는 보고가 이뤄지지 않았다. 이 같은 상황은 전 실장이 공군 법무실장에 취임한 2018년 2월부터 계속됐다. 징계위는 “전 실장은 지침에 따른 사건 수리보고가 적시에 이뤄질 수 있도록 보고지침 준수를 지시·강조했어야 할 의무가 있다”며 “조치 미비로 20전투비행단 검찰에 사건이 송치된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고, 이로 인해 임관한 지 8개월밖에 지나지 않은 군검사가 구속 여부에 대한 적절한 검토를 하고 있는지 지휘감독을 하지 못했다”고 했다.

군검사에 수사정보 파악 시도 혐의도

이예람 중사가 사망한 이후 국방부 검찰단이 자신의 직무유기 혐의를 수사하자 군검사에게 연락해 수사정보를 파악하려 한 혐의도 인정됐다. 전 실장은 자신과 가까운 국방부 고등군사법원 사무관 A씨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서 ‘전익수의 지시 등 개입 여부에 대한 수사의 필요성’이 언급됐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수사검사 B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A사무관은 강제추행 가해자 장 중사의 영장실질심사 내용을 전 실장에게 전달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전 실장과 B검사 간 통화 녹취록을 보면, 전 실장은 “전혀 내가 지시한 사실이 없는데 거기 지시한 걸로 돼 있는 부분이 있나요?”, “그걸 그렇게 함부로 막 어떻게 기재하나 싶어가지고, 아니 담당검사니까 뭔 근거가 있으니까 거기다 기재를 했을 거 아니에요”라고 했다. 징계위는 이를 수사검사에 대한 위력 행사로 판단했다.

위원 3명으로 구성된 징계위는 무기명 투표 결과 강등 2표, 정직 3개월 1표로 전 실장의 1계급 강등을 의결했다. 전 실장은 지난 11월 28일 징계에 불복해 국방부에 항고장을 제출했다. 전 실장은 특검의 기소 당시에도 “담당 검사에게 사실 아닌 내용에 대해 항의했던 것이고, 당시 군검사는 육군 소속으로 피의자와 상하관계에 있지도 않았다”며 혐의 사실을 부인한 바 있다.

국방부의 늑장 징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전 실장에 대한 징계는 이예람 중사 사망 후 18개월 만에, 특검이 전 실장을 기소한 지 2개월 만에 이뤄졌다. 그사이 전 실장은 형사사건이나 징계 관련 업무에서는 배제됐지만, 그 밖의 업무는 정상적으로 수행했다. 권인숙 의원실이 국방부에서 최근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전 실장은 특검의 기소 이후에도 공군본부의 주간 상황보고 회의에 5차례, 정책현안토의에 4차례 참석하는 등 24차례나 대내외 회의 등 일정에 참석한 것으로 나타났다.

권인숙 의원은 “뒤늦게 부실수사의 최종책임자인 전익수 공군본부 법무실장에 대한 징계가 내려졌지만, 전 실장은 끝내 반성하지 않고 징계 불복 소송을 제기하며 고 이예람 중사와 유가족에게 다시 큰 상처를 남겼다. 법원이 국민의 법감정에 맞는 판결을 해줄 것으로 기대한다. 다시는 이런 비극적인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끝까지 관심을 갖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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