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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까기’ 김정은의 살림집 선물 정치읽음

박은경 기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보통강 강안 다락식 주택구 건설사업을 현지지도하며 행정구역 명칭을 ‘경루동’이라고 할 것을 지시했다고 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지난달 21일 1면에 보도했다. |뉴스1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보통강 강안 다락식 주택구 건설사업을 현지지도하며 행정구역 명칭을 ‘경루동’이라고 할 것을 지시했다고 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지난달 21일 1면에 보도했다. |뉴스1

북한의 최고 지도자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일거수일투족은 항상 전세계적 관심사다. 어디를 가든 혹은 어딘가에 나타나지 않든, 살이 찌든 아니면 ‘살까기’(다이어트)를 하든 어쨌든 이에 대한 수많은 뉴스와 분석이 쏟아진다.

모든 언행에 정치적 메시지를 담아내는 김 위원장이 올해 세 번이나 방문한 현장이 있다. 지난달 21일 김 위원장은 평양 도심 보통강 강변에 조성 중인 테라스형 고급주택 단지 건설 현장을 현지지도 했다. 무려 22일 만에 공개 활동이다. 우산까지 직접 받쳐 들고 건설 현장을 꼼꼼히 둘러본 김 위원장은 아름다운 구슬 다락이라는 뜻의 ‘경루동’이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지난 3월과 4월에도 같은 현장을 찾은데 이어 3번째 방문이니 그만큼 각별한 관심을 두고 있다는 의미다.

이곳 부지는 김일성 주석이 1970년대 주석궁(현 금수산태양궁전)으로 옮기기 전까지 살았던 ‘5호댁 관저’가 있던 곳이다. 행정구역상으로 만수동이나 서문동(옛 신양동)에 가까운 명당 중의 명당인데, 김 주석의 관저였던 곳이라 주변에 주택이 없었다. 그런데 김정은 위원장이 이 곳에 800세대 규모의 주택 단지를 조성해 각 부문의 공로자와 과학자, 교육자, 문필가를 비롯한 모범 근로자에게 선물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것이다.

초호화 주택을 선물해 충성심을 이끌어 내는 ‘살림집’ 선물 정치는 북한의 오랜 통치 수단이다. 특히 김정은 위원장은 집권 초기부터 최고급, 초고층 살림집으로 민심을 다독이고 치적을 쌓는데 집중해왔다.

집권 첫 해인 2012년에는 평양 중심부 만수대거리 창전거리에 살림집 10만호를 건설했다. 20층에서 45층까지 높이의 14개동으로 이뤄진 이 단지는 김일성 주석 100회 생일(4월15일)을 맞아 조성됐다. 노동자들을 위한 살림집으로 조성해 ‘북한판 뉴타운’이라고도 부른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리설주 여사가 2012년 9월 창전거리에 입주한 주민 집을 찾았다. 김 위원장은 무릎에 아이를 앉힌 채 웃으며 얘기하고 있다. 경직된 아이의 표정과 대비된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리설주 여사가 2012년 9월 창전거리에 입주한 주민 집을 찾았다. 김 위원장은 무릎에 아이를 앉힌 채 웃으며 얘기하고 있다. 경직된 아이의 표정과 대비된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그해 9월 김정은 위원장은 리설주 여사와 창전거리에 새로 입주한 평양기계대학 교원, 노동자, 신혼부부 가정 등을 찾아갔다. 리설주 여사는 직접 만든 음식까지 가져갔고, 김 위원장이 방바닥에 주저앉아 아이를 무릎에 앉힌 채 얘기하는 등 애민 지도자 이미지를 심었다. 북한에서는 집들이 선물로 성냥을 주는데, 김 위원장은 “성냥만 들고 올 수 없었다”면서 성냥에 술, 그릇까지 선물했다. 이 곳에는 대중을 위한 빵·커피전문점 ‘1호’도 개업했다. 창전거리에 있는 해맞이식당에는 일반 주민을 대상으로 한 베이커리카페가 들어섰는데 맞춤형 ‘생일빵’(케이크)도 판매했다.

김 위원장은 특히 과학자들을 위한 살림집(아파트) 건설에 집중해왔다. “과학자 기술자 위해 아낄 것 없다”면서 2013년에는 은하과학자거리, 2014년에는 위성과학자주택지구를 건설했다. 위성과학자주택지구에는 아리랑 상표의 42인치 풀 LED TV를 선물했다.

2014년 40여일 간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며 숱한 ‘설’을 만들어내던 김정은이 왼손에 지팡이를 짚고 나타난 곳도 위성과학자주택지구 현장이었다. 그만큼 공을 들인 셈이다.

41일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4년 10월 지팡이를 짚고 완공된 위성과학자주택지구를 현지지도에 나섰다.                                                                                                                                                                                                                       연합뉴스

41일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4년 10월 지팡이를 짚고 완공된 위성과학자주택지구를 현지지도에 나섰다. 연합뉴스

2015년에는 대동강변에 미래과학자거리가 들어섰다. 53층 초고층 아파트를 포함한 19개 동의 주택단지에 4D 영화관인 ‘입체율동 영화관’, 창광상점을 포함한 상업 편의시설 150여 개가 갖춰졌다. 김 위원장은 미래과학자거리를 “세상에 내놓고 자랑할만한 건축물이자 기념비적 창조물”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노동당 창건 70돌(10월10일)에 맞춰 완공을 서두르다보니 골조 공사가 60여일만에 끝났다. 이는 창전거리 건설 때보다 2배 빠른 속도다. 이 때문에 부실 공사 의혹도 일었다.

북한전문매체 데일리NK는 미래과학자거리 살림집에 전기 공급이 제대로 안돼 10층 이하는 승강기를 이용하지 말라는 공지가 내려올 정도로, 난방과 온수공급도 잘 안돼 내부가 냉장고처럼 꽁꽁 얼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입주 자체를 꺼리거나 입주 시기를 봄으로 미루고 있다고 보도했다.

‘제2의 미래과학자거리’로도 불리는 려명거리는 2017년 완공됐다. 3㎞ 길이의 려명거리 입구에는 김일성종합대학의 교직원 전용 고층 아파트들이 있고,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태양궁전과 영생탑 등 평양의 대표적인 건축물들이 이 거리를 따라 이어지는 평양의 랜드마크다.

이 같은 살림집 정치는 무상으로 주택을 제공한다는 점을 부각시켜 사회주의 체제를 선전하는 수단이 된다. 집과 땅을 사고파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줄 수 없는 혜택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현재 보통강 다락식 주택을 비롯해 평양시 1만 세대 살림집, 검덕지구 살림집을 건설 중에 있다. 김일성 주석이 내세웠던 ‘이밥에 고깃국, 비단옷에 기와집’이라는 이상은 김정은 시대에 들어 ‘평양 고층아파트에 살면서 아리랑 대형LED TV로 뉴스를 보고, 빵·커피전문점과 4D 영화관을 누리는 것’으로 대체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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