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법 개정안 ‘국회의원 정수 확대’ 등장…국민 반감 넘을 수 있을까

박송이 기자

국회의장실 산하 자문위서 추가 제안…정개특위서 곧 구체화

국회 본회의장 / 연합뉴스

국회 본회의장 / 연합뉴스

[주간경향] 김진표 국회의장이 선거법 개정안을 두고 국회의원 전원이 토론을 벌이는 전원위원회를 오는 3월 27일부터 2주간 개최하는 안을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는 선거법 개정안을 소선거구제+병립형 비례대표제, 소선거구제+연동형 비례대표제, 도농복합형 중대선거구제+권역별 연동형 비례대표제, 전면적 비례대표제 등 4가지로 추려 논의 중이다. 여기에 더해 지난 2월 23일에는 국회의장실 산하 ‘헌법개정 및 정치제도 개선 자문위원회’가 국회의원 정수를 늘리는 방안을 골자로 한 선거법 개정안을 정개특위에 제안했다.

김진표 국회의장이 제안한 일정을 보면 정개특위에 올라온 안을 바탕으로 오는 3월 중순 복수의 선거법 개정안 초안을 작성한다. 이후 이를 심의할 국회 전원위원회를 구성하고 2주간 전원위원회를 열어 국회의원 전원이 선거법 개정안을 두고 토론을 벌인다. 전원위에서 합의된 선거법 개정안은 정개특위에서 법안을 구체화한 뒤, 법사위를 거쳐 4월 안에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될 예정이다.

국회의원 정수 확대…가능성은?

선거법 개정의 목표는 사표를 줄이고 표의 등가성을 높여 선거결과의 대표성을 높이는 데 있다. 전문가들은 선거법 개정은 비례대표 의석수 확대와 함께 논의해야 한다고 말한다. 중앙선관위 선거연수원에 따르면 한국 국회의 비례의석 비율은 300석 중 47석으로 15.67%다. 독일 50%, 뉴질랜드 41.67% 등에 비해 현저히 낮다.

지금까지 국회의석수 확대는 반대 여론이 높아 선거제 개정과 관련해 논의의 테이블에 오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난 2월 14일 정개특위가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회의원 정수 확대에 찬성하는 의견은 29.1%였고 반대하는 의견은 57.7%였다. 앞서 정개특위에서 추려낸 4개의 선거법 개정안은 모두 국회의원 정수를 현행 300명으로 유지하는 방안이다.

김진표 국회의장 자문위가 제안한 선거법 개정안은 국회의석을 현행 300석에서 350석으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아 화제가 됐다. 김진표 국회의장은 비례대표 의원 정수를 지금보다 50석 늘리는 것을 골자로 한 세 가지 선거법 개정안을 정개특위에 제안했다. 그중 두 개의 안이 지역구 의석수를 253석으로 유지하면서 비례대표 의석수를 지금의 47석에서 97석으로 늘리는 방안이다. 현실적으로 지역구 국회의원들의 반발로 지역구 의석 축소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비례대표 의석수를 확대해 비례성을 강화하자는 취지다. 반대 여론을 고려해 세비 동결을 전제로 했다.

지난 3월 3일 경실련·한국정당학회의 주최로 국회에서 열린 ‘정개특위 결의안에 담겨야 할 원칙과 내용은 무엇인가?’ 토론회에서도 국회의석수 확대가 선거법 개정의 주요 쟁점으로 등장했다. 발제를 맡은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유권자의 선호가 가장 잘 반영된 선거제도로 꼽았다. 그러면서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도입을 위해서는 국회의석수 조정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지역구 투표와 정당투표의 결과를 연계해 정당의 전체 의석수를 결정한다. 예컨대, 정당투표 득표율 상 10석의 의석을 가져야 하는 정당이 지역구 선거에서 12명의 당선자를 배출했다. 초과로 당선된 2명을 낙선시킬 수는 없기 때문에 초과 의석 분(2석)을 고려해 전체 의석수를 다시 조정한다. 이처럼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은 국회의석수 조정을 전제로 한다. 이 외에 지역구 국회의원 수와 비례대표 국회의원 수의 비율도 조정해야 한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채택하고 있는 독일의 경우 전체 의석의 절반을 비례대표에 할당한다.

조 교수는 “정상적인 민주주의가 이뤄진다면 시민을 대표하는 정치인이 많다는 것은 나쁜 점이 아니다”라며 “한국은 다른 민주국가들과 비교해 국회의원 1인이 대표해야 하는 유권자 수가 너무 많다. 경제 수준이나 공무원 규모 등과 관련해 다른 지표들을 비교해도 한국의 국회의원 수는 상당히 적은 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국회에서 국회의석수 확대와 관련한 적극적인 논의는 아직 없는 것으로 보인다. 정개특위 관계자는 “국회의석수 확대를 정개특위에서 진지하게 다루지는 않는다. 대표성을 높이기 위해서 필요하다고 보지만 양당에서는 300석을 유지하는 선에서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병립형 비례대표제, 2016년으로 퇴행?

정개특위가 내놓은 4가지 선거법 개정안 중 ‘소선거구제 병립형 비례대표제’는 20대 총선처럼 지역구와 비례대표를 구분한 뒤, 정당득표율은 비례대표 의원 선출에만 적용하는 방안이다. ‘위성정당’ 창당으로 논란을 빚었던 21대 총선 전으로 돌아가자는 내용으로, 2020년 장제원 의원 등 주로 국민의힘 의원들이 발의했다.

정개특위가 과거의 선거제도를 논의의 테이블에 올린 것에 대해선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하승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는 “20대 총선 모델을 논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은 과거로 퇴행하자는 것”이라며 “정개특위가 이를 논의 대상의 하나로 포함시켰다는 것을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정의당은 아직 선거법 개정안에 대해 뚜렷한 안을 내놓지는 않았지만, 병립형 비례대표제로의 회귀만은 막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의당 관계자는 “민주당에서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에서는 위성정당을 막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총선을 앞두고 국민의힘에서 또 위성정당을 만들 경우 위성정당 건에 대해 사과를 한 민주당으로서는 다시 위성정당을 만들기는 어려울 것이다”라며 “그런 점에서 일부 민주당 의원들의 속내도 병립형으로 가고 싶어한다. 비례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선거제도를 개혁해야 하므로 병립형으로 복귀하는 일만은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정개특위에서 내놓은 4개의 안 중에서 ‘소선거구제+병립형 비례대표제’와 ‘전면적 비례대표제’가 탈락하고 ‘도농복합형 중대선거구제+권역별 연동형 비례대표제’, ‘소선거구제+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논의의 테이블에 올라오리라고 전망한다. ‘전면적 비례대표제’가 비례성을 높이는 방안으로 가장 좋은 평가를 받는 제도이나 국민의힘이 제기하는 ‘소선거구제+병립형 비례대표제’와 간극이 너무 크다는 이유에서다. 결국 가장 적합한 제도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보다는 여야 간 정치적 타협으로 논의가 진행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김진표 국회의장은 4월 안에 선거법 개정은 완료하겠다고 밝혔다. / 문재원 기자

김진표 국회의장은 4월 안에 선거법 개정은 완료하겠다고 밝혔다. / 문재원 기자

‘도농복합형’… 지역소멸 해결 못 해

‘도농복합형 중대선거구제’는 현행 제도를 일부 보수하는 안으로 정개특위의 4개 안 중에서 주요하게 논의될 안으로 거론된다. ‘도농복합형 중대선거구제’는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하되 이를 대도시에만 적용하는 안이다. 대도시는 지역구당 3~10인의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하고 농어촌에는 지금처럼 소선거구제를 유지한다. 지역소멸로 농어촌 인구가 급감하고 있다. 이미 농어촌의 경우 3~5개의 군을 하나로 묶어 선거구를 획정한다. 선거구 범위가 넓은 농어촌의 경우, 선거구를 더 확대하게 되면 지금도 부족한 지역대표성이 더 약화될 우려가 있다는 점을 반영했다.

그러나 심각한 지역소멸 상황에서 농어촌 소선거구제 유지는 오히려 지역정치의 안정성을 저해한다는 반박이 제기된다. 임미애 민주당 경북도당위원장은 “이미 농어촌 지역은 4~5개 지역군을 묶어 선거를 치른다. 지역의 특성에 맞는 후보가 나올 수 없는 구조다. 차라리 중대선거구제를 기반으로 정당 득표율에 따라 선거를 치르면 그 지역의 산업이나 특성에 맞는 농민이나 어민 출신 당선자가 나올 수 있다”라고 말했다. 농어촌의 경우 인구가 급감하다 보니 선거 때마다 선거구가 바뀌는 불안정한 상황도 문제다. 임 위원장은 “지난 총선의 경우 30일 전에 선거구가 바뀌었다. 군위·의성·청송·상주가 원래 하나의 선거구였는데 인구 문제로 상주가 빠지고 영덕이 들어왔다. 선거구가 유지돼야 지역에서 안정적으로 선거를 준비하고 정치활동을 할 수 있는데 그런 구조가 안 된다”라며 “내년 총선도 마찬가지다. 오는 7월 군위군의 대구 편입으로 선거구 획정을 새롭게 해야 한다. 어디에서 선거운동을 해야 할지조차 모르는 상황이다. 농어촌이야말로 안정적으로 중대선거구제를 해야 지역에서 정치인들이 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선거법 개정 논의는 현행 선거제도가 지역소멸 등 한국사회 여러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도농복합형 중대선거구제는 근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이 있다. 이관후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 연구원은 “한국의 대도시들이 비대해져서 수원시의 경우 갑을병정에 이어 무까지 선거구가 나오고 있다. 국회의원과 시의원의 지역구가 똑같은 상황이다. 수도권의 선거구를 키우자는 논리는 충분히 의미가 있다. 그러나 지방에서 소선거구제를 유지하는 것은 해법은 아니라고 본다”라고 말했다. 농어촌 인구 감소가 심각한 상황에서 지역구 간 인구 편차를 2:1로 제한한 현재의 규정도 현실적으로 고민할 필요가 있다. 이관후 연구원은 “지금과 같이 인구 편차를 2:1로 제한한다면 지역의 대표성을 실질적으로 확보해줄 방안도 같이 만들어야 한다”라며 “수도권 집중이 심각한 현상이 계속된다면 수도권 의원은 점점 늘어나고 농어촌을 대표하는 의원 수는 점점 줄어들 것이다. 단순히 선거구만 조정할 것이 아니라 비례대표 의석수를 확대해 권역별 비례대표를 지역에 충분히 배정하는 방안 등도 생각해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충분한 공론화 필요

선거구를 획정해야 하는 법정 시한은 4월 10일이다. 현실적으로 법정 시한을 지키기는 쉽지 않다. 20대 총선, 21대 총선 모두 선거일 한 달 전에야 선거구를 획정했다. 김진표 국회의장이 제안한 선거법 개정안도 법정 시한을 넘긴 4월 28일 본회의 의결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선거법 개정의 성패가 사회적 합의에 달려 있는 만큼 법정 시한에 연연하기보다 충분한 공론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말한다. 선거법 개정이 거대양당의 정치적 합의로만 이뤄질 경우 ‘위성정당’ 사태처럼 부작용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김준우 민변 변호사는 국회 토론회에서 “지난 선거제도 개혁과정을 회고해볼 때, 새로운 선거제도 구축에 있어서 충분한 사회적 합의를 구축하느냐가 선결과제가 될 것”이라며 “그런 차원에서 비록 공직선거법상 논의 시한은 일차적으로 2023년 4월로 돼 있지만, 조금 더 긴 호흡을 가져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민주당은 대선을 앞두고 선거제 개혁을 중심으로 한 정치개혁을 약속했다. 지난 1년여 동안 구체적인 논의가 전무했다. 이관후 연구원은 “국회가 법정 시한을 맞추려고 했다면 지난해 이맘때쯤 지금과 같은 논의를 했어야 한다. 그렇게 1년 정도 깊이 있는 논의를 해왔어야지 법정 시한을 지킨다는 게 의미가 있다”라며 “법의 취지는 생각하지 않고 날짜만 맞추려고 하는 것은 본말전도”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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