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일이 고기먹는 날?’…고기팔기 혈안, 순국선열 잊은 ‘육육데이’읽음

정유미 기자

유통가 6월6일 ‘육육(肉肉)데이’ 대규모 할인전

한우 40~50% 싸다고 해도 외국산의 2~3배

“축산농가 아닌 외국산 소비촉진 행사로 전락”

경건한 현충일 ‘고기파티’ 상술 없어져야 비판도

서울 동대문구에 사는 주부 최모씨(57)는 징검다리 연휴를 앞두고 지난 주말 대형마트를 찾았다가 눈살이 찌푸려졌다. 순국선열을 추모하는 현충일을 ‘육육데이(6월6일)’라고 부르는 게 불편한 데다, 한우를 최대 40~50% 싸게 판다고 했지만 가격조차 만만치 않아서다. 최씨는 “언제부터 현충일이 고기 먹는 날이 됐는지 안타깝다”며 “한우는 할인을 해도 너무 비싸 호주산 쇠고기나 살 수 있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농협 중앙회 쇼핑몰 갈무리

농협 중앙회 쇼핑몰 갈무리

5일 유통업체들이 6월6일 육육데이를 맞아 한우 등 대규모 할인전을 펼치고 있지만, 소비자들의 시선은 차가운 편이다. 육육데이는 6월 6일 아라비아 숫자 ‘6’이 반복된 날로 한자 ‘고기 육(肉)’과 발음이 같은 데서 따왔다. 2004년 무렵 광우병 파동으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금지되자 유통업체들이 한우 등 국내산 육류 소비를 촉진하자는 차원에서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농협 하나로마트는 오는 11일까지 ‘肉월이 왔어요’ 행사를 통해 한우를 최대 50% 싸게 판다. 홈플러스는 오는 7일까지 ‘와우 한우 페스타’를 열고 농협 안심한우를 최대 반값 할인한다. 이마트는 오는 6일까지 ‘육육위크’ 행사를 통해 1등급 한우 등심과 채끝 1등급을 40% 싸게 팔고, 롯데마트 역시 7일까지 1+ 등급 한우 전품목을 40% 할인 판매한다.

대형마트 관계자는 “치솟는 축산물가 안정과 황금연휴에 고객들의 부담을 덜어드리기 위해 육육데이 행사를 준비했다”며 “올 여름은 역대급 무더위와 긴 장마가 예고된 만큼 이번 기회에 축산농가도 살리고 온가족 건강도 챙기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한우자조금

한우자조금

그러나 일각에서는 ‘호국 보훈의 달’의 상징인 현충일을 경건하게 보내기는커녕 고기 먹는 날로 정한 데 대해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서울 강동구에 사는 직장인 강모씨(48)는 “국가를 위해 헌신한 호국 영령들을 기려 옛날에는 현충일에 술도 안 팔았다고 들었다”며 “유통업체마다 육육데이에 한우를 푸짐하고 부담 없이 즐기라고 외치는데 솔직히 화가 난다”고 말했다. 실제로 일부 유통업체는 현충일에는 술을 판매하지 않는다.

농가 현실과는 반대로 시장에선 값비싼 한우 가격도 논란거리다. 실제 대형마트의 40~50% 할인된 1등급 한우 가격은 안심의 경우 100g당 1만2000원, 등심은 9600원이 넘는 등 외국산보다 2~3배나 비싸다.

일산 대형마트를 찾은 주부 차모씨(45)는 “명절 등 특별한 날 부모님과 어린 자식들을 위해 가끔 한우를 구입했을 뿐 직접 맛본 지는 한참됐다”며 “요즘 한우 도·소매 가격이 폭락했다고 해서 혹시나 했는데 그나마 싸다는 국거리와 잡채용도 사기 부담스러웠다”고 말했다.

농촌경제연구원(KREI) 보고서를 보면 올해 전국 한우 사육 수는 360만9000마리 수준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고물가 시대 경기침체로 소비량이 줄면서 한우 가격은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 전국한우협회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지난 2월 큰소(600㎏) 산지 가격은 암소의 경우 448만7000원으로 전년 동월 대비 23.7% 떨어졌고, 도매가 역시 1등급 기준 1㎏당 1만6005원으로 전년 동월 대비 13.2% 하락했다.

축산업계 관계자는 “한우 산지와 도매가격이 떨어져도 소비자가 체감하지 못하는 것은 복잡한 유통구조 때문”이라며 “육육데이 마케팅이 국산이 아닌 외국산 육류 소비촉진 행사로 변질된지 오래”라고 말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순국선열을 기려야 할 현충일의 숭고함은 잊은 채 고기를 먹는 날이라고 알린다니 지나치다”며 “한국인의 1인당 고기 소비량이 쌀 소비량을 이미 제쳤고 비건(채식) 인구도 늘고 있는 만큼 육육데이는 없애는 것을 고려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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