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교황에 또 방북 요청…한반도 정세 ‘돌파구’ 찾기

바티칸 | 정대연 기자

유럽 순방 첫 일정…3년 만에 프란치스코 교황 단독 면담

배석자 없이 마주 앉아… 문재인 대통령이 29일(현지시간) 바티칸 교황청을 공식 방문해 프란치스코 교황과 단독 면담을 하고 있다. 교황청 제공

배석자 없이 마주 앉아… 문재인 대통령이 29일(현지시간) 바티칸 교황청을 공식 방문해 프란치스코 교황과 단독 면담을 하고 있다. 교황청 제공

“한반도 평화의 모멘텀”…‘종전선언’ 이어 임기 내 대북 관계 개선 의지
남북·미 대화 교착에 북한의 코로나 방역 등 감안 땐 실현 가능성 낮아
면담 직후 ‘교황·바이든 만남’…간접 3자회동 통해 현안 조율 등 관심

유럽을 순방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29일(현지시간) 첫 일정으로 바티칸 교황청을 찾아 프란치스코 교황과 단독 면담했다. 문 대통령은 교황에게 2018년 10월 면담에 이어 다시 북한 방문을 요청했다. 교황은 “(북한이) 초청장을 보내주면 기꺼이 가겠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10시30분부터 약 20분 동안 바티칸 교황궁에서 교황과 독대했다. 문 대통령은 “교황님께서 기회가 돼 북한을 방문해 주신다면 한반도 평화의 모멘텀이 될 것”이라며 “한국인들이 큰 기대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교황은 “(북한이) 초청장을 보내주면 여러분들을 도와주기 위해, 평화를 위해 나는 기꺼이 가겠다”며 “여러분들(남북)은 같은 언어를 쓰는 형제이지 않으냐, 기꺼이 가겠다”고 말했다.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에서 “한반도 평화에 대한 교황의 지속적 지지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이 교황에게 방북을 요청한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문 대통령은 2018년 교황청을 찾아 교황과 면담했을 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8년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에서 요청한 교황 방북 의사를 전달했다. 당시 교황은 “공식 초청장을 전해주면 좋겠다. 나는 갈 준비가 돼 있다”고 방북 의사를 밝혔다. 교황은 이후 방북 의향과 한반도 평화에 대한 관심과 지지의 뜻을 여러 차례 나타냈다. 이듬해 2월 베트남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뒤 남북 및 북·미 관계가 경색되면서 교황 방북 이슈는 잊혀져 갔다.

북한은 아직까지 교황에게 방북을 공식 요청하지 않고 있다. 남북, 북·미 간 논의가 교착 국면이라 교황 방북이 당장 이뤄질 가능성은 매우 낮다. 교황이 북한에 가겠다고 하더라도 열악한 의료·방역 체계로 코로나19 확산에 민감한 북한이 이를 수용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이 교황에게 방북을 재차 제안하고 교황의 방북 의사를 다시 확인한 것은 꽉 막힌 남북 및 북·미 관계 개선의 실마리를 마련해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으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이 지난달 유엔총회에서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전망에도 불구하고 종전선언을 띄운 뒤 정부가 미국을 비롯한 주변국들과의 관련 논의를 적극 진행 중인 것과 같은 맥락이다. 6개월여밖에 남지 않은 임기 중에 한반도 상황 반전 계기를 다져놓겠다는 것이다.

이날 교황을 면담한 문 대통령을 정의용 외교부 장관,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뿐 아니라 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함께 수행한 것도 한반도 상황을 전환하겠다는 정부의 의지를 보여준다. 통일부 장관이 북한이 아닌 나라와의 정상외교에 동행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교황이 문 대통령과 만난 직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면담 자리에서 한반도 문제와 관련한 진전된 논의가 이뤄졌을지도 관심사다. 한·미 간에는 최근 종전선언 시기와 의미 등을 두고 이견이 노출되고 있다. 청와대는 교황을 고리로 한 ‘간접 3자 회동’을 통해 종전선언, 대북 제재 완화 등에 대한 한·미 간 논의에 진전이 있기를 기대한다. 앞서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지난 27일 MBC 라디오에 출연해 “세 분이 함께 만나는 것은 아니지만, 반걸음이라도 (논의를) 진전시키고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면담 후 교황에게 비무장지대(DMZ) 철거 철조망으로 만든 ‘평화의 십자가’를 선물했다. 문 대통령은 “한국의 허리를 가로지르는 군사분계선이 250㎞에 달한다”며 “그 철조망을 수거해서 십자가를 만든 것”이라고 소개했다. 문 대통령은 또 “다음에 꼭 한반도에서 뵙게 되기를 바라겠다”고 인사했다.

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는 이날 오후 ‘평화의 십자가’ 136개를 전시한 ‘철조망, 평화가 되다’ 전시회가 열리는 로마 산티냐시오 성당을 찾았다. 십자가 136개는 1953년 휴전 이후 68년 동안 남북이 각각 겪은 분단의 고통이 하나로 합쳐져 평화를 이룩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박용만 한국몰타기사단 대표(두산경영연구원 회장)가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권대훈 서울대 조소과 교수가 작품을 제작했다. 전시회는 통일부 주관으로 이날부터 다음달 7일까지 열린다.

문 대통령과 교황은 코로나19, 기후변화 등 인류가 당면한 글로벌 현안에 대해서도 의견을 교환했다. 문 대통령은 파롤린 교황청 국무원장과도 면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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