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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정 페이스북 계정 사칭이었다읽음

정용인 기자

노동신문 보도문 짜깁기… 메타 측, 본지 취재 후 계정 삭제

김여정 페이스북.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Kim Yo Jong” 공식계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프로필사진 위 커버사진은 최근 북한 주요행사에서 자주 등장하는 항공육전대의 공수낙하 사진을 사용하고 있다. /페이스북 캡처

김여정 페이스북.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Kim Yo Jong” 공식계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프로필사진 위 커버사진은 최근 북한 주요행사에서 자주 등장하는 항공육전대의 공수낙하 사진을 사용하고 있다. /페이스북 캡처

[주간경향] “사실 여부를 떠나 확인해드리기 어렵습니다.”

지난 10월 31일 통화한 국정원 대변인실 관계자의 말이다. “국정원 입장에서는 똑같은 답변을 해드릴 수밖에 없어요. 이해바랍니다.”

기자가 우연히 김여정의 페이스북을 보게 된 것은 약 한 달 전이다. 흥미로웠다. 그는 이미 ‘인싸’였다. 기자와 ‘페친(페이스북 친구)’을 맺고 있는 사람도 이미 스무명 넘게 그와 페이스북 친구을 맺었다.

김여정? 그 김여정 맞다. 북한 김정은의 여동생.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이자 중앙위원회 부부장.

그의 게시물 중 기자의 시선을 먼저 끌었던 건 지난 10월 10일 포스팅한 방 사진이다. 아무런 표시 없이 ‘10.10’이라고만 적혀 있다. 10월 10일은 북한에서는 ‘조선로동당 창건일’로 공휴일이다. 김여정 페이스북에서 방 사진이 올라온 건 오후 4시 45분. 그런데 사진 속 벽에 걸려 있는 시계는 7시 47분쯤이다. 뜬금없는 방 사진의 의미는 무엇일까.

본격 취재를 결심한 건 10일 뒤 올린 김정은의 뒷모습 사진이다. 얼핏 공개된 적 없는 근접사진으로 보였다. 실제 구글렌즈 등으로 검색해봐도 걸리는 사진이 없다. 사칭으로 만든 계정이라면 나올 수 없는 ‘진짜 김정은 사진’이 확실했다. 김여정은 정말로 저 페이스북을 운영해 왔던 걸까.

기자는 노동신문 등 북한 공식매체에 해당 사진이 게재된 사실이 있는지 여부의 확인을 국정원에 요청했다. 돌아온 답이다. “조선중앙통신사 라이선스를 받아 국내에 제공하는 언론사가 있는 것으로 안다. 사진 확인도 답변하기는 어렵다.” 국정원 측은 “통일부에 문의하는 것이 빠를 것”이라고 했다.

김여정 공식계정이라고 주장하는 페이스북 계정에 지난 10월 20일 올라온 김정은 뒷모습 사진. 10월 13일 조선중앙통신/노동신문에 게재된 ‘미사일시험발사 현지지도’ 사진을 편집한 것이었다. /페이스북 캡처

김여정 공식계정이라고 주장하는 페이스북 계정에 지난 10월 20일 올라온 김정은 뒷모습 사진. 10월 13일 조선중앙통신/노동신문에 게재된 ‘미사일시험발사 현지지도’ 사진을 편집한 것이었다. /페이스북 캡처


페이스북 공개 ‘김정은 뒷모습’ 사진 진실은

김여정 명의의 페이스북 진위 논란이 처음 나온 건 아니다.

보도를 찾아보니 올해 1월, 지난해 7월에도 논란이 있었다. 당시 보도는 “누군가 사칭해 만든 계정일 것”이라는 데 무게가 실렸다. 올 1월 보도는 조금 뉘앙스가 달라졌다. 매일 꾸준하게 체크하고 있다는 한 북한 전문가는 “오랫동안 내용을 살펴보았는데 북한 학자로서 그 내용이 도움이 되기도 하고, 일상적인 기조도 잘 나타나 있다. 일상뿐만 아니라 중요한 메시지도 김여정 부부장이 아니고선 쓸 수 없는 내용도 많다”라면서도 “김여정이 직접 운영하는지 여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굳이 해석하자면 한국이나 다른 나라의 정치인들이 운영하는 SNS도 본인의 활동을 담고 있을 뿐 실제 운영은 다른 사람이 하는 것과 마찬가지 아니냐는 설명이다.

“계정의 진위 여부는 확인해드릴 내용이 없다. 말씀하신 사진을 체크해봤는데 보도된 사진이다.”

통일부로부터 이틀 만에 돌아온 답변이다. 보도된 사진이라니? 통일부 당국자의 말을 듣고 확인해보니 사실이었다. 지난 10월 13일 노동신문에 보도된 전날 ‘장거리전략순항미싸일시험발사 현지지도’ 사진이었다. 위 김여정 페이스북에 올라온 사진이 ‘아마추어가 휴대전화로 찍은 B컷 사진’처럼 보였던 것은 왼편의 미사일 발사 장면과 하단의 조선중앙통신 마크를 잘라냈기 때문이다. 구글렌즈 등에서 검색되지 않았던 것도 원본사진을 ‘크로핑(잘라서 편집)’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사진은 그렇다 치고 올린 글들은? 10월 29일 금요일 오후 9시 39분에 올린 “오늘은 정말 춥네요. 겨올이 성큼 다가온 것 같은 날씨가”(겨울을 겨올로 적고 있다)와 같은 단문은 출전이 없으니 계정운영자가 직접 작성한 것으로 보이지만, 긴 분량의 글 대부분은 출처가 노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 ‘아리랑협회 메아리’ 등이다. 여기에 올라간 기사 중 일부 대목을 따다 붙인 것으로 확인된다.

예컨대 10월 30일 일요일 오후 1시에 올린 “평양시의 곳곳에 군밤, 군고구마의 구수한 향기와 시민들의 웃음소리가 넘쳐나 가을 정서를 더해주고 있다(…).”와 같은 글은 평양시 시민의 일상생활을 전하기 위해 직접 작성한 글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같은 날 조선중앙통신의 ‘가을의 정서를 더해주는 군밤, 군고구마 향기’라는 보도의 일부분을 가져다쓴 내용이다.

11월 3일에 올린 “성격은 매 사람에게 고유한 사상 정신적 특징과 그의 개성적 표현이다. 세살적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있듯이…” 글도 얼핏 직접 작성한 소소한 게시글처럼 보이지만 역시 찾아보면 같은 날 노동신문에 실린 ‘본사 기자 명주혁’ 명의의 ‘성격도 다듬기탓이다’는 보도 글이다.

지난 한 달여 올라온 페이스북 게시글과 원본 글을 비교해보면 보통 북한의 보도는 김정은의 교시 등을 인용하고 전개하는 데 비해 페이스북 글은 출처표기 없이 원본의 특정 대목을 부분적으로 따서 붙이는 방법을 사용해 마치 새로 직접 작성한 듯한 착시를 불러일으킨다.

지난 한 달여간 페이스북 김여정 계정에 올라온 글들의 출처를 확인해본 결과 대부분 노동신문, 조선중앙통신, 메아리의 글들을 출처표기 없이 부분 편집해 가져다 붙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빨간색으로 표시한 게시물은 출처없이 쓴 단문 글들.

지난 한 달여간 페이스북 김여정 계정에 올라온 글들의 출처를 확인해본 결과 대부분 노동신문, 조선중앙통신, 메아리의 글들을 출처표기 없이 부분 편집해 가져다 붙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빨간색으로 표시한 게시물은 출처없이 쓴 단문 글들.

이영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북한연구센터장은 “페이스북 자체는 가짜로 보이는데 북한의 김여정이나 북측 정권 인사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라며 “그렇지만 아직까지 북한 고위층 핵심인사들이 직접 SNS를 운영하기에는 제약되는 면이 많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센터장에 따르면 김여정 명의로 발표되는 담화를 보면 심각한 내용을 다루더라도 SNS나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에서 공유되는 말투가 은연중에 발견된다. “결국 외국에서 유행하는 문물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말인데, 김여정 본인이 김정은에게 어드바이스하는 데 참조가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 아닐까 싶다.”

강진웅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북한학과 교수도 “과거라면 페이스북이 ‘미제’의 것이니 가입해 글 쓰는 것을 금기시했겠지만 어쨌든 현실을 조금씩 인정하며 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김정은도 그렇고 김여정은 더더욱 그럴 수 있다. 만약 김여정이 직접 운영한다고 하더라도 이례적인 사건이라고만 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최근 유튜브 동영상을 적극 게재하는 것처럼 김정은 집권 이후에 선전 자체가 많이 달라졌다”라며 “김여정 명의의 페이스북은 누가 장난을 친 것일 수도 있고, 진짜일 수도 있는데 면밀히 시간을 두고 들여다볼 필요는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여정 페이스북은 자신의 프로필에 ‘공식계정 Kim Yo Jong’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 페이스북 측은 실제 본인이 쓰는 것이 확인된 경우 공식계정을 뜻하는 ‘블루배지’를 부여한다. 김여정 계정엔 블루배지가 없다. 만약 사칭계정이라면 개설된 뒤 2년 넘게 방치하고 있는 페이스북 측의 문제는 없을까.

페이스북 측 “본인 사용 여부 확인 뒤 조치”

사칭계정 여부 확인요청에 메타코리아(구 페이스북코리아) 측은 “대부분의 사칭계정은 알고리즘 AI 필터링을 통해 90% 이상 사전단계에서 걸러내며 아시아권에서만 걸러내는 계정이 일주일에 400만건”이라면서도 “99%를 사전에 걸러낸다고 하더라도 1%만 놓쳐도 수량이 만만치 않은 것이 사실”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문의한 김여정 페이스북 계정의 경우 오랫동안 운영돼왔고, 그 과정에 혹 원치 않는 사용자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에 본사 관련 팀에 문의해 조속히 확인·조치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메타 측은 “북한은 제재 대상 국가라 비즈니스 관계가 없다”라며 “접속국가별로 월별 활성사용자 통계를 발표하는데 북한 관련 접속공식통계는 집계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주간경향 취재 마감 후 메타 측은 11월 3일 오후 7시쯤 이 계정을 삭제했다. 해당 주소로 들어가면 “현재 이 콘텐츠를 이용할 수 없다”는 메시지가 뜬다. 메타코리아 관계자는 “기자님께서 얼럿(alert)을 주신 바에 따라 본사 콘텐츠 관리팀에 문의했고 오후 7시 조금 못미치는 시각에 본사로부터 사칭계정으로 확인되어 조치를 취했다는 회신을 받았다”라며 “사칭계정은 즉시 삭제한다는 커뮤니티 기준에 따라 처리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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