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관빈 선생 등 무호적 독립유공자 ‘한국 호적’ 생겼다

박은경 기자

국외 이주 등 이유 호적 보유 못해

보훈처, 32명 가족관계등록 창설

등록기준지는 ‘독립기념관로 1’

4월 봉환 황기환 지사 등도 부여

3·1 만세시위를 주도한 신관빈 선생(2011년 애족장·오른쪽)에게 대한민국 국적이 부여됐다. 사진 왼쪽은 신 선생의 가족관계증명서. 보훈처 제공

3·1 만세시위를 주도한 신관빈 선생(2011년 애족장·오른쪽)에게 대한민국 국적이 부여됐다. 사진 왼쪽은 신 선생의 가족관계증명서. 보훈처 제공

3·1절을 맞아 개성지역 3·1 만세시위를 주도한 신관빈(2011년 애족장) 선생 등 무호적 독립유공자 32명에게 대한민국 적(籍)이 부여됐다고 국가보훈처가 1일 밝혔다.

신 선생을 비롯해 김강(1995년 독립장)·강진해(1995년 독립장)·김창균(1995년 독립장)·이덕삼(1995년 독립장)·김경희(1995년 애국장)·김명세(1991년 애국장) 선생 등이 이번에 적을 부여받았다.

이들은 일제강점기 조선인에 적용한 민사 법률인 조선민사령 제정 이전에 국외로 이주하는 등의 이유로 대한민국 공적 서류상에 한 번도 적을 보유하지 못했다.

보훈처는 이들 무호적 독립유공자 32명에 대해 가족관계등록을 창설하고 등록기준지는 ‘독립기념관로 1’(충남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로 부여했다고 전했다.

신관빈 선생은 1919년 3월1일 개성 시내에 독립선언서를 배포하고 다음날 체포돼 그해 4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 형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됐다. 당시 유관순 열사와 8호 여옥사에서 함께 옥고를 치렀다.

이번에 적이 부여된 이들은 주로 만주에서 항일 운동을 해온 독립운동가들이다.

김강 선생은 1920년 조선은행 회령지점에서 간도로 가던 현금수송 차량을 습격해 15만원을 탈취한 사건에 연루돼 일본 경찰에 체포된 후 순국했고, 강진해 선생은 한국독립군 별동대장으로 동경성전투와 대전자령전투에 참전했다가 1933년 중국 동녕현 전투에서 순국했다.

대한독립단 소속의 의용군으로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한 김창균 선생은 1926년 국내로 들어오다 체포돼 1928년 사형선고를 받았다. 평북 선천의 신성중학교 재학 중 임시정부 기밀문서 등을 배포한 이덕삼 선생은 1926년 독립운동을 위해 국내로 들어오다 체포돼 자결했다.

김명세 선생은 중국 길림성 연길현에서 독립운동단체에 가입 활동 중 순국했다. 김경희 선생은 평양 숭의여학교 교사로 재직 중 비밀결사 송죽회를 조직해 항일투쟁을 전개했다. 평양에서 부인회를 조직해 활동 중 병을 얻어 작고했다.

박민식 국가보훈처장은 “조국 독립을 위해 희생과 헌신의 삶을 사셨던 분들을 국가가 끝까지 책임지는 ‘일류보훈’의 상징적 조치”라면서 “앞으로도 무호적 독립유공자분들을 ‘완전한 대한국인(大韓國人)’이 되도록 해 국가와 국민적 예우를 받으실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보훈처는 지난해 7월 윤동주와 송몽규 등 156명에 이어 작년 말에도 이용담과 김천 등 11명의 가족관계등록을 창설했다.

보훈처는 순국 100년 만인 올해 4월쯤 유해가 봉환될 예정인 황기환 지사 등 무호적 독립유공자에 대한 가족관계등록 창설을 계속 추진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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