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이냐, ‘자강’이냐···이재명·윤석열 외교참모 격돌읽음

김찬호 기자
위성락 실용외교위원회 위원장(이재명 캠프·왼쪽)와 김성한 외교안보정책본부장(윤석열 캠프). 김기남 ·이석우 기자

위성락 실용외교위원회 위원장(이재명 캠프·왼쪽)와 김성한 외교안보정책본부장(윤석열 캠프). 김기남 ·이석우 기자

대통령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늘 그렇듯 이번 대선의 시대정신도 엄중하다. ‘미중 패권경쟁 시대’, ‘한반도 평화구축을 위한 전환기’, ‘향후 5년의 미래’ 등이 이번 대선을 설명하는 수식어로 붙었다. 하지만 대선의 초점이 항상 엄중한 시대정신에 맞춰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후보를 둘러싼 각종 의혹’이 대선의 최고 관심사이자 승패를 가르는 분수령이 되고 있다. 차기 대통령의 국정운영 ‘철학’, ‘비전’, ‘현실감각’ 등은 선거의 쟁점에서 자연스레 순위가 밀린다.

그 중에서도 특히 관심이 떨어지는 분야는 외교다. ‘한반도는 패권 전환 시대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지역’이라는 상식이 무색할 정도다. 당장 한일관계 문제가 집권 초반 뇌관이 될 가능성이 높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전략”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미중관계에 대한 상황인식, 대응방안 역시 뚜렷하게 확인되지 않는다. 그나마 북한 문제가 종종 관심사로 떠오르지만 이는 정책대결보다 이념대결 양상이 짙다. 선거판을 떠도는 “외교정책은 판세에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는 말이 틀린말은 아닌 셈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확인은 필요하다. 좋든 싫든 한국의 생존과 번영이 차기 정부의 외교력에 달려 있다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경향신문은 지난 9월부터 한국의 외교·안보·경제 분야 전문가들과 함께 국제정세를 진단하고, 다음 정부에 대한 조언을 소개하고 있다. ‘플라자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진행중인 대담은 예정된 주제의 절반을 소화했다. 이에 중간 정리로 유력 대선 후보인 이재명, 윤석열 캠프의 외교정책 책임자들을 만나 공약과 집권 후 구상을 물었다.

인터뷰에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캠프의 위성락 실용외교위원회 위원장,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캠프의 김성한 외교안보정책본부장이 참여했다. 이들은 각 후보들이 오랜시간 공을 들여 영입한 인재들로 알려져 있다. 두 사람 모두 실무 경험을 갖췄을 뿐만 아니라 합리적 인사라는 평가도 받는다. 실제로 이들은 많은 질문에서 비슷한 해답을 내놨다. 또, 일부 질문에서는 답변을 재차 확인할 정도의 예상 밖 이야기도 있었다. 특히, 진보는 한미동맹을 보수는 자강을 강조하는 모습은 외교정책을 이념에 따라 나누는 것이 편견임을 잘 보여줬다.

위 위원장과는 지난 12월 20일 경향신문에서, 김 본부장과는 12월 22일 고려대 인촌기념관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보다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두차례 인터뷰 모두 김흥규 아주대 미중정책연구소 소장이 진행을 맡았다. 인터뷰는 각각 진행됐지만 사드 확대, 쿼드 플러스 가입, 핵무기 보유 등의 민감한 사안을 공통 질문으로 던져 차이를 드러내고자 했다. 답변은 한 눈에 살펴볼 수 있게 각각 표로 정리했다.

이들의 답변이 곧 대선 후보의 답변인 것은 아니다. 다만, 단기간에 전문성을 갖추기 어려운 분야는 참모의 도움을 많이 받을 수 밖에 없는 것 역시 현실이다. 이들을 통해 차기 정부의 외교정책 구상을 엿볼 수 있다는 의미다.

■위성락 실용외교위원회 위원장(이재명 캠프)

위성락 실용외교위원회 위원장(이재명 캠프)이 지난 12월 20일 경향신문 사옥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기남 기자

위성락 실용외교위원회 위원장(이재명 캠프)이 지난 12월 20일 경향신문 사옥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기남 기자

-이재명 후보의 외교안보전략은 무엇인가.

위성락(이하 ‘위’) “이 후보가 직접 이름을 지은 것이 실용외교위원회다. 당파·이념보다는 실용적 외교를 하겠다는 것이다. 이 후보는 미국은 동맹이고, 중국은 동맹이 아닌 동반자라는 명확한 인식에서 길을 찾고 있다. 한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동맹이자 가치를 공유하고 있는 미국과 좀더 가깝게 가는 것이 실용적이라는 것이다.”

-실용이라는 의미가 잘 와닿지 않는데.

위 “현실을 민감하게 보고 대응하겠다는 의미의 ‘실용’이다. 사실 실용이라는 말이 여기저기서 쓰이기 때문에 새롭지 않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후보의 실용은 보통의 형용사를 차용한 것이 아닌 제대로 인식되지 못하고 있는 부분과 차별화하겠다는 각오다. 친북, 친중, 반미 등의 이념적 성향이라는 인식으로부터의 탈피도 의미한다.”

-실용외교의 구체적 예시가 있나.

위 “새롭게 떠오르는 신안보·신경제에 대한 대응이다. 요소수 사례처럼 자원의 무기화 같은 문제가 새롭게 부각하고 있다. 이를 잘 대처하지 않으면 안보 불안을 야기할 수 있다. 우리도 신경제 태스크포스(TF)를 만들었지만 세계 각국은 관련 부처를 만드는 등 적극 대응에 나서고 있다. 아직 대외적으로 말할 단계는 아니지만 목표는 새로운 안보이슈를 전통 안보이슈와 융합해 집중적으로 대응하는 체계를 정비하는 것이다. 하나의 컨트롤타워를 만들고 안보이슈들을 종합적으로 조율해나갈 생각이다. 또 첨단기술, 새로운 시장 등 경제통상에서 발생하고 있는 신경제에도 관심이 많다.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는 현실적 인식 위에 이들 문제에 실용적 방식으로 대처할 생각이다.”

-대북관계는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위 “이 후보가 가장 많이 오해받는 부분이다. 친북·유화적 입장일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있는데 그렇지 않다. 이 후보는 이념적 판단에 매몰되는 성향이 아니다. 이 후보는 실용외교위 출범과 함께 북한 문제에 대한 두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하나는 북한 문제가 생겨난 연원이 아주 복합적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대응책을 마련하라는 것이다. 북한과 미국·한국 사이에는 상호불신이 있다. 이 때문에 북한은 자기방어를 위한 무기를 만들고, 이는 역설적으로 안보 딜레마를 만든다. 실제로 북핵은 협상카드이자 위협카드라는 이면적 성격이 있다. 문제의 근원이 복합적인 만큼 이에 대한 대응도 복합적이어야 한다는 것이 이 후보의 생각이다. 또 다른 하나는 북한의 태도에 상응하는 대응을 한다는 것이다. 북한이 유화적으로 나온다면 우리 역시 유화적 조치를 취할 수 있고, 북한이 약속을 파기하거나 도발을 할 경우에는 잘못을 지적하고 따지겠다는 의미다. 즉 평화에 대한 인센티브와 동시에 제재나 압박 같은 디스 인센티브를 사용하는 데도 주저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북핵문제의 대안은 무엇인가.

위 “비핵화 트랙을 진전시키려면 평화 트랙도 가동해야 한다는 것이 그간 협상의 교훈이다. 평화 트랙에는 종전선언, 평화협정, 안전보장, 신뢰구축 등이 포함된다. 이 둘을 시너지 있게 운용할 것이다. 국제공조와 남북 대화도 상호보완적으로 운용할 계획이다. 단계적 접근은 불가피하지만 단계를 너무 많이 설정하면 북한이 의도하는 살라미 전술(협상에서 한 번에 목표를 관철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부분별로 세분하고 쟁점화하는 전술)에 말려들 수 있다. 단계는 최소화하고 단계별로 큰 합의를 이룬다는 원칙으로 다양한 구상을 생각하고 있다. 북핵이나 미사일 위협에 대해서는 적절한 억지력을 갖는다는 것이 기본이다. 주가 되는 것은 한국 자체의 억지력이고 이에 한미동맹이나 국제공조 등을 통한 억지력을 더한다는 구상이다. 억지력의 기반 위에 평화를 구축하고, 다시 그 바탕 위에 협상·대화를 풀어간다는 구조다. 만약 여의치 않으면 제재·압박이 더해진다. 다시 말해 모든 대처의 기초는 억지력이다. 억지력 없는 협상은 있을 수 없다. 그중에서도 우리 스스로 확보할 수 있는 억지력을 최대한 높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이번 정부에서 종전선언이 되지 않는다면 정책을 계승할 생각인가.

위 “이 후보는 종전선언에 대해 추진할 가치가 있다는 입장이다. 압박이나 경제적 보상 등을 중심으로 한 비핵트랙만으로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달성하기 어렵다는 인식에 기반한다. 평화와 안전보장 영역, 즉 평화트랙도 함께 추진돼야 한다는 것이다. 평화는 신뢰구축에서 시작된다. 그 시발점이 종전선언이 될 수 있다. 이를 잘 운영한다면 평화도 진전시키고 비핵화도 달성할 수 있다. 보수 측에서는 비핵이 이뤄지지 않는데 무슨 평화를 말하느냐는 비판도 있다. 얼핏 들으면 명료한 논리 같지만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비핵트랙과 평화트랙이 상호보완적으로 선순환 구조를 이룰 때 비로소 진전이 가능하다. 다만 종전선언을 곧바로 계승할 것이냐는 향후 상황에 달려 있다. 이번 정부에서 노력하고 있기 때문에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다음 행보를 가져갈 수 있다. 종전선언 추진 경과를 살펴 타당성 평가를 하고 결과를 잘 분석해 다음 행보를 이어나갈 것이다.”

위성락 실용외교위원회 위원장(이재명 캠프·왼쪽)이 지난 12월 20일 경향신문에서 김흥규 아주대 미중정책연구소 소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기남 기자

위성락 실용외교위원회 위원장(이재명 캠프·왼쪽)이 지난 12월 20일 경향신문에서 김흥규 아주대 미중정책연구소 소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기남 기자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는 어떻게 보나.

위 : “북핵 위협 속에 미·중·러·일 4강에 둘러싸여 있다. 미중경쟁은 날이갈수록 첨예화되는데 미러 관계, 한일관계도 최악이다. 특히, 미중경쟁에 대한 대처는 비유하자면 벼랑길을 걷는 것과 같다. 한 발짝만 잘못 내딛으면 큰 피해가 예상된다. 차기정부에게는 큰 과제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핵 문제라는 고질적 문제가 남아 있다. 화급하게 대처해야 하는 사안들이다.”

-그렇다면, 한미동맹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입장인가.

위 “이 후보는 한미동맹은 안보동맹을 넘어 경제, 신기술, 환경 등을 다루는 포괄적 동맹으로 진화·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애초에 한미동맹은 가변성을 염두에 두고 디자인됐다. 동맹 문구에도 북한이 명기되지 않고, 포괄적인 외부 도발에 대처하는 것으로 돼 있다. 이는 북한의 군사적 위협뿐만 아니라 다른 위협에 대해서도 함께 대응할 수 있다는 의미다. 다만 한미동맹이 어떻게 진화할 것이냐는 우리 안보 환경 변화에 달려 있다. 북한이나 중국으로부터 큰 위협을 느낀다면 군사적 성격이 강해질 것이다. 반대로 평화가 유지된다면 연성이슈인 코로나19 대응, 기후변화 등에서 역할을 할 수 있게 진화할 수 있다.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보다 중요한 역할을 맡는 데 한미동맹이 기여할 수 있다.”

-반대로 중국과의 협력도 고려하나.

위 “당연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기후변화, 코로나19 방역 문제 등에서 중국과 충분히 공감대가 있다. 특히 북핵문제에 대해서는 특별히 협력할 수 있다. 북핵문제는 비확산 문제인데 중국은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공동의 이해관계뿐만 아니라 문제해결에 나서야 할 책임도 있다는 것이다. 비확산을 시작으로 협력을 확대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민주당 정부는 친중정부라는 비판이 있다. 미세먼지 등의 이슈에 중국에 항의하지 못한다는 것인데.

위 : “이 후보의 외교 원칙은 어떤 상대든 잘못한 것에 대해서는 대처한다는 것이다. 중국발 불법어로 문제에 대해서도 이미 여러차례 언급이 있었다. 기본적인 규칙(룰)에 관한 것은 강하게 항의하겠다는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이 후보의 기본 외교철학은 같다. 환경오염 문제에 대해서도 유사할 것이다.”

-한일관계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위 “한일관계를 개선해야 하는 것은 당위라고 생각한다. 한미관계에도 도움이 되는 일일 뿐만 아니라 한·미·일 협력, 국제사회에서 외교적 입지를 다지는 것에도 이득이 된다. 동북아 질서가 재편되는 상황에서 한일관계가 개선된다면 우리 외교가 한단계 도약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또 악화된 한일관계가 한반도 상황을 타개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한일 간의 과거사 문제를 해소하고,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는 한 번에 달성 가능한 것이라기보다 우리가 조금 움직이면, 일본도 조금 움직이고 하는 점진적 접근으로 달성할 수 있다.”

-강제동원 배상문제로 전범기업들의 국내 자산 매각이 초읽기에 들어간 상황이다. 이에 대한 입장은 무엇인가.

위 “기본적으로 사법 영역에 개입할 수는 없다. 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은 정치적으로 해결할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다. 하나의 문제를 두고 사법기관, 피해 당사자, 정부 등이 각각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상황을 악화시키지 말고 문제해결을 위한 시공간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과거사 문제는 단순히 법적 영역에서만 해결하기 쉽지 않다. 국내법적 문제와 국제법적 문제가 중첩돼 있다. 일본은 국제법 측면에서 말을 하고 우리는 국내법적 측면에서 말하고 있다. 양자 간 접점을 찾아야 하는데 그게 정치가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시간을 벌어야 한다는 말을 오해하지 않았으면 한다. 한일 간에 돌이키기 어려운 악재가 발생하면 정치적·외교적 해결을 도모할 운신의 공간이 너무 좁아지거나 아예 사라져버린다. 해결을 위해 조용한 시공간을 확보하자는 것이다. 이는 방치와는 다르다.”

-이 후보가 대일관계에 강경하다는 이미지가 있는데.

위 : “과거사나 영토문제에 대한 발언 때문에 그러한 인식이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이 후보의 발언은 수출규제나 독도문제처럼 일본이 우리를 향해 취한 각종 조치, 발언들에 대한 대응이었다. 이와는 달리 양국 관계개선에 대한 의지는 있다. 실용외교가 일본이라고 적용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김대중-오부치 선언이 롤모델이다. 어려워도 해야만 한다는 목표의식도 있다.”

-이 후보의 외교정책에서 특별히 강조하고 싶은 내용이 있다면.

위 “선진외교를 추진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미중 경쟁, 북핵문제, 자원의 무기화로 대표되는 신안보 문제 등이 동시다발적으로 가해지고 있다. 이러한 현안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 외교를 선진화해야 한다. 한국은 엄청난 고난을 딛고 경제발전, 민주화를 달성한 나라다. 이미 세계 10위권 국가이며, 거의 G7 반열에 올라왔다. 그런데 우리가 위상에 걸맞은 외교를 하고 있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 북핵문제라는 제약도 있지만 우리 스스로 감정이 앞선 외교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다음 정부는 이러한 외교를 개선해 선진외교로 나아갈 역사적 소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누가 보더라도 강대국에 걸맞은 외교를 하기 위해 외교개혁, 외교정책 입안을 해 나갈 것이다.”

‘실용’이냐, ‘자강’이냐···이재명·윤석열 외교참모 격돌

■김성한 외교안보정책본부장(윤석열 캠프)

김성한 외교안보정책본부장(윤석열 캠프)이 지난 12월 22일 고려대 인촌기념관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석우 기자

김성한 외교안보정책본부장(윤석열 캠프)이 지난 12월 22일 고려대 인촌기념관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석우 기자

-윤석열 후보의 외교안보전략은 무엇인가.

김성한(이하 ‘김’) “윤석열 외교를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국제연대에 기초한 ‘자강’이다. 물론 국제연대의 핵심요소는 한미동맹이지만 이익과 생각을 공유하는 우방국 네트워크를 통해서도 국익을 극대화해 나간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기본적으로 자강이 중심이 된다. 국제연대에만 의존해서는 달성 불가능한 목표다.”

-좀 더 구체적 전략이 궁금한데.

김 “미중 사이에서 등거리 외교를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 한국 외교의 중심축은 전략적 모호성이 아닌 전략적 명료성에 기반해야 한다. 전략적 모호성은 내 의도를 모호하게 만들어서 이익을 도모한다는 개념인데 외교에서는 득보다 실이 많다. 한국이 미국의 동맹국으로서 행동한다는 위치 설정을 분명히 하고, 그 가운데서 중국과 협력할 수 있는 부분을 예측가능하게 해야 한다. 반대로 미국과 국익이 일치하지 않는 부분도 어디까지 협력이 가능하고, 어떤 부분은 어려울지 예측가능하게 해야 한다. 한미동맹이 강조되는 만큼 한중관계가 멀어지는 것은 아니다. 한미·한중 관계는 제로섬 관계가 아니라는 의미다. 우리 스스로 미중 패권경쟁을 지나치게 의식해 외교적 협력 공간을 좁히지 말아야 한다.”

-다음 정부가 시급히 대처해야 할 사안은 무엇이라고 보나.

김 “북한 문제와 경제안보 문제 두가지를 꼽고 싶다. 특히 경제안보 문제가 떠오르고 있다. 미중 전략 경쟁이 본격화되기 전까지 무역은 가격경쟁력을 바탕으로 한 경제적 효용성 측면에서 진행됐다. 그런데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안보가 경제를 지배하는 상황이 됐다. 최근 미국은 중국과 선택적 디커플링을 하고 있다. 이러한 디커플링 작업 속에 정확히 어떤 것들이 포함돼 있는지 모르지만 대체로 4차 산업혁명에 꼭 필요한, 원료, 기술 등이 관련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반도체 공급망이 새롭게 재편되는 상황이다. 이는 반도체가 단순한 경제 문제가 아닌 안보 문제로 간주된다는 것으로 미국이 중시하는 시스템 반도체 분야는 더 이상 중국에 공장을 짓거나 투자하기 어렵게 된다는 뜻이다. 이 두가지가 가장 어려운 과제다.”

-그런데 윤 후보의 북한문제 해법을 두고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 3000의 연장선이라는 지적도 있다.

김 “비핵개방 3000은 북한이 비핵화를 달성하면 국제사회와 협력해 1인당 국내총생산(GDP) 3000달러로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그런데 북한이 반응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북한이 비핵화하기 전까지 아무것도 안 하는 것처럼 됐다. 윤 후보의 정책은 완전한 비핵화가 달성될 때까지 수수방관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만약 의미 있는 비핵화 조치가 이뤄지면 거기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겠다는 의미다. 그렇기 때문에 단계적 접근을 취한다고도 볼 수 있다. 다만 이재명 후보와의 차이점은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는 건드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비핵화가 원점으로 되돌아갈 수 없는 시점까지는 대북제재를 해제하지 않는다. 이 후보는 합의 위반 시 제재를 복원하는 ‘스냅백 조항’ 이야기도 하는데 일단 제재를 완화하면, 북한이 합의를 어기더라도 원상복구가 쉽지 않다. 중국이나 러시아가 협조하지 않을 것이다. 그보다는 상당한 경제적·인도적 지원을 통해 보상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겠다.”

-압박전략도 있나.

김 “안보에 100%라는 것은 없다. 조각조각 모아 총체적으로 대응하는 시스템이다. 이는 미국도 마찬가지다. 우리도 억제에 상당한 비중을 줘야 한다. 대량응징보복(KMPR) 전력을 갖추거나 정찰·감시 자산을 확보해 효과적인 보복이 가능하게 할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9·19 군사합의에 비판적 입장이다. 군사분계선 남북 10~15㎞ 상공에 비행금지구역이 설정됐다. 이 때문에 노무현 정부 이후 많은 돈을 들여 개발한 정찰·감시 전력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 앞으로는 북한이 남북관계를 주도하지 못하게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우리의 억제 능력을 강화해야 한다.”

-한미동맹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입장인가.

김 “흔히 한미동맹이라고 말할 때는 군사동맹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도 한미동맹은 포괄적 전략 동맹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포괄적 동맹이라는 것은 군사동맹, 정치동맹, 경제동맹이 결합된 형태다. 이중 군사동맹은 북한에 대응하는 동맹이다. 군사적 측면에서 중국을 겨냥한 한미동맹 혹은 한·미·일 군사동맹의 가능성은 낮다는 의미다.”

-한미동맹 자체에 이미 대중국 견제 요소가 포함된 것 아닌가.

김 :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용성이 어느 정도냐에 따라 견해는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어, 대만해협 사태에서 주한미군의 필요성은 감시정찰 정도에 한정돼 있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주한미군 전력의 상당부분은 육군이다. 이들을 대만해협 사태에 투입한다는 것은 수송기를 이용해 상륙한다는 의미인데 해병대가 투입되는 상륙작전을 넘어 육군의 진격작전이 필요한 정도라면 그 전쟁은 이미 세계대전 수준이라고 봐야 한다. 그런 상황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다. 결국, 대만해협 사태의 1차 대응은 주일미군 중심이 될 것이다. 중국 견제에 사용될 지상발사 중거리 미사일 역시 일본 남부 류큐 제도를 중심으로 배치가 검토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따라서 대중국 견제는 일본, 호주가 참여하는 수준으로 진행되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차기 정부가 어느 정도로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을지가 숙제가 될 것이다.”

-윤 후보가 집권하면 한중관계가 악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는데.

김 “윤 후보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이 사드 철회를 주장하려면 레이더를 먼저 철수하라’고 말했다고 알려진 적이 있다. 당시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가 공개 반박하는 등 문제가 됐는데 이 사안은 검토가 완벽히 끝나지 않은 답변이 언론사에 전달되며 발생한 오해다. 윤 후보는 기본적으로 한국형 미사일 방어체계(KAMD)를 강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 사드를 추가 배치할 것인지 등의 문제는 새 정부가 출범하면 여러 상황을 고려해 결정할 생각이다. 이는 문재인 정부와 입장이 같을 수도 다를 수도 있다.”

-사드 외에 고려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김 “사드는 한반도 동남권을 커버한다. 현재 수도권은 비어 있는 상황인데 여기에 사드를 추가 배치하느냐, 패트리어트(PAC-3)와 아이언돔을 활용하느냐를 고민해볼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한국형 아이언돔은 이스라엘 아이언돔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실제로 현재 개발되고 있는 것은 저고도 방사포 및 단거리 미사일 요격 능력에 맞춰져 있다. 2030년도 실전 배치를 목표로 진행됐는데 이걸 최대한 앞당겨 2026년까지 완료할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수도권 저고도는 한국형 아이언돔으로 방어하고 중고도 영역은 PAC-3나 한국형 방공미사일(M-SAM)로 방어체계를 구축할 수 있다. 이러한 방어망이 확실히 정립된다면 사드를 도입하지 않아도 될 수 있다. 그런데 보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우리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일에 중국 눈치를 봐서 못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점이다.”

김성한 외교안보정책본부장(윤석열 캠프·오른쪽)이 지난 12월 22일 고려대 인촌기념관에서 김흥규 아주대 미중정책연구소 소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이석우 기자

김성한 외교안보정책본부장(윤석열 캠프·오른쪽)이 지난 12월 22일 고려대 인촌기념관에서 김흥규 아주대 미중정책연구소 소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이석우 기자

-한일관계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김 “한국 외교가 한일관계 악화로 인해 생산성이 떨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과거에는 한미관계가 좋으면 일본과는 잘 못 지내도 문제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미국 입장은 항상 한미일 삼각구도 속에서 나왔다. 한·미·일 안보협력이 공고하다면 중국과 우리의 상호존중도 가능할 것으로 생각한다. 한국 외교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라도 한일관계는 개선할 필요가 있다. 다만, 일본이 현재와 같이 고집스러운 입장을 견지한다면 관계개선은 어렵다는 전제가 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강제동원, 수출규제, 지소미아 문제 등을 하나씩 풀어간다고 생각하면 언제 끝이 날지 알 수 없다. 그보다는 모두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포괄적 해결을 도모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그러한 측면에서 우리는 김대중-오부치 2.0을 강조하고 있다.

-김대중-오부치 2.0이라는 것은 정확히 어떤 의미인가.

김 “핵심은 일본의 진솔한 사과와 한일관계의 미래를 바꾼다는 것이다. 일본은 우리에게 진솔한 사과를 하고, 우리는 일본과 함께 미래로 가자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을 차용해 실타래처럼 얽힌 문제를 해결해보자는 구상이 김대중-오부치 2.0이다. 내년 7월, 일본 참의원 선거결과에 따라 기시다 일본 총리와 협상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길 수 있다고 본다. 우리가 모든 것을 양보하는 협상이 아닌 최소한 역사와 안보는 분리해서 갈 수 있는 정도로 협상을 하겠다는 것이다.”

-강제동원 배상문제로 전범기업들의 국내 자산 매각이 초읽기에 들어간 상황이다. 이에 대한 입장은 무엇인가.

김 “협상 전략이 노출될 수 있기 때문에 명확히 말하기 어렵다. 우리는 협상도 전에 모든 입장이 다 알려지는 경향이 있다. 이는 협상의 패인 중 하나로 조심할 필요가 있다.”

-윤 후보의 외교정책에서 특별히 강조하고 싶은 내용이 있다면.

김 “미중 전략 경쟁 속에서 우리는 기술은 미국에, 무역은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즉 중국과는 무역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인데, 또 기술 격차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미국 기술을 흡수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중 간 충돌관계를 너무 부각시켜 우리 스스로 외교 입지를 줄이지 말아야 한다. 대표적으로 G2라는 용어가 한국에서 대중적으로 사용되는데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잘 쓰지 않는 말이다. 이 G2라는 용어의 일반적 사용이 우리를 등거리 외교 쪽으로 몰아간다고 생각한다. 미중의 국력차가 좁혀지고 있지만 여전히 미국이 우위에 있다. 게다가 미국은 수많은 나라와 동맹을 맺어 네트워크 파워가 막강하다. 중국의 부상으로 더 이상 미국과 동맹을 유지하지 않겠다는 나라는 없지 않나. 엄밀히 따져 G2라는 용어는 적절하지 않다. 그렇다고 중국을 무시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G2라는 용어를 쓰면서 등거리 외교로 가자는 이야기는 더 이상 하지 말았으면 한다.”

‘실용’이냐, ‘자강’이냐···이재명·윤석열 외교참모 격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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