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 35년, 7번의 대선과 D-50의 풍경들…그때는 누가 될 지 알 수 있었을까

전현진 기자

20대 대선이 50일 남았다. 이 시기쯤 되면 누가 대통령이 될지 알 수 있었을까? 1987년 민주항쟁 이후 직선제가 부활한 뒤 7번의 대통령 선거가 치러졌다. 7번의 대선 동안 이 맘때쯤이면 ‘대세론’이란 말이 떠돌았고 독주하는 후보가 생겨나거나 약소 후보들 사이에 단일화 가능성이 점쳐졌다. 대선 후보들의 지지율이 구체적인 의미를 띄기도 하지만 다른 사회 경제 이슈에 대선에 대한 관심이 밀려나는 일도 있었다. 본격적 선거운동을 앞두고 다양한 전략을 물밑에서 고민한다. 당 안팎에선 갈등이 생기고 화합을 주문한다. 대통령 직선제 35년, 그동안 벌어진 D-50의 풍경들을 당시 경향신문 보도와 함께 살펴봤다.

1987년 10월27일 ‘대통령 직선제’가 담긴 제9차 헌법개정안 국민투표에 참여하기 위해 경운기에 올라탄 시민들이 투표소에 몰려왔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1987년 10월27일 ‘대통령 직선제’가 담긴 제9차 헌법개정안 국민투표에 참여하기 위해 경운기에 올라탄 시민들이 투표소에 몰려왔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직선제 향한 기대 들뜬 ‘개헌 국민투표’…“양김 분열”로 대선 국면 안갯속

지금으로부터 35년 전인 1987년 10월27일 화요일, 제9차 헌법개정을 위한 국민투표가 진행됐다. 국민투표를 통과하면 13대 대통령 선거가 15년 만에 직선제로 치러진다. 경향신문 석간 1면에는 ‘투표율 상오에 50% 넘어’라는 머리기사가 실렸다.

1972년 12월 이른바 ‘유신개헌’으로 직선제가 폐지됐고 15년 만에 대통령 직선제가 다시 도입된 9차 개헌이 여야 합의로 성사됐다.

직선제 부활 여부를 가를 국민투표 당일은 13대 대선 50일 전이었다. 이날 경향신문은 국민투표에 나서는 전국 곳곳의 표정도 전했다. 오전 7시부터 전국 1만3634개 투표구에서 투표가 진행됐다. 서울 구로공단 등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시간대별 조를 짜 투표에 참여하는 열성을 보였고, 농민들은 들로 나가기 전에 일찍 투표에 나섰다. “아침 출어를 앞둔 어민들도 약속이나 한 듯 투표소에 모였다”는 소식도 있었다.

일부 농촌 마을 주민들이 반상회 등을 통해 전원 아침투표를 미리 결의해 오전 8시 전에 100% 투표를 완료하기도 했다고 한다. “투표를 미리 포기한 채 행락에 나서기도 해 서울 강남터미널 인근은 전날 오후부터 관광지 노선이 붐볐다”는 소식도 이날 경향신문에 함께 실렸다.

전두환 당시 대통령 부부도 이른 아침 투표에 나섰다. “온 국민이 참여해 민주주의를 과시했다”며 투표 상황을 독려했다. ‘전두환은 물러나라’, ‘독재타도’, ‘호헌철폐’라는 구호가 넘친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직선제가 실시됐다는 점에서 그의 발언은 조금 어색해 보인다.

국민투표에 나선 대선주자들의 표정을 전한 1987년 10월27일자 경향신문 3면.

국민투표에 나선 대선주자들의 표정을 전한 1987년 10월27일자 경향신문 3면.

오랜 시간 재야 활동을 벌인 두 정치인이 차기 대통령으로 유력했다. 이날 경향신문에는 국민투표 기사와 함께 ‘두 김씨의 세(勢) 경쟁’이 본격화’ 됐다는 소식이 담겼다. 민주당 내 양대 세력인 김영삼 총재와 김대중 고문이 모두 대선에 출마하기 위해 세를 모았고 김대중 고문이 탈당을 통한 신당 창당의 의사를 밝혔다는 것이다.

대선 50일을 앞둔 시점, 야권이 양분될 것이 확실시 됐다. 노태우 민정당 총재는 야당의 분당사태를 맞아 당 조직을 선거전 체제로 바꾸고 작전태세에 돌입했다. 독재 타도를 외치며 부활한 대통령 직선제는 분열된 야권을 이긴 노태우 대통령의 당선으로 출발했다.

■시한부 종말론과 금융위기의 그림자…대선 가른 단일화

1992년 10월29일, 전날 휴거를 주장했던 대구 새벽별교회 황보관 목사가 화가 난 신도들에게 끌려가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1992년 10월29일, 전날 휴거를 주장했던 대구 새벽별교회 황보관 목사가 화가 난 신도들에게 끌려가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1992년 10월29일, 이재국 수도권사회부 기자는 경향신문 기자메모 코너에 이렇게 썼다. “7년 대환란이 시작되는 극심한 혼란의 돌발적인 발생도 없이 이날이 밝았다.” 이날은 다미선교회의 시한부 종말론 ‘휴거’가 예고됐던 다음 날이었다. 10월28일 세계가 종말하면서 신도들이 하늘로 들림을 받는 일이 일어난다는 종말론이었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14대 대선 D-50의 아침이 밝았다.

이날엔 김영삼·김대중·김종필 등 유력 정치인들에 대한 소식보다는 당시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의 출마설이 논란이 됐다. 노태우 당시 대통령도 기업가인 김 회장의 출마설에 우려를 나타냈다. 당시 경향신문은 김 회장과 정주영 현대그룹회장의 정치 참여에 경제계가 그들과의 친소관계를 두고 손익계산에 들어가면서 ‘사분오열’됐다고 전했다. 김 회장은 출마설이 기정사실화 됐지만 이날 이후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해프닝으로 마무리됐다.

15대 대선 50일 전인 1997년 10월29일에는 경제위기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졌다. ‘주가 500선 붕괴. 세계증시도 폭락’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경향신문 1면을 장식했고, ‘검은 화요일, 블랙 먼데이’로 한국과 전 세계 경제 상황이 묘사됐다. 이후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은 11월21일 정부는 국제통화기금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경제 위기가 본격화되면서 김영삼 당시 대통령에 대한 비판이 고조되고 있었다. 대선을 앞둔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와 김종필 자민련 총재가 단일화 협상을 타결해 김대중 총재를 양당 단일후보로 확정했다는 소식이 대선 정국의 주요 이슈로 소개됐다. 두 사람의 단일화는 ‘DJP연합’이라고 불렸고, 무소속 박태준 의원과의 ‘DJT연합’ 가능성까지 점쳐지면서 대선 국면이 개편됐다는 것이었다. 이에 반해 여당인 신한국당은 내분에 쌓였다. 이회창 당시 대선후보는 사퇴 요구까지 받았는데 단일화에 성공한 야권과 상반된 모습을 보였다. 김대중 총재는 단일화로 힘을 받아 대통령에 당선됐다.

김종필(왼쪽부터), 김대중, 박태준. 세 사람은 15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이른바 ‘DJT연합’을 결성하며 단일화했다. 김대중 대통령 당선 뒤 두 사람은 1998년 3월~2000년 5월18일까지 차례로 국무총리를 지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김종필(왼쪽부터), 김대중, 박태준. 세 사람은 15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이른바 ‘DJT연합’을 결성하며 단일화했다. 김대중 대통령 당선 뒤 두 사람은 1998년 3월~2000년 5월18일까지 차례로 국무총리를 지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15대 대선에서 힘을 발휘한 단일화는 16대 대선 50일 전에도 쟁점이었다. 2002년 10월30일 경향신문 보도를 보면, 노무현 민주당 대선후보는 국민통합21 정몽준 의원과의 단일화를 저울질하고 있었다. 당시는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가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었다. 이 후보 측은 “상승기류”라며 대세론 지키기에 골몰했다. 반면 노 후보 측은 정 의원과의 막판 단일화로 승부를 뒤집을 작정이었다.

실제 이후 전개는 노 후보가 정 의원과 단일화를 통해 이 후보를 추격했다. 대선 직전 정 의원이 노 후보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지만 결국 노 후보가 16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한편, 선거 때마다 정책 검증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비판은 예전에도 마찬가지였다. 16대 대선 50일 전 경향신문 5면에는 ‘폭로공방에 정책은 뒷전’이라는 기사가 담겼다.

노무현 민주당 대선후보는 국민통합21 정몽준 의원과 단일화에 성공하며 16대선 막판 지지율을 끌어올렸다. 정 의원은 대선 직전 지지를 철회했지만 노 후보는 대통령에 당선됐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노무현 민주당 대선후보는 국민통합21 정몽준 의원과 단일화에 성공하며 16대선 막판 지지율을 끌어올렸다. 정 의원은 대선 직전 지지를 철회했지만 노 후보는 대통령에 당선됐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저조한 지지율, 답답한 진보정치…대선후보 vs 당대표의 주도권 갈등

2007년 10월 30일은 17대 대선 50일 전이었다. 진보정치를 앞세운 권영길 민주노동당 대선후보가 위기 상황임을 자인하며 “창당정신을 잊었는지 반성한다”며 당원들에게 편지를 보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권 후보는 1997년 15대 대선에 출마하면서 1.2%인 30만6000여표를 얻었다. 16대 대선에서는 여론조사에서 3% 이상 지지율을 보이며 최초로 대선후보 TV토론회에 함께했다. 이때 나온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라는 멘트는 당대의 유행어가 됐다. 최종적으로 대선에선 3.9%인 96만표를 얻어 국회의원 없는 원외정당으로서 성과를 냈었다.

이후에도 지지율은 큰 변화가 없었다. 권 후보는 17대 대선 D-50 시점에서 각종 여론조사 지지율 2~3%대에 머물렀다. 지지층 결집도 더디다는 평가를 받았다.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가 지난 12일 선거운동 일정을 전면 중단한 것이 연상되는 대목이다.

17대 대선에선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독주했다. 대선 D-50 당일 경향신문에는 “친기업 정책을 펼치겠다”는 이 후보가 대한상의를 방문해 화개애애한 분위기를 자아냈다는 소식이 실렸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을 주문한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대선후보가 전경련을 방문해 가시 돋친 설전을 벌였다는 대조적인 표정도 함께 담았다.

2007년 10월30일 경향신문 4면에 실린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와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대선후보에 대한 분석 기사. 재계 단체를 방문해 대조적인 반응이 나왔다.

2007년 10월30일 경향신문 4면에 실린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와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대선후보에 대한 분석 기사. 재계 단체를 방문해 대조적인 반응이 나왔다.

이 후보의 고민거리는 내부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루 전날 한나라당 최고위원회 회의장에서 고성이 오갔다는 보도가 있었다. 대선후보와 당대표 중 누구를 중심으로 할 것이냐를 두고 언쟁이 벌어졌다는 것인데, 국민의힘의 윤석열 대선후보와 이준석 당대표 사이의 갈등은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실패한 단일화와 탄핵에 이은 조기 대선

18대 대선 50일 전인 2012년 10월30일의 경향신문 1면에는 이명박 당시 대통령의 큰형인 이상은 다스 회장이 동생인 이상득 의원의 선거를 지원하기 위해 보관 중인 현금을 줬다는 소식이 담겼다. 이 회장이 이 대통령 아들 시형씨에게 6억원을 빌려준 자금 역시 보관 중인 현금이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당시는 이명박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매입 의혹에 대한 특검이 활동하던 시기였다. 현직 대통령을 둘러싼 비리 의혹은 통상 야당에 유리한 이슈로 여겨지지만 당시 야당인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는 또 다른 지점에서 고민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바로 안철수 무소속 후보와의 단일화 논의였다.

안 후보는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출마를 고민하다 박원순 변호사를 지지하며 출마를 포기했고 이후 대선에 재등장했다. 대중강연을 통해 인기를 얻었고 ‘새정치’를 기치로 내걸며 정치 행보에 나선 안 후보는 높은 지지를 받으며 무소속임에도 유력한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었다. 문·안 두 후보의 단일화 여부에 따라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와 양강 구도를 이루며 대선 향방이 갈리게 될 터였다.

18대 대선을 앞두고 청년 유권자들이 서울 공평동 안철수 후보 선거캠프 앞에서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와 안 후보의 아름답고 조속한 단일화를 촉구하며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강윤중 기자

18대 대선을 앞두고 청년 유권자들이 서울 공평동 안철수 후보 선거캠프 앞에서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와 안 후보의 아름답고 조속한 단일화를 촉구하며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강윤중 기자

대선 D-50 당일 경향신문에도 “야권 단일화 경쟁 본궤도 올랐다”는 기사가 실렸다. 양측 선대위 관계자들이 단일화 여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어색한 표정을 짓는 사진도 함께 담겼다. 결국 하루 지난 10월31일 문 후보 측이 안 후보 측에 정식으로 단일화를 제안했고, 일련의 과정을 거쳐 문 후보가 단일 후보로 선택됐다. 하지만 단일화는 결과적으로 먹혀들지 않았다. 직선제 이후 대선 후보의 단일화는 대체로 큰 효과를 냈지만 18대 대선에서는 그렇지 못했던 셈이다.

단일화 후보를 누르고 18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박근혜 대통령은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국정농단 사태로 탄핵됐다. 19대 대선은 탄핵으로 조기에 치러져 대선 50일 전까지 주요 정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이 마무리 되지 않은 상황이었으나 탄핵과 촛불시위의 영향으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대세 주자로 평가받았다.

19대 대선 D-50 당일인 2017년 3월20일 경향신문 1면에는 전날 모의개표에 나선 선관위 관계자들의 사진과 함께 “이번 주말이 대선정국 첫 분수령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는 기사가 담겼다. 문재인 대세론이 지속될 것인지, 범보수 진영의 정계개편과 검찰의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가 여론을 움직일 것인지 등이 대선 변수로 꼽혔다. 당시 “문재인 독주 언제까지 갈까”라는 제목의 기사도 실렸는데, 결과적으로 대세론은 대선 당일까지 유지됐다.

19대 대선은 50일 전까지 주요 정당 경선이 마무리되지 않아 후보가 확정되지 않았다. 사진은 경선 후보가 확정된 뒤 서울 여의도 KBS에서 열린 두 번째 대선 TV토론에 앞서 포즈를 취한 대선후보들. (왼쪽부터) 정의당 심상정, 자유한국당 홍준표, 바른정당 유승민,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국민의당 안철수(왼쪽부터) 후보. 경향신문 자료사진

19대 대선은 50일 전까지 주요 정당 경선이 마무리되지 않아 후보가 확정되지 않았다. 사진은 경선 후보가 확정된 뒤 서울 여의도 KBS에서 열린 두 번째 대선 TV토론에 앞서 포즈를 취한 대선후보들. (왼쪽부터) 정의당 심상정, 자유한국당 홍준표, 바른정당 유승민,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국민의당 안철수(왼쪽부터) 후보. 경향신문 자료사진

개헌 이후 8번째 대선인 20대 대통령 선거가 50일 남았다. 대세론 보다는 치열한 경쟁 구도로 진행 중이다. 과거의 풍경은 답을 알려줄 수 있을까. 여전히 정책보다는 ‘정파’와 ‘논란’, ‘정치 공학적 계산’ 등이 앞에 서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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