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정 연속담화에 담긴 뜻…‘이중기준’ ‘적대시 정책’ 철회 요구하며 남측에 공 넘겨읽음

박은경 기자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전날에 이어 25일 연속 담화를 발표하고 종전선언에 이어 남북정상회담까지 꺼내며 대화재개 가능성을 언급했다.                                                                                                                                                                                                      연합뉴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전날에 이어 25일 연속 담화를 발표하고 종전선언에 이어 남북정상회담까지 꺼내며 대화재개 가능성을 언급했다. 연합뉴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이틀 연속 남북관계 관련 담화를 발표하고 종전선언에 이어 남북정상회담까지 꺼내며 대화재개 가능성을 언급했다. 두번째 담화에서는 유화적 메시지를 강조하면서도, 남측의 ‘이중기준’과 ‘적대시 정책’ 철회에 대한 “눈에 띄는 실천”을 하라며 남측을 향한 요구를 더 분명하게 드러냈다. 북한이 문재인 대통령의 종전선언 제의에 대한 공을 다시 남측으로 넘기면서 정부의 고민도 깊어졌다.

김 부부장은 25일 오후 9시쯤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발표한 담화에서 “의의 있는 종전이 때를 잃지 않고 선언되는 것은 물론 북남공동연락사무소의 재설치, 북남수뇌상봉(정상회담)과 같은 관계 개선의 여러 문제도 건설적인 논의를 거쳐 이른 시일 내에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김 부부장이 24일 오후 1시쯤 낸 담화에서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 제의를 “좋은 발상”이라며 “남북관계 개선”을 언급한 것에 비해 더 구체적인 유화책을 제시한 것이다. “개인적인 견해”라고 전제했지만 김 부부장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동생이고 대외 대남 업무를 총괄한다는 점에서 김 위원장의 뜻으로 해석된다.

김 부부장이 이례적으로 같은 사안에 대해 이틀 연속 메시지를 발표하면서 북한의 의도는 더 분명히 드러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 부부장은 24일 담화에서는 종전선언의 선결조건으로 “지독한 적대시정책, 불공평한 이중기준 먼저 철회”를 언급했는데 25일에는 선결조건을 위한 남조선 당국의 움직임이 “눈에 띄는 실천”으로 나타나야 한다며 조속한 행동을 촉구한 것이다. 미국이 북측에 대화에 나오라고 손짓만 할 뿐 유인책은 제시하지 않는 상황에서 종전선언 등 문재인 정부가 희망하는 조치들을 꺼내놓고 이를 통해 한국 정부가 미국이 대북 적대시 철회를 하도록 압박하게 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홍민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종전선언을 소재로 남북관계 개선 분위기를 만들고 한국의 중재나 설득으로 미국의 적극적인 협상을 유인하는 수순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말했다.

김 부부장의 연속담화가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 제안을 활용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대북정책에 대해 구체적으로 파악하려는 의도란 분석도 있다. 지난 4월 말 대북정책 검토를 끝낸 바이든 행정부는 “정교하고 실용적인 접근”을 하겠다는 것 외에 구체적 방안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미국이 종전선언 논의에 응하는 과정에서 대북정책 방향이 좀 더 드러날 수 있고 북한은 자신들의 요구조건을 제시할 공간도 확보할 수 있다. 반대로 미국이 소극적으로 나온다면 정세 악화 책임을 미국에 돌리는 명분으로 삼을 수 있다.

북한이 김 부부장 담화로 대화재개를 위한 요구사항을 구체화한 것은 향후 남북, 북·미 협상에서 주도권을 차지하려는 포석이라는 시각도 있다. 북측은 특히 남측의 이중기준에 대해 “절대 넘어가줄 수 없다”고 못 박고,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시험발사 등을 하는 남측이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에 대해 “도발”로 매도해서는 안된다고 규정했다.

최근 북한은 한·미 양국이 개발·배치하는 전략 무기를 문제삼으면서 자신들의 무기 개발과 무력 시위를 정당화하고 있다. 이중기준에 대한 반발도 이같은 움직임의 연장선상으로 보인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북한의 ‘이중잣대’ 주장은 핵미사일 개발에 부과된 제재를 무력화하고, 추가 실험을 위한 명분 쌓기를 시도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김 부부장이 “조선반도(한반도)에서 군사력의 균형을 파괴하려들지 말아야 한다”고 언급한 것도 자신들의 핵미사일 개발을 군사력 균형 차원에서 정당화하려는 의도를 드러낸다는 분석이다.

반면 북측은 남측이 철회해야 하는 대북 적대시 정책에 대해서는 자세히 언급하지 않았다. 내용과 주체를 뚜렷하게 밝히지 않는 의도적 모호성으로 향후 협상에서 주도권을 잡으려 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상황에 따라 대남 유화책과 강경책을 선택하는데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김 부부장은 “앞으로 ‘훈풍’이 불어올지 ‘폭풍’이 불어올지 예단하지 않겠다”며 대화와 도발의 가능성을 모두 열어두었다. 남측의 태도에 따라 북한의 입장이 결정될 것이라며 한국의 대북정책 전환을 압박하고 공을 남한과 미국에 넘긴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북한과 대화재개를 위해 미국의 정책전환을 이끌어내야 하는 고민을 떠안게 됐다. 청와대 관계자는 26일 “북한이 제시한 선결 조건들이 많기 때문에, 일희일비 하지 않고 신중하게 접근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미국 국무부는 25일(현지시간) “미국은 남북 대화와 관여, 협력을 지지한다”는 원론적 입장만 밝혔다.


경향티비 배너
Today`s HOT
젖소 복장으로 시위하는 동물보호단체 회원 독일 고속도로에서 전복된 버스 아르헨티나 성모 기리는 종교 행렬 크로아티아에 전시된 초대형 부활절 달걀
훈련 지시하는 황선홍 임시 감독 불덩이 터지는 가자지구 라파
라마단 성월에 죽 나눠주는 봉사자들 코코넛 따는 원숭이 노동 착취 반대 시위
선박 충돌로 무너진 미국 볼티모어 다리 이스라엘 인질 석방 촉구하는 사람들 이강인·손흥민 합작골로 태국 3-0 완승 모스크바 테러 희생자 애도하는 시민들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