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일본 호응’ 없는 한국의 ‘국내적 해결’ 된 강제징용 배상 해결책

유신모 기자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해 9월 21일 유엔총회 참석을 계기로 뉴욕에서 처음 대면 회담을 갖고 악수를 나누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해 9월 21일 유엔총회 참석을 계기로 뉴욕에서 처음 대면 회담을 갖고 악수를 나누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정부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 문제를 풀기 위한 해결책을 6일 발표할 예정이다. 한국의 기업들이 낸 기부금으로 피해자들에게 ‘판결금’을 대신 배상하는 ‘제3자 변제’가 주요 내용이 될 것으로 보인다. 2012년 5월 한국 대법원이 고법 판결을 뒤집고 피해자에게 개인청구권이 있다는 취지로 파기환송 결정을 내린 이후 11년 가까이 이어진 논란은 결국 일본 측의 주장대로 일본 피고기업들에 배상 책임을 묻지 않고 ‘국내적으로 해결하는 방식’으로 귀결될 전망이다.

정부가 발표하는 해결책은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 자금을 받은 국내기업들이 자발적으로 기부금을 출연해 기금을 조성하고 이를 대법원의 배상 확정판결을 받은 15명의 피해자들에게 지급한다는 것이 골자다. 윤석열 정부는 그동안 이같은 해결방식을 추진하면서 일본 피고기업들이 기부금 조성에 기여하고 일본기업이나 정부의 적절한 사죄 표명 등 ‘성의있는 호응’이 동반되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그러나 일본 측이 이같은 요구에 난색을 표하면서 결국 한국의 독자적 해결로 가닥을 잡게 됐다.

이에 따라 일본 피고기업들은 정부의 해결 노력에 참여하지 않을 전망이다. 또한 일본 측의 사죄 표명도 기시다 후미오 현 내각의 입장이 아닌 과거 무라야마 담화·김대중-오부치 선언 등에 나온 일제 식민지배에 대한 반성을 재확인하고 ‘이를 계승한다는 방침에 변함이 없다’는 입장을 밝히는 것으로 갈음하게 될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은 피고 기업이 기부금 조성에 참여하지 않는 대신 다른 기업들이 일본 게이단롄(일본경제단체연합회)에 돈을 내는 방식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이 기부금도 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에 내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전국경제인연합회와 ‘미래청년기금’(가칭)을 조성해 공동운영하는 방식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일본의 ‘호응 조치’는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으로 이뤄지는 셈이어서 일제 강제징용의 불법성을 적시하고 배상하도록 한 한국 대법원 판결 취지를 전혀 반영하지 못하게 됐다.

이와 관련해 김성한 국가안보실장은 5일 강제징용 문제 한·일협상과 관련해 “마무리 단계”라며 “한일 청년세대·미래세대들이 양국 관계의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어떤 잠재력을 축적해나갈 수 있을지에 관해 양측 경제계라든지 다양한 분야에서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협의 중”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이번 발표로 한·일간 최대 현안인 강제징용 판결 문제로 인한 국가 간 외교적 갈등은 일단락될 전망이다. 강제징용 판결 문제로 비롯된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의 불안정한 지위도 조만간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한·일 정상 간 상호 방문 등 ‘셔틀외교’를 복원하고 한·일관계를 정상화함으로써 안보·경제 등 모든 분야에서 한·미·일 협력을 강화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게 됐다. 또한 정부는 해결책 발표와 함께 윤 대통령의 4월 내 일본·미국 방문과 5월 일본 히로시마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석 등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이처럼 일본의 호응조치를 포기하고 강제징용 판결 문제를 독자적으로 해결하기로 결정한 명분은 ‘미래지향적 한·일관계 구축’이다. 과거사 문제에 발목이 잡혀 급변하는 국제질서 속에서 가장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한·일 협력에 장애를 초래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 지난 1일 윤석열 대통령이 3·1절 기념사에서 일제 침략과 식민지배의 부당성, 일본의 올바른 역사 인식 등에 대한 언급을 일절 하지 않은 채 “일본은 과거의 군국주의 침략자에서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안보와 경제, 글로벌 어젠다에서 협력하는 파트너로 변했다”고 밝힌 것도 이 때문이다.

이번 발표로 한·일 정부 간의 갈등 요소는 해소할 수 있게 됐지만, 강제징용 문제가 모두 끝난 것으로 볼 수는 없다. 윤석열 정부의 이번 결정은 고스란히 국내 정치적 부담으로 되돌아올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일부 피해자들과 시민단체, 야당 등이 정부의 해결책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대정부 투쟁을 예고하고 있어 극심한 국내적 혼란이 예상된다. 또한 제3자 변제로 확정판결을 받은 피해자들의 법적 권리가 충족되는 것인지, 정부의 대리 변제를 거부하는 피해자들의 채권을 합법적으로 소멸시킬 수 있는지 등의 법적 문제도 논란거리로 남아 있다. 이같은 국내적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하면 강제징용 문제는 ‘해결했으나 해결되지 않은’ 현안으로 남아 다시 한·일관계에 계속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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