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 강제동원(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로 인한 한·일 외교 갈등은 2012년 대법원이 피고인 일본 기업이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을 때부터 예고된 것이었다. 지금까지 11년 가까운 시간이 있었지만, 역대 정부는 문제 해결에 실패했다. 강제징용은 불법이 아니었고,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일본의 법적 책임과 배상 문제는 종결됐다는 일본 정부의 입장이 확고했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는 일본의 입장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했음에도 미래 지향적 관계를 이유로 일본 피고기업이 아닌 한국 기업 자금을 통한 피해자 배상안을 해법으로 내놨다.
2005년 2월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법원에 일본 기업 상대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1·2심에서는 원고인 피해자들이 패소했지만, 2012년 5월 대법원 1부(주심 김능환)는 1·2심을 뒤집고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개인 청구권까지 소멸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 같은 판결은 단순히 일본 기업과 개인 간 민사소송을 넘어 양국 간 외교 충돌로 확대될 가능성을 품고 있었다. 고등법원 파기환송심을 거쳐 2018년 10월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판결이 최종 확정됐다. 피해자들이 소송을 제기한 지 13년여 만이었다.
2012년 대법원 판결에도 임기 말이었던 이명박 정부는 문제 해결을 위해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해 8월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하면서 한·일관계는 더욱 악화됐다.
박근혜 정부는 2015년 12월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 체결에만 매달린 채 강제징용 배상 문제 해법을 모색하는 데는 소극적이었다. 문재인 정부에서 이뤄진 검찰의 사법농단 수사 과정에서 박근혜 청와대가 대법원에 강제징용 재판 지연과 전원합의체 회부를 요구한 사실이 드러났다. 공개적인 논의 과정을 통해 피해자와 국민들이 동의할 수 있는 해결책을 찾기보다 대법원과의 ‘재판 거래’를 통한 은밀한 해법 모색에 집착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 2년 차인 2018년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난 뒤 한·일관계는 악화일로를 걸었다. 일본 정부는 배상을 위한 자국 기업의 한국 내 자산에 대한 압류 조치가 한·일관계의 ‘마지노선’이라고 선포하고, 한국 정부의 해결책 마련을 요구했다. 문재인 정부는 확정 판결 8개월 만인 2019년 6월 한·일 기업의 자발적 위로금 출연을 제안했지만, 일본 정부는 이를 거부했다. 같은 해 7월 일본이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3종에 대한 수출 규제와 함께 한국을 수출절차 우대국(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결정을 내리자, 한국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중단 결정으로 맞대응했다. 역사 문제가 경제·안보 분야로까지 확대된 것이다.
그 해 12월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한·중·일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방문한 중국 쓰촨성 청두에서 15개월 만에 정상회담을 했지만 입장차만 확인했다. 문재인 정부에서의 한·일 정상회담은 이때가 마지막이었다. 문 대통령은 2021년 7월 도쿄 올림픽을 계기로 일본을 방문해 한·일 정상회담을 갖기를 바랐지만, 일본의 소극적 태도로 방일은 무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