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상 단계부터 ‘미국 동조화’ 뚜렷…대중 외교 부담 커질 듯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윤석열 정부 ‘인도·태평양 전략’ 발표

인·태 전략 듣는 주한 중국대사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가 28일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인도·태평양 전략 설명회에서 박진 외교부 장관의 기조연설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인·태 전략 듣는 주한 중국대사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가 28일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인도·태평양 전략 설명회에서 박진 외교부 장관의 기조연설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안보 등 전략적 개념 포괄, 신남방 정책보다 범위·목적 확대
중국선 ‘중립’ 압박, 미국선 남중국해 등 역할 확대 요구할 듯
자유·민주주의 가치 강조에 아세안 외교 효율성 저하 우려도

정부가 28일 공개한 ‘자유·평화·번영의 인도·태평양 전략’은 한국 최초의 독자적 지역외교 전략이다. 정부는 인·태 전략 발표를 계기로 국제사회와 전략적 협력의 범위를 확대하고 ‘글로벌 중추 국가’로서의 역할을 증대할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특히 ‘규범과 규칙에 기반한 질서’를 강조해 자유·법치·인권 등의 가치에서 ‘뜻을 같이하는 국가’와 적극 협력하고 연대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정부의 인·태 전략은 구상 초기부터 미국과의 협력을 염두에 둔 것이다. 따라서 한국의 인·태 전략에서 가장 민감한 요소는 중국과의 관계 설정이다. 정부는 ‘포용·신뢰·호혜’의 원칙을 강조하면서 중국을 배제하기 위한 것이 아님을 강조하지만, 전반적인 내용은 미국의 정책에 적극 동조하고 있기 때문에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인 중국과의 외교를 어렵게 할 가능성이 크다.

구상 단계부터 ‘미국 동조화’ 뚜렷…대중 외교 부담 커질 듯

■신남방 정책과 차이점

윤석열 정부의 인·태 전략은 문재인 정부의 ‘신남방 정책’의 범위와 목적을 확대한 것이다. 신남방 정책은 ‘4강 외교’에서 벗어나기 위해 외교 다변화를 모색하기 위한 것이었다. 주로 동남아 국가들을 대상으로 경제 분야에 역량을 집중시켰다. 인도·태평양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고 미국의 인·태 전략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각자의 접근법에 기반을 둔” 개념을 유지했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의 인·태 전략에 대해 유보적 입장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신남방 정책과 미국의 인·태 전략의 접점을 모색하고 연계협력한다는 원칙을 내세웠음에도 실행에 옮겨진 조치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의 인·태 전략은 민주주의·인권의 가치와 규칙에 기반한 질서의 중요성을 미국과 공유하고 있다는 점을 선명히 했다는 점에서 확연히 다르다. 무역과 투자, 개발협력 등에 주로 집중됐던 기존 정책과 달리 안보·평화·민주주의 가치 등의 전략적 개념을 포함시킨 것도 큰 차이점이다.

■‘견제와 포용’ 중국 딜레마

인·태 지역은 전 세계 인구의 60% 이상,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중국이 이 지역에서 영향력을 펼치고 미·일이 이를 견제하기 시작하자 아세안국가들은 물론 인도·호주·독일·영국·유럽연합(EU) 등이 인·태 전략을 발표하고 대비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이 지역에서 중국의 패권 확대에 우려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의 인·태 전략이 모두 미국과 뜻을 같이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의 전략은 미·중 충돌로 지역 안정과 질서가 무너지는 것에 대한 우려도 담고 있다. 이들의 인·태 전략은 중국의 패권도전을 저지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미·중 충돌로 초래될 수 있는 국익 손실을 최소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에 비해 윤석열 정부의 인·태 전략은 미국과의 ‘동조화’에 더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다. 정부 출범 직후인 지난 5월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인·태 전략 수립에 착수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의 인·태 전략은 미국의 전략적 틀 안에 있다. 백악관이 한국의 인·태 전략 발표를 즉각 환영하면서 “이 지역의 다른 동맹국, 파트너들과의 협력을 확대하려는 한국의 목표는 국제 평화, 안보를 증진하고 핵 비확산을 위한 한·미의 능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환영한 것에서도 한·미의 전략 동조화 의도가 잘 나타난다.

외교부 당국자는 ‘포용성’이 인·태 전략의 핵심 원칙임을 강조하면서 “특정 국가를 배제하려는 것이 전혀 아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내용에는 중국이라는 단어가 없다. 하지만 ‘보편적 가치에 기초한 규칙 기반 질서’ ‘남중국해의 평화와 안정’ ‘항행 및 상공비행의 자유’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 등의 표현과 국제규범·자유·민주주의·법치주의·인권 등을 강조한 것은 명백히 중국을 염두에 둔 것이다. 이 같은 내용과 동시에 중국을 “인·태 지역의 번영과 평화를 달성하는 데 있어 주요 협력 국가”라고 규정한 것은 미·중 전략경쟁과 한국의 딜레마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향후 과제

한국이 인·태 전략을 공개하고 정책점 지향점을 분명히 한 것은 의미 있는 일이지만 이행 과정에는 만만치 않은 과제가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한·중관계를 유지·관리하기 위한 방안이다. 중국은 한국의 인·태 전략을 미국이 중국 견제 동참에 한발 더 다가간 것으로 인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미·중 사이에서 중립을 요구하는 중국의 외교적 압박이 높아지고 한·중관계가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

중국뿐 아니라 미국의 요구도 높아질 수 있다. 한국이 전략적 목표를 미국과 일치시키고 역할과 기여를 확대하기로 천명했기 때문에 미국은 이를 바탕으로 한·미 동맹을 재조정하고 한반도를 넘어 글로벌 이슈에 대한 협력으로 확대하려 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남중국해·대만 문제 등 인·태 지역 안보 문제에 대한 한국의 협력과 역할 확대 요구가 높아질 수 있다.

한국이 인·태 전략에 ‘자유·민주주의의 가치 반영’ 뜻을 밝힌 것이 아세안 외교에 부담을 줄 수도 있다. 아세안 국가들은 민주주의·친미 국가도 있지만 사회주의 국가도 있고 인권·법치 등에 취약한 독재국가도 있기 때문에 ‘가치외교’를 앞세우는 것은 미·중 사이에서 모호성을 유지하는 아세안과의 외교에서 효율성을 떨어뜨릴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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