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무기 지원 ‘尹 정부의 딜레마’···미·서방 압박에 미묘한 입장 변화 기류읽음

유신모 기자

전황 급박해지며 서방도 전차 등 제공

미국·나토, 무기 지원 강력히 촉구

자유·민주주의 연대 강조한 윤 정부

지원 불가 고수 땐 가치외교 빛바래

최근 “노력 필요하다는 관점에 공감”

이종섭 국방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이 지난달 31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에서 한·미 국방장관 회담을 마친 뒤 공동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종섭 국방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이 지난달 31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에서 한·미 국방장관 회담을 마친 뒤 공동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지원 문제로 딜레마에 빠졌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고 러시아의 대공세가 임박한 가운데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우크라이나에 전차 제공을 결정하는 등 전황이 급박해지면서 한국에 대한 서방의 무기 지원 압박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개전 초기부터 줄곧 우크라이나에 살상용 무기를 제공하는 것에는 분명하게 선을 그어왔다. 무기가 아닌 군수품과 경제적·인도적 지원에 한정해 도와준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하지만 전쟁이 소모전 양상으로 전개되고 일부 국가들의 무기 지원이 한계에 도달하자 한국에게 무기를 제공해달라는 요구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서울을 방문했던 옌스 스톨텐베르그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사무총장은 지난 30일 민간 연구소 강연에서 그동안 무기를 지원하지 않았던 국가들이 방침을 바꿔 무기 지원에 나서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한국이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이라는 특정한 문제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다.

정부는 스톨텐베르크 사무총장이 한국 정부에 정식으로 무기 제공을 요청해왔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답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외국을 방문한 인사가 당국 간 회담에서 하지 않은 이야기를 다른 곳에서 공개적으로 밝히는 것은 외교 관례에 어긋나는 행동이라는 점에서 스톨텐베르크 사무총장이 이날 이종섭 국방장관과 만났을 때도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요청을 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미국도 윤석열 정부가 무기 지원에 나설 것을 강력히 희망하고 있다. 한·미관계에 밝은 외교소식통은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은 지난해 5월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부터 조 바이든 행정부가 강력히 요청해온 사안”이라며 “윤 대통령이 취임사 등을 통해 밝힌 자유의 가치, 민주주의 연대, 군사력에 의한 불법행위 반대, 세계 시민의 단결 등을 보고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할 것으로 확신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이 미국과 서방의 요구가 점차 강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을 끝까지 외면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특히 윤석열 정부는 그동안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유·민주주의 연대와 가치외교를 강조해왔다. 때문에 끝내 무기지원을 하지 않는다면 정부가 말하는 가치 외교는 국제적으로 공신력을 잃을 수 있다.

이같은 상황 속에서 정부 입장도 변화하는 징후가 보인다. 한국은 지난해 11월 미국에 155㎜ 포탄을 판매한 적 있다. 미국이 최종 사용자가 되어야 한다는 단서를 달긴 했지만, 사실상 ‘우회 지원’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종섭 국방장관도 지난달 31일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과 회담 이후 기자회견에서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과 관련해 “국제사회 노력이 필요하다는 관점에 공감했다”며 “우크라이나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정도로 답하겠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살상용 무기 제공을 하지 않는다는 기존 입장과는 상당히 다른 톤이어서 즉각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박진 외교부 장관이 오는 17~19일 독일 뮌헨에서 열리는 뮌헨안보회의에 참석할 것을 적극 검토하고 있는 것도 눈길을 끈다. 이번 뮌헨안보회의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동맹국들의 결집 등이 압도적 주제로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 자유 민주주의 연대를 외치면서 무기 지원을 하지 않고 있는 한국의 외교장관이 참석하기는 껄끄러운 회의다. 이 때문에 박 장관의 뮌헨안보회의 참석은 정부 방침에 변화가 생기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러시아 문제에 정통한 외교 소식통은 “미국과 서방의 압력이 커지고 있기 때문에 무기 지원에 대한 한국의 방침이 변화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본다”면서 “전쟁 장기화로 러시아와의 관계 관리가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에서 무기 지원까지 이뤄지면 한·러관계가 회복하기 어려운 상황에 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


경향티비 배너
Today`s HOT
젖소 복장으로 시위하는 동물보호단체 회원 독일 고속도로에서 전복된 버스 아르헨티나 성모 기리는 종교 행렬 크로아티아에 전시된 초대형 부활절 달걀
훈련 지시하는 황선홍 임시 감독 불덩이 터지는 가자지구 라파
라마단 성월에 죽 나눠주는 봉사자들 코코넛 따는 원숭이 노동 착취 반대 시위
선박 충돌로 무너진 미국 볼티모어 다리 이스라엘 인질 석방 촉구하는 사람들 이강인·손흥민 합작골로 태국 3-0 완승 모스크바 테러 희생자 애도하는 시민들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