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혁신위원장 이준석 스펙 좋은 ‘젊은 피’인가, ‘치기 어린’ 정치공학자인가

원희복 선임기자

우리 정치문화의 특징 중 하나가 바로 ‘정치인 물갈이’다. 국민은 끊임없이 새로운 정치인을 갈구한다. 선거를 앞두고 여론조사를 하면 ‘바꾸겠다’는 응답이 높고, 실제 다선 국회의원을 쉽게 용납하지 않는다. 이에 부응하기 위해 각 정당은 참신한 인물을 찾느라 혈안이다. 정치권에서는 새로운 인재를 수혈하는데, 이를 보통 ‘젊은 피’라고 표현한다. 늙은 정치권에 신선함을 수혈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피’라는 뉘앙스가 가지는 ‘뜨거움’ 혹은 ‘열정적’이라는 의미가 크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 정치사가 워낙 억압과 투쟁의 굴절된 역사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우리 정치에서 열정과 가슴은 사라지고, ‘스펙’과 ‘기능’을 더 중요시하는 시대가 됐다. 물론 우리 세상사, 대학도 그렇게 변했다. 열정과 가슴, 뜨거움 같은 단어는 과거 독재와 반독재 시대에나 필요했던 정치인의 자질로 치부되는 시대가 됐다. 정치인 충원도 과거 뜨거운 가슴의 운동권 출신에서 스펙 좋은 명문 유학파로 바뀌었다.

스펙 좋은 유학파 출신의 ‘박근혜 키드’

그런 시류의 상징적인 인물이 바로 이준석 새누리당 혁신위원회 위원장이다. 그는 서울과학고와 미국 하버드대에서 컴퓨터과학을 전공했다. 대학 졸업 후 귀국해 벤처사업을 하다 지난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에 전격 영입됐다. 당의 비상대책위원으로 박근혜 정권 창출에 큰 기여를 했다. ‘박근혜의 남자’ ‘박근혜 키드’(그는 스스로를 이렇게 소개했다)라는 별명도 얻었다.

그는 박근혜 정권 창출에 성공했지만 정치판을 떠났다. 그는 ‘배움을 나누는 사람들’(배나사)이라는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무료로 공부를 가르치는 봉사단체의 대표교사로, 또 클라세스튜디오라는 벤처기업을 운영한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러나 지난해 6월 당 혁신작업을 총괄하는 혁신위원회 위원장으로 정치에 복귀했다. 나이나 연륜에 비해 큰 감투인 것만은 분명하다. 최근 라디오의 고정출연자로, 특히 종합편성 TV에 단골로 출연하면서 ‘말발’을 키우더니 올 1월에는 <조선일보> 고정 칼럼니스트가 되는 등 언론에서도 잘나갔다.

하지만 이 혁신위원장의 잘나가던 행보는 단번에 제동이 걸렸다. 지난 12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문건 파동 배후는 K, Y. 내가 꼭 밝힌다, 두고 봐라, 곧 발표가 있을 것’이라는 글이 적힌 수첩이 공개된 것이 계기가 됐다. 문제는 이 말을 김 대표에게 전달한 사람이 이 위원장임이 드러난 것이다. 술자리 얘기까지 고자질하느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이 발언의 출처로 지목된 음종환 청와대 행정관과 낯뜨거운 진실공방까지 이어졌다.

이 난장판에서 이 위원장이 과연 정치권에 신선함을 수혈하고 또 당을 혁신할 수 있겠느냐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사실 그는 젊은 나이에 정치권에 영입돼 그에 대한 정보도 적고, 특히 검증도 소홀했다. 이는 그가 실제 공직을 맡지 않아서이기도 하다.

그는 1985년생으로 올해 만 30세다. 이 위원장은 “정치인은 되지 않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국회의원 인턴을 하면서 한 보좌관으로부터 “나중에 뭘 해도 생계형 정치인은 되면 안 돼”라는 말을 듣고 정치에는 관심을 싹 끊었다는 말이었다. 자신은 정책에 관심이 있지 정치에는 관심이 없다는 설명도 뒤따랐다.

하지만 그의 행보를 보면 말과는 조금 다른 것으로 보인다.

이준석 새누리당 혁신위원장 / 이상훈 선임기자

이준석 새누리당 혁신위원장 / 이상훈 선임기자

‘노무현 장학금’의 첫 수혜자

그는 서울과학고 시절 학생회 부회장으로 활동하면서 정치적 감각이 매우 뛰어났다고 한다. 학교에서 쓰던 컴퓨터가 오래돼 기능이 떨어지자 그는 아시안게임에 협찬한 컴퓨터 회사에 ‘협찬 때 썼던 중고 컴퓨터를 기증해 달라’는 제안서를 보냈고, 협상을 통해 수천만원어치 컴퓨터를 기증받았다. 정치적 감각과 추진력을 엿볼 수 있다.

그는 서류전형으로 미국 하버드대학에 진학했다. 그리 부유하지 않은 그에게 졸업할 때까지 30평대 아파트 한 채를 날려야 하는 비싼 등록금이 문제였다. 하지만 그는 운이 좋았다. 미국 명문대 입학생에게 주는 4년 전액 대통령 장학금인 이른바 ‘노무현 장학금’이 생겼고 그가 첫 수혜자가 된 것이다.

그는 ‘노무현 키드’의 길을 걸을 수도 있었지만 그의 선택은 ‘박근혜 키드’였다.

유학자격 시험인 SAT 점수가 하버드대는 1600점 만점에 평균 1580점 수준이다. 그러나 그는 SAT 점수가 1440점에 불과했다. 이런 점수에도 그가 하버드에 입학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에세이를 잘 썼기 때문이다. 그는 “내 에세이를 입학사정관 3명 모두가 체크해 하버드대에 합격했다”고 말했다.

그 에세이에도 그의 정치적 야망이 잘 드러난다. 그의 에세이는 중국의 정치지도자 후진타오의 예를 들면서 동양에서 물(댐)을 잘 다스리는 사람이 정치지도자가 되는데 한국도 그렇게 될 것이라며 과학고를 나온 이공계 출신인 자신이 그렇게 되고 싶다는 내용을 담았다.

하버드대에 다니며 그는 컴퓨터를 수리하는 시간당 10달러짜리 아르바이트를 했다. 이는 그가 하버드대학교에서 친구와 어울리지 못하고 인맥을 쌓지 못한 일종의 ‘한’으로 남아 있다. 보통 미국 아이비리그에 진학한 한인 학생들이 대학원까지 진학하지만 그는 대학만 졸업하고 귀국했다. 그가 “사학재단을 만들어 저소득층을 위한 과학고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힌 것도 ‘가난한 미국 명문대 졸업생’의 회한 때문으로 풀이된다.

귀국한 그는 기업체에 취직, 돈을 벌면서 군대문제를 해결했다.(병역문제는 나중에 논란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2004년 6월부터 8월까지 2개월 동안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 인턴으로 일했다. 그는 벤처기업을 창업, 클라세스튜디오 대표라는 직함을 가지고 있다. 프랑스어와 영어가 결합된 상호에다 본인도 평소 벤처회사라고 말해왔지만 실상은 벤처라고 할 것도 없는 회사다.

이 회사는 각종 자격시험 문제지를 인터넷으로 회원들에게 파는 일을 한다. 운전면허 시험지에서 바리스타 문제지, 한국사 능력검정시험, 굴삭기운전기능사, 공조냉동기계산업기사, 소방설비기사 등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필기시험 문제지를 모아 유료회원에게 제공하는 수준이다.

보유한 시험과목도 80여개에 불과하다. 회사 고객센터에 전화를 해도 ‘전화기 전원이 꺼져 있거나 인터넷에 연결돼 있지 않다’는 기계음만 나올 뿐이다. 회사 고객센터가 전화를 받지 않을 정도라면 어느 정도 수준의 회사인가를 가늠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이준석 위원장은 “분명 직원이 근무했다”며 “인터넷 전화는 가끔 통신이 끊기기도 한다”고 말했다.

오히려 그는 방송 출연으로 더 세상에 알려졌다.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도 열심히 한다. 페이스북에 “강적들 어제 시청률 4.5% 연내 4% 달성 목표는 도달했다” “결의했던 게 라디오스타를 무찌르자였는데 이제 가시권에 들어온다” 등 회사보다 자신이 출연하는 종편 시청률에 더 신경을 쓰는 글이 많이 보인다.

그가 트위터나 페이스북, 그리고 종편 등에서 한 글과 발언을 종합해 보면 ‘나이에 비해 매우 보수적인 현실론자’라고 규정할 수 있다. 무상급식을 반대하고, 심지어 철거민들을 ‘미친 놈’이라고 표현한 대목도 있다. 또 과학고를 나와 컴퓨터과학을 전공한 ‘이공계 출신’답지 않게 논리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댓글)도 많다. 광우병, 천안함, 구제역, 원전 등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과학자들에게 ‘정치과학자’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나이에 비해 매우 보수적인 현실론자

그는 ‘머리만 좋은 미국유학생’답게 약자에 대한 배려나 사회적 문제의식을 의미있게 내보인 적은 별로 없다. 어려움을 겪고 일찍 자수성가한 이명박 전 대통령(MB)의 축소판을 보는 느낌이다. 실제 이 위원장도 이 전 대통령의 어법을 높이 평가하면서 “‘해봤는데’ 어법을 비판하는 사람은 과연 찢어지게 가난해본 적이 있는가?”라는 글을 쓰기도 했다.

이 위원장은 “정치인이 되지 않겠다”는 공언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젊은 나이에 성공적으로 정치권에 안착했다. 술자리 얘기를 김무성 대표에게 ’고자질‘한 것도 “차기 총선에 나서기 위해 당대표에게 줄을 선 것 아니냐”는 말들이 나온다.

어쨌든 고자질 논란으로 그에 대한 이미지가 급속도로 나빠진 것은 분명해 보인다. 시사평론가 양영태 자유언론인협회장은 “소년 급제한 이준석이 정치적으로 미숙한 정치공학적 머리 굴림으로 인하여 빚어진 엄청난 저급 정치사건”이라고 혹평했다. 친이계 장제원 전 한나라당 의원도 “소년 출세한 사람의 정치적 미성숙에 의해 빚어진 폐해를 단면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원세·방세연구소> 정순훈 소장은 “최근 이준석 위원장의 행태 역시 권력을 지향하는 충성경쟁의 도중에서 벌어진 일”이라며 “이 위원장이나 음종환 행정관, 문고리 3인방 모두 중국 <전국책>에 나오는 ’상옹‘(桑雍·뽕나무 속의 벌레)에 해당되는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상옹은 뽕나무를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속으로 병들게 해 죽게 한다는 의미이다. <전국책>이란 옛날 중국 춘추전국시대 전략가들의 책략을 모은 책이다. 여기서 주변에 간신을 둔 왕과의 대화에서 한 책사는 “무릇 상옹이란 바로 측근과 부인, 그리고 나이 어린 미녀들”이라며 “일월(해와 달)도 그들의 겉만 비치고 있어 숨어 있는 화근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준석 새누리당 혁신위원장이 2013년 5월 한 케이블 TV 예능프로에 출연하고 있다. / tvN 제공

이준석 새누리당 혁신위원장이 2013년 5월 한 케이블 TV 예능프로에 출연하고 있다. / tvN 제공

이준석·음종환 ’진실게임‘

이준석 위원장과 음종환 행정관은 이 사건의 사실관계를 놓고 진실게임을 벌였다. 두 사람은 각자 다른 창구(언론)를 통해 자신의 주장을 폈다. 그러다 보니 사실관계가 서로 혼동이 되고 일부 언론의 과잉보도까지 겹쳐 ’진흙탕‘이 됐다. 두 사람의 주장을 문답식으로 정리한다.

이준석 “’문건 파동 배후는 K, Y. 내가 꼭 밝힌다. 두고 봐라. 곧 발표가 있을 것‘이라는 김 대표의 수첩 글은 음종환 행정관이 김 대표(K)와 유 의원(Y)을 지목한 발언이다.”

음종환 “술자리에서 김무성 대표와 유승민 의원을 배후로 지목한 적이 없다. 조응천 전 비서관이 문건 유출 배후다. 조 전 비서관은 김 대표와 유 의원에게 줄을 대 배지를 달려는 야심밖에 없는 사람이라고 했다.”

이준석 “맨정신에 언쟁이 길게 오갈 정도였기 때문에 관련 발언을 오해하거나 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음 행정관이 여자·회사 문제 등을 거론하며 협박했다.”

음종환 “얼토당토 않다. 나는 이씨의 회사 이름도, 여자도 모른다.”

이준석 “’요즘 변호사 만난다며‘, ’요즘 배우 만난다며‘라고 말했다. 해당 직업군의 여성과 실제로 몇 차례 식사를 했던 적이 있고 그 사실을 아는 지인이 별로 없기 때문에 매우 민감하게 받아들였던 것은 맞다.”

음종환 “7일 ’통화가 가능하냐‘는 문자를 보냈지만 답변을 받지 못했다.”

이준석 “청와대가 정식으로 감사를 할 사안이라고 생각했고, 내가 조사를 받기 전에 음 전 행정관과 먼저 이야기를 하는 게 적절치 않다고 판단했다.”

음종환 “11일에는 이 전 비대위원이 카톡 메시지를 보내 신용한 대통령 직속 청년위원장과 식사하자고 제안했지만 응하지 않았다.”

이준석 “’종편 출연 청탁한 카톡 다 공개한다‘, ’앞으로 방송 잘 지켜보겠다는 문자 보냈다.‘”

음종환 “내가 방송 출연을 못하게 할 힘이 어디 있나. 그런 협박성 말을 하지 않았다. 그 말을 입증하는 것은 카카오톡 대화 공개밖에 없다고 생각해 검토하고 있다.”

이준석 “본인이 정계를 떠날 생각이 아니라면 전체 내용을 공개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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