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전쟁 1년

미·러 신냉전 체제로 인식해 ‘핵무력 폭주’ 정당화…“우크라 전쟁 후 외교적 승자는 북한”

박광연 기자

동북아 정세에 끼친 영향

북한이 지난 8일 인민군 창건 75주년을 맞아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연 열병식에서 고체연료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추정되는 신무기를 공개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북한이 지난 8일 인민군 창건 75주년을 맞아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연 열병식에서 고체연료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추정되는 신무기를 공개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국제 제재로 고립됐던 북한
러시아서 손 내밀자 ‘활로’
ICBM 발사·전술핵 훈련…
주변국 의식 않고 ‘핵 고도화’
전쟁 장기화 땐 득실 불투명

유럽에서 발발한 우크라이나 전쟁은 지난 1년간 동북아시아 정세도 뒤흔들었다. 북한이 핵무기 보유를 정당화하며 핵무력을 급속히 고도화하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북한은 미국과 대립하는 러시아와 중국의 비호로 추가 제재를 회피하는 등 핵 개발의 호기를 맞았다. 이번 전쟁을 통해 가장 큰 외교적 성과를 거둔 국가는 북한이라는 평가까지 나온다.

북한은 ‘신냉전’을 주장하며 러시아에 바짝 밀착하고 있다. 하지만 ‘아시아판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라 부르는 한·미·일 협력을 바탕으로 한 군사 블록 형성은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우크라전 이후 ‘북핵 폭주’

러시아가 지난해 2월2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직후부터 북핵 위기는 급격히 심화됐다. 같은 해 3월24일 북한은 동해상으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했다. ‘핵실험·ICBM 발사 모라토리엄(유예)’을 약 4년 만에 파기했다. 9월 핵무력 법제화 선언, 10월 전술핵 운용부대 훈련, 11월 화성-17형 ICBM 발사 그리고 이달 열병식에서 고체연료 ICBM 공개 등 핵무력 고도화 작업이 계속됐다.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이런 움직임에 영향을 미쳤다고 한목소리로 말한다. 우크라이나가 소련 해체 당시 핵을 포기한 결과 ‘제국주의적 침략’을 당했다고 판단한 북한이 핵 보유에 더욱 집착하게 됐다는 것이다. 러시아가 핵을 갖고 있기 때문에 미국이 직접 전쟁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보고 대미 핵무력 개발의 정당성을 강화했다는 시각도 있다.

국제사회의 각종 제재로 고립된 북한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외교적 활로를 다소 확보했다. 러시아는 반미 국가인 북한과 적극적으로 연대했다. 미국과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도 북한에 더욱 우호적으로 다가왔다. 북한의 전략적 가치와 위상을 재평가한 셈이다.

지난해 북한 ICBM 발사 등을 계기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차원의 제재가 추진됐지만 상임이사국인 중·러 반대로 번번이 무산됐다. 현승수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번 전쟁으로 가장 큰 외교적 성과를 거둔 나라는 북한”이라며 “중·러가 거부권을 행사해주니 안보리 차원의 (북한 규탄) 의장 성명조차도 미국과 서방이 마음대로 못하는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21일 미·러 핵무기 통제 조약인 신전략무기감축협정(뉴스타트) 참여 중단을 선언하는 등 핵 위협을 강화하는 상황은 북한에 힘을 싣는 것으로 평가된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러시아가 핵 사용을 시사하며 1968년 구축된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가 흔들리고 있다”며 “핵 보유국으로 인정받으려는 북한에는 호재”라고 말했다.

■‘신냉전’ 외치는 김정은

북한은 미·중, 미·러 패권 경쟁이 강화되는 현 국제 정세를 신냉전 체제로 인식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올해 1월1일 공개된 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6차 전원회의 보고에서 “국제관계 구도가 신냉전 체계로 명백히 전환되고 다극화의 흐름이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이러한 판단은 더욱 강화된 모습이다. 반면 전문가들은 신냉전 체제로 단정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김 위원장 심리에는 정치·군사적 의도가 담긴 것으로 해석된다. 한반도 주변 ‘북·중·러 대 한·미·일’ 대치 구도에 편승해 핵무력 고도화의 정당성을 만들려 한다는 평가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북한에 호재로만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과 서방을 중심으로 러시아에 반대하는 국가들이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매개로 정치·군사적 결속을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 연구위원은 “한·미를 상대하기도 힘든데 일본 등 더 많은 미국 동맹국들이 연합하면 어려운 환경이 된다”고 말했다.

북한이 러시아를 지지하면서도 러시아와의 무기거래설에는 적극적으로 선을 긋는 것도 전쟁에 대한 부담을 나타낸다. 북한 당국은 지난해 9월부터 네 차례 담화를 내 미국 당국발 ‘북·러 무기거래설’을 사실무근이라고 비판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향후 미국과의 협상 등 관계 개선을 고려하면 돌이키기 어려운 정도로 러시아와 유착을 보이는 것은 북한에 굉장히 부담스러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의 승리는 북한이 바라는 최상의 결과다. 박 교수는 “러시아가 승리해 기존의 국제 질서를 훼손하는 것이 북한 입장에서는 훨씬 유리하다”고 말했다.

전쟁 지속을 원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현 위원은 “장기화 국면으로 들어가면 러시아는 북한을 더 필요로 할 것”이라며 “그때는 러시아가 대놓고 북한에 식량과 물자를 제공해 (무기 등과) 맞거래하려고 할 것이기에 북한은 손해볼 게 없다”고 말했다. 반면 전쟁 장기화는 북한에도 부담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홍 실장은 “전쟁 장기화는 러시아의 국력 쇠퇴와 미국의 패권 강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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