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염수 방류 반대’ 여론 끝내 외면…일본 손 들어준 윤 대통령

유설희 기자

국내선 공식입장 안 내다 기시다 만나 밝혀…후폭풍 예고
‘후쿠시마 수산물’ 금수 명분 사라져…향후 정부 대응 주목

윤석열 대통령이 12일 리투아니아 빌뉴스의 한 시내 호텔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빌뉴스 |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윤석열 대통령이 12일 리투아니아 빌뉴스의 한 시내 호텔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빌뉴스 |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윤석열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간) 리투아니아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열고 일본 정부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 계획에 손을 들어줬다. 윤 대통령은 해양 방류에 대해 찬반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다핵종제거설비(ALPS)로 처리한 오염수가 안전기준에 부합한다는 국제원자력기구(IAEA) 조사 결과를 “존중한다”며 방류를 사실상 인정했다. 또 방류를 전제로 각종 후속 조치를 일본 측에 요구했다. ‘일본 측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밝혀달라’는 국민 다수 요청을 외면한 데 따른 정치적 후폭풍이 예상된다. 앞으로 일본이 후쿠시마산 수산물 수입을 요구할 경우 한국 정부 대응도 주목된다.

윤 대통령의 이 같은 입장 표명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앞서 윤 대통령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대한 세 가지 선행조건이 충족된다면 방류가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지난 3월16일 한·일 정상회담 당시 기시다 총리가 윤 대통령에게 후쿠시마산 수산물 수입 규제 철폐를 요구했다는 등의 보도가 나오면서 대통령실은 지난 3월31일 오염수 방류에 대한 공식 입장을 처음으로 밝혔다.

당시 대통령실은 “대통령은 국민 건강과 안전에는 어떠한 타협도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이라면서도 “대통령은 정상회담 기간 중 일본 측 인사들과 만난 자리에서 후쿠시마 오염수에 대해서는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방식, 국제기준에 부합하는 검증, 그 과정에 한국 전문가가 참여해야 한다는 3가지 조건을 분명히 했음을 알려드린다”고 밝혔다. 이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된다면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협조할 수 있다는 취지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이 제시한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방식’과 ‘국제기준에 부합하는 검증’이 IAEA 최종보고서 발표로 사실상 충족됐다고 보고 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통화에서 “IAEA라는 권위 있는 기관의 발표를 우리 정부가 부정하고 (방류에) 반대 입장을 표명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검증 과정에 한국 전문가가 참여해야 한다’는 조건은 한국 정부 시찰단을 지난 5월21~26일 파견한 것으로 총족된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 선택에는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기시다 정부의 행보에 ‘태클’을 걸지 않겠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 IAEA 보고서 등을 명분 삼아 방류를 묵인하고 가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염수 해양 방류 인정은 국민의 기대에 어긋나는 것이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반대 여론은 80% 안팎으로 부정적인 여론이 절대적으로 우세하다. 한국갤럽이 지난달 27~29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가 걱정된다’는 응답은 78%에 달했다. 그럼에도 윤 대통령은 다수의 국민 대신 일본 정부의 입장을 택했다. 게다가 윤 대통령은 전 국민적 관심사인 오염수 해양 방류에 대한 입장을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그것도 기시다 총리와 만나서 밝혔다. 윤 대통령은 그동안 “국민의 건강과 안전이 최우선”이라면서도 오염수 방류에 대한 입장을 국민 앞에 직접 밝힌 바 없다.

윤 대통령은 정부와 여당의 여론전을 통해 야당과 시민사회의 비판을 돌파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국민 대다수가 오염수 방류에 반대하고 있는 만큼 국민적 우려를 외면하고 일본 정부를 편드는 선택을 한 데 따른 정치적 후폭풍은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7일 발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직무수행 부정평가 이유로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17%)가 1순위로 꼽히기도 했다.

오염수 방류를 인정하면 일본의 후쿠시마산 수산물 수입 요구를 반대할 명분이 사라진다는 것도 문제다. 일본은 유럽연합(EU)을 상대로 후쿠시마산 농수산물 수입 규제를 철폐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동안 윤 대통령은 후쿠시마산 수산물 수입 문제와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 방류 문제는 분리대응해 “후쿠시마산 수산물이 국내에 들어올 일은 없다”(지난 3월31일 대변인실 명의 언론 공지)고 못 박았다. 하지만 ‘과학적인 근거’를 기준으로 오염수 방류를 찬성한다면 수산물 수입 규제 문제 역시 ‘과학적인 근거’로 반대하기는 어렵다. 당장 이날 회담에서 일본 측이 수산물 수입 문제를 거론했는지, 한국 측은 어떤 입장을 밝혔는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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